배려가 없는 세상
커피점에서의 일이다.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숙녀가 한 시간 가까이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한다. 좀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꾹꾹 참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조용히 다가가 목소리를 좀 낮추어 통화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들은 척도 않는다. 막무가내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고 피해를 준다는 건 안중에도 없다. 잡담에 불과한 이야기를 한 시간 가량 들어주는 일은 고역이다. 사색하며 신문을 읽는 귀한 아침시간을 망쳤다.
젊은 엄마 두 명이 서너 살이 된 아이를 데리고 왔다. 다들 소리를 낮추어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는 데 두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떠들고, ‘꺅꺅’ 비명을 질러댄다. 실내를 뛰어다니다 넘어져 울기도 하고 엄마에게 칭얼거리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린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썰렁하다. 젊은 엄마 두 명은 시종일관 아이를 못 본체한다. 한 시간이 넘도록 그러고 있다. 젊은 엄마는 다른 사람에게 실례가 된다는 걸 모를까? 모를 수도 있고, 알고도 무시할 수 있다.
전철의 타려고 줄을 서 있다. 앞쪽에 나이든 두 분이 서 계신다. 전철이 다가 오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아가씨가 줄을 무시하고 먼저 전철 안으로 들어간다. 얼른 자리를 찾아 앉는다. 줄을 서 있다가 나중에 탄 어른들은 머뭇머뭇 하다 다른 자리로 간다. 줄을 선 사람이 바보가 되었다.
자리에 앉은 젊은 아가씨는 비에 젖은 우산을 옆 사람과 자신이 앉은 중간에 놓는다. 비에 젖은 우산이 다른 사람의 옷을 적시든 말든 상관없다. 옆에 앉은 할머니는 우산에 옷이 젖을까봐 안절부절 한다.
아가씨는 백에서 거울을 꺼낸다. 거울에 낮을 비추어 본다. 요리도 비추고 조리도 비춘다. 나중에는 이빨 사이에 뭐가 끼었나 보느라 앞니를 가지런히 한다. 입이라도 좀 가리고 하면 좋을걸.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느라고 남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깜박 잊었나 보다.
거울을 백 속에 넣은 후 이번에는 팔을 이리저리 젖히며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남이야 보건 말건 알바 아니다. 스트레칭이 끝나고 조용히 앉아있는가 싶더니 머리가 옆으로 기울어진다. 옆좌석 중년 부인의 어깨로 아가씨의 머리가 스르르 내려앉는다. 졸고 있다. 옆에 앉은 여인은 화장이 자신의 힌 블라우스에 묻을까 신경을 쓴다.
어르신 한 분이 전동차 안으로 들어서자 중년 남자가 얼른 일어나 자리를 양보한다. 어르신은 환한 미소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또 다른 청년이 자리를 양보하자 이번에는 연세 드신 할머니가 금방 내린다며 계속 앉아있으라고 강권한다.
"다 같은 다리인데 청년인들 다리가 안 아플까." 말씀하시던 할머니는 그렇게 두 정거장을 서서 가시다 내리셨다.
열차가 중앙로역에 도착하자 졸던 아가씨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휴우, 깜박했으면 정거장을 지나칠 번했네.’ 하는 눈치이다.
‘얼굴만 예쁘면 뭐하누. 마음이 예뻐야지.’
가정에서부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쳐야 한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이 어떻게 우리가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영국 사람들은 자녀교육을 엄격하게 한다. 영국신사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다. 일본 사람들은 속마음을 잘 내비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를 위해 배려하는 마음만은 철저하다. 우리 자녀들이 배운 가정교육으로 해외에 나가 외국인의 가정에 들어가면 때로는 버릇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공장소에서 목소리를 높혀 이야기를 해도 실례인지 모르고, 횡단보도에 사람이 지나가도 아랑곳없이 '씽씽' 차들이 다니고, 운전하던 사람이 오히려 인도를 건너는 사람을 욕하고, 지나가는 사람 어깨를 툭툭 부딪쳐도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고. 이런 매너로는 국제사회에서 대접받는 신사가 되지 못한다.
언젠가 신사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왔다고 이야기 하면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영국인들 처음부터 신사가 되지는 않았을 터이니.
대기업 신입사원에 대한 직장예절 강의를 담당했던 적이 있다. 당시 교재에 나온 이야기를 한편을 소개한다. 영국의 메리 여왕이 손님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했다. 식사 전 손을 씻는 ‘핑거볼’이 나왔다. 초대 받은 손님은 이를 마실 물로 알고 꿀꺽꿀꺽 마셨다. 이를 지켜보던 여왕 역시 주위의 시선을 무시한 채 대접의 볼을 마셨다. 손님이 무안해 할까봐 위엄과 체면을 무릅쓰고 마신 것 이다. 상대를 위해 배려하는 마음. 이 마음이 예절의 기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