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 큰 교훈
짧은 만남 큰 교훈
이 택 희
짧은 인연이 평생을 두고 도움이 될 교훈을 남기기도 한다. 잠깐의 만남이 두고두고 힘이 될 수 있다. P사장은 나의 삶에 원동력이 되는 소중한 교훈을 주신 분이다. 나침반처럼 마음 바닥에 고정되어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사장은 몇몇 동료들이 모인 오붓한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까지 너희들은 다양한 삶을 살아왔다.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란 사람이 있을 것이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힘들게 지금의 자리까지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얼마나 알고, 어떤 학교를 나왔느냐는 이제 다 과거의 일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앞으로 5년간 어떻게 사느냐가 너희의 인생을 결정한다. 5년을 열심히 살다보면 습관이 생긴다. 이 습관은 인생전체를 결정하게 된다. 앞으로 5년 동안은 앞도 뒤도 돌아보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여라. 성공의 경험을 많이 만들어라. 이후에는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어 질 것이다.
현장에 투입되자마자 최선을 다해 일했다. 실패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성공만을 생각하며 뛰고 달렸다. 며칠씩 고객에게 왜 우리와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처음에는 들은 척도 않던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회사 최초로 고액의 거래도 성사시켰다. 시간이 지나자 탄력이 붙어 큰 기업고객들이 만들어졌다. 이 고객은 훗날 회사성장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일에 열중하다 보니 쉬는 날이 없었다. 주말에도 회사를 나갔고 여름휴가도 자진 반납했다. 일하는 게 재미있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았다.
일을 시작한지 5년 만에 과장으로 승진하였다. 보수적인 기업풍토로 9년째에 진급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만 5년이 지나고 바로 과장으로 진급한 것이다. 회사 역사상 첫 사례였다. 사내강사로 활동하며 그룹 내 여러 회사의 신입사원과 중견사원을 대상으로 직장예절과 기업문화를 전파했다.
‘5년 동안 열심히 해보라 그 열정이 습관이 되고 몸에 녹아 반드시 성공적인 삶을 살 것이다’는 선배의 말씀은 내 인생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5년의 노력이 몸에 배어 이제는 어떤 경우라도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몸살이 날 지경이다. 지금도 용광로와 같은 열정이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P사장. 시골에서 자라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上京)하여 S대를 수석입학, 수석졸업 하였고 그룹공채로 입사를 하여 사장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나라에 산업이 전무하였던 60년대 후반 시멘트 사업의 발전을 주도했다. 독일로 건너가 모르는 독일어를 공부해가며 신기술 도입협상을 매듭지었으며 동양최대의 시멘트 공장을 설립하는데 기여했다. 일본으로부터 품질관리(Quality Control)운동을 들여와 전 계열사로 확장시키며 한국형 품질관리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분의 손에는 늘 책이 들려 있었다. 바쁜 일정 중에도 시간을 쪼개어 한국은 물론 일본, 독일에서 발행된 기술서적을 읽었다. 술자리로 인하여 늦게 귀가 하더라도 부엌에 불을 키고 새벽 두세 시까지 책을 읽고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었다. 이런 열정으로 적지 않은 나이에 S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정계 ,관계 학계에 지도급 인사들과 활발한 교류를 가졌다. 오명씨 등 전, 현직 장관들 중에 친구가 많았고 그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느낀 것을 후배들에게 알려주려고 애썼다. 내가 영어를 비교적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된 것도, MBA공부를 마치게 된 것도 그분의 삶을 먼발치에서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하루는 프랑스출장에서 귀국 하자마자 야외행사장으로 달려와서 비행기에서 읽은 도널드 트럼프의 책을 소개해 주었다. 트럼프가 가진 큰 꿈과 사업 스케일을 가질 것을 권유하고 싶었으리라. 그 때 소개해준 책을 읽으며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도널드 트럼프는 내게 영감을 주는 희망의 징표 같은 사람이다.
P사장은 서울 올림픽이 끝난 해 시월 새벽 5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도 갑작스런 죽음.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분을 추모하는 조사를 썼고 장례식장에서 직접 조사를 읽었다. 주위에 큰 사람들이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어리기만 했던 나에게 어떻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겐 영광스런 일이지만.
P사장의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은 신입사원이던 내 마음의 도화지에 크고 멋진 그림을 그려주었다. 영원히 꺾이지 않을 니케의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니케의 날개는 꺾여 있지만 실제로는 꺾이지 않은 채 마음속에 살아있듯이 그분의 교훈도 늘 내 마음에 살아 있다. 때로는 날개를 활짝 펴고 머리 위를 날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