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bridge)
이 택 희
다리는 말이 없다.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그렇게 서 있다. 과장되게 자신을 포장하여 남에게 잘 보이려는 일도 없고 누구에게 아첨하여 권력을 탐하는 일도 없다. 이말 저말 잘못 옮겨 분란을 일으키지도 않고 공연히 사람을 깍아내리거나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지켜볼 따름이다.
다리는 자신의 등을 유감없이 내어준다. 긴 세월 수많은 사람이 밟고 다녀도 무겁다는 이야기 한번 하지 않는다. 등이 다 닳아 없어져도 억울하다 아프다 내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리가 못생겼거나 하찮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세상에 어떤 다리든 아름답지 않은 다리가 없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겸손하여 귀하기도 하려니와 다리 자체가 지니는 미적(美的) 아름다움은 특별하다. 돌다리든, 삽다리든, 시멘트 다리든 찬찬히 훑어보면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리를 포함하는 경관은 기성복처럼 옷에 몸을 맞추는 그런 경관이 아니다. 맞춤복처럼 몸에 딱 맞는 맞춤형 아름다움이다. 어느 마을이든 다리가 있고 다리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있다.
대 도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금문교를 빼고 샌프란시스코를 이야기 할 수 없고 미라보 다리를 빼고 파리를 말하면 뭔가를 빼먹은 느낌이다. 런던을 여행할 때 타워브리지를 보지 않고 돌아온다면 허전하기 짝이 없으리라. 이렇듯 도시의 미관을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다리이다.
다리엔 이야기가 있다. 새록새록 살아나는 고향의 추억 속에 다리 하나쯤 빠질 수 없는 건 가슴 뛰게 하는 순결한 사랑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운 이, 사랑하는 이를 떠올릴 때 고향의 그 다리가 저만치 서있다.
다리는 국경역할을 하기도 한다. 강을 경계로 국경이 결정되어지기도 하는데 가로놓여진 다리의 중간지점이 국경이 된다. 북한과 중국의 경계인 도문교가 그렇고 온타리오와 뉴욕 주를 연결하는 나이아가라의 레인보우브리지가 그렇다.
때로는 다리가 휴식의 장도 제공해준다. 무더운 여름 에어컨을 키지 않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인기 있는 장소가 다리 밑이다. 커다란 다리그늘 아래 모여 자리를 펴고 앉아 담소도 즐기고 낮잠도 즐긴다. 이른 아침 다리 아래서 게이트볼을 즐기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미소 짓게 된다. 장소가 주는 친근함과 활기찬 어른들의 모습을 대하는 기쁨 때문이리라.
뭐니뭐니 해도 다리의 역할 중 가장 소중한 그것은 이어주는 역할이 아닐까. 세상의 모든 다리는 한 지점과 다른 지점을 잇는다. 섬과 육지 사이에 다리가 놓여 지면 섬이 육지가 된다. 배를 타고 다녀야 하는 힘든 뱃길도 쉽게 오갈 수 있는 자동차 길이 된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강이 가로 놓여 있을지라도 다리가 놓여 지면 쉽게 건넌다.
한 장소와 다른 장소를 연결하는 것이 다리라면 사람과 사람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관계능력이다.
네트웍의 발달로 사람과 대면해서 일하는 것 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컴퓨터와 게임하는 시간이 더 많아져서 사람대하는 일이 거북하고 부담스러운 세대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혼자서는 잘하는데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데는 미숙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관계능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대가족으로 살던 시절엔 부대끼며 살았다. 층층시하에 형제자매가 많았다. 싫든 좋든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자녀가 한두 명으로 줄어들고부터는 부대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졌다. 주장할 때는 주장하며 양보할 때는 양보하는 관계훈련의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이러다 보니 부드러운 관계, 자연스런 인간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
자기가 일하고 있는 분야의 전문적인 능력과 실력이상으로 관계능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사람은 똑똑한데 함께 일하기가 왠지 꺼림직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다. 관계능력이 부족한사람이다.
기업이든 정부조직이든 조직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대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실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사람 대하는 일에 미숙하면 가진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반면 실력은 좀 모자란듯하나 늘 승장구하는 사람도 있다. 전문분야의 실력만큼 관계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 걱정이 없는 사람,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친구가 많은 사람이라 한다. 스스로 좋은 친구가 되어져야 함은 물론 사귐을 지속하는 노력이 꾸준히 있어져야 하리라.
올 한해 관계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기를 다짐한다. 자신의 등을 아낌없이 내어주어 열번이고 백번이고 지나다니게 하는 저 다리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리라 마음을 다잡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