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책 이야기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8. 3. 25. 14:38

                              책 이야기   
                                                            이택희

 캐나다에서 돌아와 문인들의 모임에 참여하였다. 젊은 작가 선생님이 나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을 보았다며 반가와 하신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농담조로 말을 받았다. 
 육년 전 출간되어 한 동안 화제가 되긴 하였으나 지금 시점에서 보면 칠팔년 전에 쓰여 진 원고들이라 자랑할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2쇄가 나온 이후 더 이상 인쇄하지 않았기에 절판 된지도 제법 오래다.   
 “아니에요. 여기 사진까지 찍어 둔걸요.” 핸드폰에 보관된 사진을 꺼내 보이신다.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책의 제목과 표지 디자인이 달랐다.
 “어, 이거 내가 쓴 책이 아닌데.” 
 “선생님 사진까지 보았던 걸요.” 확신에 찬 목소리다. 
 앞에서 강의하시는 교수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동명이인이 쓴 책을 내가 펴낸 책이라고 착각하지나 않으셨을까. 혹 내가 쓴 책을 봤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라도 했다면 무슨 창피란 말인가. 책을 쓴 적은 있지만 그 책은 아니라고 일일이 변명하고 다닐 수도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알고 말을 전한 젊은 작가 선생님의 체면은 또 어쩐단 말인가. 나 때문에 실없는 사람이 된다면 낭패 중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얼굴이 화끈 거린다. 
 “맞아요, 책을 쓰긴 했어요. 인터넷에 조회를 해보아도 있어요.” 도둑 제발 저리 듯 얼버무렸다. 누가 물어보기라도 했었나. 
 일단 그렇게 말한 후 얼른 화제를 돌렸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출판사에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고 몇 달을 해외에 체류하였으니 임의로 제목과 표지 디자인을 달리하여 펴낸 건 아닐까. 
 답답하지만 나중에 제대로 확인 해 볼 수밖에. 순간적인 당황과 당혹스러움은 잠시 묻기로 했다. 
 강의가 끝난 후 모임에서 마련한 순서에 따라 등단한 선배들을 축하하였고 수술 후 처음으로 함께 자리한 선배 작가님의 회복을 축복하고 환영하였다. 모든 의식이 끝난 후 뒤풀이 자리까지 참석하여 한껏 기쁨을 나누었다. 
 다음 날 아침 한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저자명에 이름을 넣고 검색버튼을 눌렀다. 작가 선생님이 보여준 문제의 책이 화면에 떴다. 저자는 분명 나의 이름으로 되어있다. 깔끔한 표지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책의 내용을 소개한 글과 목차를 들여다보니 육년 전 출판한 내용과 흡사하다. 짐작대로 디자인과 제목을 달리하여 재 출판한 것일 거라는 확신이 든다.   
 서점에 나가 확인해 보았다. 짐작이 맞았다. 표지 안쪽에 촌스러운 모습의 사진이 있었다. 출판을 위해 충무로의 한 스튜디오에서 부랴부랴 찍은 사진이었다. 해외에 나가있는 사이 저자의 소재를 수소문하다 여의치 않아 의논도 못하고 재출판하였으리라. 연락처를 알려 주지도 않고 장기간 나가있었으니 할 말이 없다. 
 창피를 당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에서 인세를 얼마나 더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슬슬 마음이 옮겨간다. 출판할 때 받기로 한 인세와 관련된 계약서가 있으니 왕복 비행기 값은 건질 수 있겠다 싶다. 
 이 얼마나 간사한 마음인가.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창피만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사실이 확인된 후에는 인세 챙길 마음으로 들떠 있으니. 
 가만히 생각해보니 출판사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다른 사람은 책을 출판하고 강의를 한다거나 저자 사인회로 동분서주하며 판매부수를 늘이려 애쓰는데 해외에 있다가 들어온 나는 태평스럽게 앉아 인세 챙길 생각만 하고 있지 않은가. 다른 저자들의 책은 수만 부 수십만 부가 팔려나가 출판사에 대박을 터트리게도 하는데 절판하기도 그렇고 다시 인쇄하기도 그런 책을 책이라고 써놓은 주제에 무얼 더 바라랴. 인세야 받지 않아도 그만이니 출판사 입장에서 손실이나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해리포터 이야기’를 쓴 영국의 여성작가 ‘조안 롤링’은 실업자 상태로 커피점에서 쓴 글이 수백만부 팔려나갔고 영화를 시리즈로 만들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여성이 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던 것 같다. ‘긍정의 힘’을 쓴 조엘 오스틴 목사는 책을 출판하여 단번에 천삼백만 불(백삼십억)을 벌어들임은 물론 수많은 독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잔잔하고 사색적인 문체로 인간본성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다룬 브라질의 작가 ‘코엘료’는 기업의 임원으로 있다가 사표를 내고 열한편의 소설을 썼다. 그가 쓴 소설은 160개국에서 출판을 되어 일억 부가 팔려나갔다. 
 닮고 싶은 작가‘코엘료’의 말이 실낱같은 희망으로 다가온다. 
 '살면서 지나쳐 온 매 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자산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작가가 있다. 타고난 글 솜씨와 상상력의 작가와 재주는 일천하지만 부지런히 경험을 쌓아 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작가이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내 작품 중 경험 없이 쓴 건 단 한 문장도 없다.’ 
 사람들의 영혼에 평안과 안식, 기쁨을 주는 좋은 작품을 쓰는 일은 진정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