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8. 5. 9. 02:38

갈비 굽기

이택희

오백인분의 갈비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분주하다. 대여섯 개의 바비큐 틀로 그 많은 갈비를 굽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매운 연기를 마셔가며 숯과 갈탄에 불을 지피고 갈비를 굽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굽히는 고기가 먹음직스럽다. 초벌을 구이에 적당히 익혀두었다가 음식을 드실 때 덮혀드리기로 했다.

서너 시간 구우니 고기 굽는 냄새가 온몸에 배인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시작한 갈비구이가 점심시간을 넘겼다. 슬슬 배가 고파오지만 곧 들이닥칠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나라도 더 드시게 하기위해 계속 갈비를 구워댄다. 

자원봉사자 중 한 팀은 갈비와 함께 먹을 상치를 씻는다. 오백 명이 먹을 상치를 다듬는 일 또한 보통 일이 아니다. 상치와 고추를 씻어 한데 모아두고 갈비 굽는 팀에 합류했다. 굽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열대의 차에 분승하여 오전 내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을 마친 할아버지 할머니가 퀸스톤 하이츠 공원에 도착했다. 지팡이에 의지 하여 겨우겨우 걸음을 옮기시는 어르신도 여럿이다.

활짝 핀 분홍빛 꽃나무아래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하셨다. 사람들은 이를 �꽃 나무라 하였으나 그동안 보아온 꽃과 달라 쉬이 �꽃이라 불러지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그지 없어 꽃으로 가득한 천국의 모습이다. 오백 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시작하자 정신이 없다. 구운 갈비와 야채 나르기에 바쁘다. 한편에서는 뜨거운 오뎅국을 그릇에 담아 나른다. 바쁜 가운데도 모두들 환하게 웃는 얼굴이다. 섬기겠다는 마음이 겉으로 나타난걸 게다. 약주 한잔 걸친 어르신의 얼굴이 불콰해졌다. 기쁨이 넘치고 흥에 겨워 꿈길을 더니는 듯하다. 

답답하게 집안에 갇혀 지낼 시간이 더 많았으리라. 나이아가라 폭포와 그 인근을 여행하고 싶어도 차편이 마땅치 않아 나서기가 힘들었던 걸음이 아니었던가. 일하느라 바빠 피곤에 절어있는 자녀들에게 부탁을 하기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설레는 마음으로 밤새 잠을 설치고 새벽 세시에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할머니도 계신다. 어디 그 분뿐이었으랴. 경우가 조금씩 다를 뿐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하지 않았으랴.

식사를 마치고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파란 잔디위로 걸음을 옮기시는 할머니, 사람들과 다소 떨어진 거리에 자리 잡고 앉아 목청껏 가곡을 불러대는 할아버지, 사물놀이패의 장단에 맞추어 원을 돌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어르신, 젊은 시절로 돌아가 열심히 손뼉을 치시며 합창을 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얼굴가득 보이시며 해맑게 웃으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 천국이 또 있을까 싶다. 시간이 지나 다른 장소로 옮겨가야 함에도  공원을 떠나기가 아쉬운 듯 파란 잔디에서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푸른 초원 위에 한없이 그렇게 앉아계시고 싶은 마음이 왜 없으랴.

나이아가라 힐튼 호텔의 연회장으로 장소를 옮겨 장기자랑 대회가 펼쳐졌다. 노래를 부르시는 모습이 젊은 시절 한가락 했을 법도 하다. 열창에 열창이 거듭된다. 버스에 탑승한 그룹별로 팀을 이루어 벌이는 응원전도 볼만하다. 어느새 파티 복으로 갈아입은 분도 있다. 덩실덩실 춤을 추시며 흥에 겨워하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한바탕 잔치마당이 열렸다. 

나이가 많으신 분은 밤새안녕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년에 또 다시 오늘 같은 흥겨운 날을 보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어르신을 섬기는 일은 그래더 더욱 보람되고 기쁜 일이다. 경로잔치에 참여하신 후 그 때만큼 재미있었던 일이 또 없었노라고 한다면 그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그 즐거움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았노라고 하신다면 그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 

오백 명의 어르신을 초청하여 경로잔치를 여는 행사는 한 독지가의 어른을 섬기는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행사는 벌써 열 번째를 맞았다. 한번 두 번 하기는 쉬울지 모르나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드는 행사를 십년간 계속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올 한 해에 든 예산도 팔천만원이라 한다.

해외에서 외롭게 하루하루 살아가실 어르신을 위해 큰 규모의 경로잔치를 여는 것은 여간한 결심과 정성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토론토만 해도 부자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이 적지 않지만 돈이 있다고 누구나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여행사를 운영하는 독지가는 IMF나 사스(SARS)로 인하여 회사경영이 참으로 어려웠을 때 경로잔치에 참여하신 어르신들의 격려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한다. 꽉 쥐기만 해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손을 내밀고 베풀 때 가져지는 것임을 다시 알게 된다. 행사를 도와주는 자원봉사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도 흐뭇하고 보람이 있은데 일을 총괄하여 주관하고 주최하는 사람의 기쁨은 오죽할까.  

살아 오면서 오늘처럼 많은 갈비를 구워본 적이 없다. 숯불냄새, 고기냄새가 온 몸에 스며들었다.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하고 몇 시간동안 갈비를 구었다. 이렇게 갈비를 구워 어르신을 대접할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참여하리라. 열 번이고 백번이고 갈비를 구워 대접해 드리며 두둥실 어깨춤을 추시는 어르신 모습을 뵙고 싶다.

 

 갈비를 굽고있는 모습

 자원봉사자들이 갈비를 구우며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모습

 어르신들이 식사하는 모습(탑승 차량별로 다른 색 모자를 쓰고 계심)

 식사후 나이아가라 힐튼호텔 연회장에서 장기자랑 하는 모습

 백댄서까지 동원하여 노래하는 참가자

자원 봉사자 일동(차량 열대에 분승하여 가이드 보조 역할을 한 봉사자는 사진촬영에 참석할 수 없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