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품앗이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8. 5. 27. 11:53
 

품앗이

이택희

큰 아이가 이주 후 아이티로 봉사활동을 떠난다고 한다. 아이티가 어떤 곳인가. 오랜 독재정치로 인하여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나라가 아니던가. 부패가 심하여 세계적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며 정치인에 대한 불만으로 폭력행위가 잦은 나라가 아닌가.

위험천만한 환경으로 아이를 보내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아이티에서 한 여성 의료봉사요원이 납치되었다는 보도에 가슴이 서늘하다. 외국인을 납치하여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가는 추세라 덧붙이고 있다.

만의 하나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긴다면 어쩔 것인가. 도우러 가는 건 좋지만 예기치 않은 사태를 만나 본인의 생명이 위태로워짐은 물론 이웃에 염려와 걱정을 끼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리라.

말리고 싶지만 오래전부터 준비를 하여 온 단체와 아이를 생각하면 무작정 말릴 수만도 없는 입장이다. 봉사활동을 준비하는 단체나 개인은 과연 그런 불행한 일을 당하랴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출발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우리나 나일 수 있다는 가정도 해야 하리라.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봉사활동을 떠났던 한국인 일행이 탈레반에 납치되어 온 국민이 한 달 이상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지 않았던가. 결국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많은 몸값을 지불하고서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으랴.

신문에 보도된 사실을 아이에게 말해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출발 날짜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는데 괜한 걱정만 안겨줄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사실을 알게 해 주는 게 좋겠다 싶다. 신문기사를 보여주며 인질사태가 많아지는 지역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알고 있었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슬쩍 들어 넘긴다.

차마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까지 버릴 각오까지 해야 한다고 귀띔해 주었다. 빈 말만은 아님을 어쩌랴. 순간적으로 딸의 얼굴이 비장해진다.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정열을 바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희생과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으랴. 때로는 삶 전체를 바쳐도 아깝지 않으리라. 자신의 안위와 편안함만 생각한 사람은 범인에 불과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 시간과 노력을 쓴 사람은 그 삶이 고귀하고 명예스럽다.

인류의 성인이라 불러지는 사람들은 거의가 남을 위한 삶을 산 사람들이다. 마더 테레사가 그리하였고 알버트 슈바이처가 그리하였다. 천주교를 전하러온 서양의 선교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하나밖에 없는 생명마저 초계같이 버려야 했다. 

육이오 당시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원하여 입대하였던 젊은이들이 있었다. 추운 날씨에 손발이 얼어가며 싸워야 하였고 여름날 그 타들어가는 뙤약볕의 열기 속에서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걷고 또 걸었다.

전쟁의 현장에서 고향에 있는 부모 형제 가족의 품이 얼마나 그리웠으랴. 참전한 젊은이들 중 다수가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으로 돌아오지 못한채 영원히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넜고야 말았다. 

전쟁에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어머니가 한두 분이던가. 저녁마다 밥 한 그릇 이불 밑에 넣고 평생 잠을 설쳤을 어머니도 계셨다. 문짝에 기척이라도 느껴지면 혹시나 아들일까 마음졸이며 바라보셨으리라.

대한민국이 지구 어느 쪽에 붙은 나라인지 알지도 못하던 서방세계의 젊은이들도 우방을 위해 싸웠다. 동방의 낯선 땅에서 꽃피우지 못하고 산화해간 젊음이 한둘 아니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의 조국이 있으랴. 딸아이의 봉사가 그희생정신을 이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선조가 치른 희생에 비추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봉사하는 일 또한 일종의 품앗이일까.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인 오늘 지구상의 최빈국에 속하는 아이티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품앗이의 하나라 할 수 있을까.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되어있을 때 새로운 역사는 일어난다. 기왕 가게 된 봉사활동을 통하여 지구촌의 이웃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만 생각하는 지엽적이고 이기적인 삶이 아닌 남도 생각할 줄 아는 그릇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