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 한 역사문화기행
역사문화기행
이택희
고등학교 시절 수석 입학한 친구가 맹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석 입학할 실력이라면 졸업 후 대한민국의 어떤 대학이라도 당당히 합격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삼십년도 더 지난 지금쯤이면 어느 분야에서건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사회에 기여하고 있어야 마땅하리라. 그런 친구가 실명을 하여 나락으로 빠졌다는 소식에 가슴이 시려왔다.
좌절감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친구는 겨우 쓰러진 몸을 일으켜 한걸음씩 내닫기 시작했다. 안마사 자격을 취득한 후 이곳저곳 다니며 사람들의 몸을 주물렀다. 혹 지인이라도 만나게 될까봐 사람이 적은 곳으로 피해 다니고 싶었지만 그조차 쉽지 않았다.
갑작스레 던져진 운명에 힘겹게 적응해 가던 친구는 눈물겨운 노력 끝에 시각장애인문화원 원장으로 취임을 했다. 장애우들이 힘을 합해 설립한 희망신협 이사장 일을 겸직하며 영향력을 발휘해갔다. 추운 겨울 눈보라를 이겨낸 한 송이 매화처럼 다시 피어났다.
친구가 원장으로 있는 시각장애인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역사문화기행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하였다.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 끼어들어 행사를 망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멀쩡한 모습으로 따라다니며 회원들 마음에 상처를 입히면 어떻게 하나하는 자격지심도 없지 않았다. 제의를 거절하기도 그렇고 하여 일단 참여하겠노라고 건성으로 말했다.
출발일이 다가오자 가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망설임 끝에 참여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을 하여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오자 참석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작대기로 이곳저곳 짚어 사물을 인지하며 버스에 오르는 장애우들과 겸면적은 인사를 나누었다. 건강한 사람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출발시간이 되자 탑승인원에 관계없이 출발하자고 했다.
다음번 탑승 장소에 이르자 아빠 엄마의 손을 잡은 어린이들이 우르르 차에 올랐다. 55회째 역사문화기행이 계속 되어지는 동안 여러 번 참석한 분도 계셨고 처음으로 문화기행에 오셨다는 분도 계시다 했다.
행선지는 청주에 있는 고 인쇄박물관과 우암 송시열의 유적지가 있는 화양계곡. 안내를 맞은 교수께서 마이크를 잡고 당일 방문할 장소에 대한 계략적 설명을 시작한다. 해박한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한 자근자근한 설명에 귀가 솔깃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분들이 어떻게 역사문화기행을 할 수 있을까 궁금했던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다. 해설을 맡은 젊은 교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과거로의 여행을 가능케 해주는 방향타였다. 유물을 직접보지 않더라도 상상 속으로 역사적 사실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세계최초의 금속인쇄 기술로 찍어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心體要節)의 사본(일명 直指)을 대면하였다. 서양의 구덴베르크의 그것보다 칠십여 년이나 빠른 시기에 찍어졌다는 점에서 긍지가 느껴진다. 목판인쇄물과 비교하였을 때 글씨체가 더욱 선명하다.
세계최초로 개발된 금속활자 인쇄임에도 서양의 그것과 비교하여 의미와 성과가 다소 축소되어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 기술이 얼마나 활발히 사용되었으며 이후 문명의 발달에 어떻게 기여하였는가의 척도가 영향을 미쳤단다. 직지를 찍은 1377년 당시 개발된 금속인쇄기술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이어오며 지식발달에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 이후 조선 중기 신흥사대부의 성장에 기여하였음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중이라니 다행스럽다.
유물을 전시해놓은 전시장의 창을 어루만지고 있는 친구의 손끝은 그가 얼마나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짐작케 한다. 보이지 않는 것조차 보려고 다가가는 친구의 모습과 보이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비교가 된다. 역사적 사실을 몸 안에 숨기고 있는 문화재는 자신에게 귀 기울이고 가까이 다가가려 애쓰는 사람에게 서서히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을까.
우암 송시열의 사적이 있는 화양서원의 마루에 앉아 잠시 과거로의 여행시간을 가졌다. 선생께서는 높은 벼슬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화양서원을 중심으로 학문을 닦으며 후학을 키우는 일에 열중하였다한다. 유적지를 돌아보며 사람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보람된 일인가 생각해 본다. 목숨을 걸고라도 뜻을 굽히지 않은 선생을 상기하며 작은 이해에 얽매어 조석(朝夕)으로 소신을 뒤집는 어리석음을 되돌아본다.
몇분이 함께 저녁식사자리를 함께 하였다. 잘생긴 얼굴에 성격 좋으시던 권선생께서 실명케 된 경위를 들었다. 약주 한 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몰래 따라온 괴한이 든 돌에 머리를 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단다.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으나 겨우 목숨만 건지고 실명하였다한다. 보이고, 보이지 않는 운명이 순간에 교차할 수 있음이다.
여행 끝자락에서 한 소녀는 당일의 여행이 역사도 배우고 장애인과 친구가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가운데 김현준 대구시각장애인 문화원원장, 오른쪽 해설을 맞아주신 김종규 교수
경북대에 출강하시는 김종규 교수의 역사해설을 경청하는 참가자들
만동묘 비석을 지팡이로 더듬이며 확인하는 김현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