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고 향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8. 9. 16. 09:58

고 향

이택희

나에게 고향은 어떤 곳인가. 왜 이리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명절이면 모두들 고향 갈 생각에 가슴이 부풀건만 고향을 찾지 못하는 못난 불효자식은 타국에서 쓸쓸히 창밖을 바라보며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 명절을 타향에서 보낼 때만큼 쓸쓸할 때가 또 있을까?

고향이 그리운 이유는 나를 받아주고 용납해 주는 사람이 있고 어릴 적 추억과 꿈이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비교적 일찍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산 날이 더 많았다. 그렇지만 마음 속의 고향은 어머님 품처럼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 아닐까.

학창시절 객지에서 공부를 하다가 명절이나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면 부모님은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사람을 맞은 듯 늘 그렇게 반겨주셨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많은 음식을 내 놓으시고는 제대로 준비도 못했다며 미안해하셨다. 어머님이 정성껏 차린 음식보다 맛있는 게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자식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은 마음이 든든하셨나보다. 오랜만에 시골에 내려가면 부모님은 늘 들뜬 마음을 자식을 맞았다. 며칠 지내는 동안 부모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끼며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되찾곤 하였다.

고향에서 몇 날을 지내다 살던 곳으로 되돌아올 때면 며칠만 더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억누를 길 없었다. 하지만 빠듯한 일정 때문에 늘 아쉽게 돌아서야만 하였다.

집을 떠나올 때면 부모님은 문 앞에 서서 떠나는 자식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셨다. 몇 번이고 돌아서보면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않고 계셨다. 들어가시라고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미동을 않으셨다.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다시 인사를 하여야 했다. 며칠 더 머물고 싶은 자식 마음 이상으로 부모님 또한 자식을 곁에 두고 싶지 않으셨을까.

정성껏 장만해 주신 음식을 먹으며 극진한 사랑 속에 며칠을 지내고 나면  다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힘이 충전 되었다. 어떤 어려운 경쟁도 맞닥뜨려 보자는 용기가 생겼다.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면 더 열심히 노력하여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겠다는 결심을 하곤 했다. 학생 때에는 더 좋은 성적을 내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직장에 다닐 적에는 더 빨리 진급을 하고 좋은 일을 만들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고향엔 그리운 친구들도 있었다. 철부지 시절 함께 뛰놀던 친구들은 내가 잘했어도 잘 못했어도 늘 변함없는 친구로 남아있었다. 어떤 경우든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 주었다. 실수하고 부족한 나를 용납해주고 받아들여주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고향은 더욱 그리운 곳이었다.

명절 때이면 고향 갈 차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밤새 줄을 서서 고속버스 차표를 사야할 때도 있었고 차로 열 시간 이상 내려 가야할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고향 가는 기쁨에 그 정도 고생쯤은 당연한 줄 알았다.

명절엔 고향을 찾아 그리운 부모님과 형제들을 만나고 정을 나누는 게 당연한 일이건만 이번 중추절은 타향에서 맞아야 한다. 추석 며칠 전부터 마음의 쓸쓸함이 커져만 간다. 어른들이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실거라고 명절에 마저 뵙지 못한단 말인가. 늘 옆에 있었던 큰 자식이 없는 지금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쓸쓸하실까. 애써 외면하고 괜찮다고 위로하시지만 마음 한구석은 아쉬움으로 가득하리라.

추석 하루 전날은 아예 창밖만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이리 저리 서성이다 저녁을 맞았다. 명절 아침 전화로 나마 부모님 목소리를 들었고 안부도 여쭈었으나 텅빈 마음은 가시질 않는다.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이 그리워서인지 무엇을 먹어도 허기가 진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추석 당일 아침 아내가 내어 놓은 된장찌개며 호박부침개가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 아무 맛도 모른 채 숟가락만 들었다 놓았다한다. 다행히 아내는 나의 이런 마음을 모르는 듯하다.

어머님이 부쳐내신 명태전이며 꼬치 전 고구마 부침개 생각이 난다. 오늘은 정말 어머님이 해주신 된장찌개며 부침개가 먹고 싶다. 먹고 싶다 못해 가슴이 아려오고 눈가가 촉촉이 젖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