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에서
퀘벡에서
이택희
도시형성 400주년을 기념하는 퀘벡(Quebec City)을 다녀오기로 했다. 늘 마음만 먹었지 막상 시간을 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십년 만에 방문하는 퀘벡.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제법 많이 변하였을 성 싶다.
토론토에서 출발하여 팔백키로가 좀 넘으니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가는 거리쯤이나 될까? 킹스턴을 거쳐 세인트로렌스 강을 따라 난 고속도로를 지겹도록 달려야 한다.
도시를 벗어나니 도로 양옆 눈 쌓인 정경이 고즈넉하다. 숲속 길을 달리는 듯 나무들이 우거져있다. 나목이 마냥 쓸쓸하게 보이지만 않은 것은 나의 들뜬 마음도 마음이려니와 봄이면 싹이 돋고 울창한 숲으로 변하리란 믿음이 있기 때문 일 것이다.
2008년을 삼일 남겨놓은 날. 잔뜩 찌푸려있더니 퀘벡 주로 들어서자 활짝 갠 얼굴로 순례자를 반긴다. 영어로 표기된 표지판들이 순식간에 불어로 바뀌었다. 자신들의 언어만 인정하려는 퀘벡인의 고집은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한이 풀리지 않은 탓일 게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퀘벡의 구시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멀리 세인트로렌스 강은 얼음에 덮여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서양과 만나게 되리라. 예전 유럽 사람들은 대서양을 거쳐 세인트로렌스 강을 따라 퀘벡으로 들어왔다. 완전히 얼어 붙은듯하였으나 자세히 보니 강 가운데로 얼음조각이 떠다니고 배도 지나다닌다.
1608년 프랑스인 샹플레인도 세인트로랜스 강을 따라 내려와 퀘벡에 정착하여 마을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뉴 프랑스, 제 2의 프랑스를 건설하겠다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신천지에 새로운 프랑스를 만들겠다는 꿈은 훗날 영국과의 전쟁에서 진 후 접어야만 했다. 로렌스 강을 사이에 두고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수많은 전투를 벌였다. 강 건너에서 쏜 대포알이 구시가지 중심부 거리로 날아와 나무아래 박혀있는 모습이 당시의 상황을 잘 말해준다.
퀘벡을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군과 강을 건너와 공격기회를 노리던 영국군은 1759년 일사항전을 벌인다. 세계 역사가 기억하는 아브라함 평원의 전투. 제임스 울프장군이 인솔한 영국군이 몽칼름 장군의 지휘하는 프랑스군에 이겨 향후 캐나다의 지배권이 영국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퀘벡의 주민들은 그날의 아픔을 잊지 말자고 지금까지도 다짐을 한다. 퀘벡 전역에서 프랑스 말만 쓰기를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6년간의 일본의 지배하에 있은 우리 민족이기에 그들의 아픈 마음이 더 가슴에 와 닫는다. 용서는 해도 결코 잊지는 앉겠다고 말하며 그것을 자동차의 번호판에 적어 다니기까지 하는 그들의 마음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우리 선조들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구시가는 성으로 둘러 쌓여있다. 성문으로는 차와 사람, 관광용 마차가 지나다닌다. 문의 크기만 보면 우리의 숭례문이나 동대문보다 작아 보인다. 서울의 사대문으로 먹고 살기위해 몸부림치던 민초들, 조정에 일을 보러 올라오는 지방 관리들, 봇짐장수, 과거를 보러 올라오는 서생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듯 퀘벡을 근거지로 살았던 이곳 사람들도 저 성문으로 그렇게 지나다녔을 것이다.
구시가지에 있는 많은 건물들은 삼사백년 전에 지어졌음에도 완벽히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퀘벡의 구시가는 오래 전부터 세계인들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구경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샤토 프농트낙 호텔과 주변 광장은 유네스코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 오래다.
개발바람이 불어 옛 모습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육백년 고도 서울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대궁궐 정도가 남아있고 옛 사람들이 살던 흔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작고 아담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벽난로 바로 옆 좌석이라 따듯한 느낌. 썰렁한 것보다야 따뜻한 것이 백번 좋다. 와인을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이른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처음엔 한산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많아진다. 옆 좌석엔 육십이 넘어 보이는 커플이 젊은 사람들처럼 꾸미고 사랑의 밀어를 나눈다. 프랑스 계통 사람들이 아니랄까봐 티라도 내는 건가.
저녁을 먹고 나오니 살을 에는 추위가 뼈 속까지 저미어온다. 그 옛날 프랑스에서 건너온 그들도 이런 추위를 견뎌 내었을 것이다. 구시가를 가로 질러 호텔로 되돌아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 피곤함이 엄습해 온다. 세 시간쯤 쉬니 눈이 떠졌다. 한결 피로가 가신다. 화려한 조명아래 퀘벡의 구시가가 농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수백 년 후에도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까. 그때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지.
다음날 아브라함 평원을 찾았다. 인적이 뜸한 아브라함 평원에는 온통 눈 세상이다.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즐기는 시민 몇몇이 보인다. 함박눈을 맞으며 산책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장수 둘 모두가 생명을 잃을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건만 그 날의 상흔과는 상관도 없다는 듯 평온하기만 하다. 평화의 상징으로 남게 되기를 원하는 후손들의 바람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게 했으리라.
돌아오는 길 이십 번 고속도로를 타자마자 폭풍을 동반한 폭설이 몰아친다. 극심한 눈보라에 앞이 보이질 않는다. 전쟁과 평화가 종이 한 장 차이이듯 맑은 날씨도 순식간에 무서운 눈보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사백 년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퀘벡 사람들 역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 역경들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되지 않았을까. 앞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되리라. 기축년 한해 어떤 역경과 도전에 직면할지라도 능히 헤쳐가리라 다짐해 본다. 도전과 응전 속에 새로운 역사가 쓰여 지는 것일 터.
올드 퀘벡의 거리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올드 퀘벡과 세인트로렌스 강
올드 퀘벡의 거리
올드 퀘벡 시티 어퍼 타운의 거리
샤토 프농트낙 호텔
어퍼 타운에서 내려다 본 로어 타운과 세인트로렌스 강
어퍼 타운의 샤토 프농트낙 호텔 옆 다름 광장
어둠이 찾아든 올드 퀘백
노트르담 데 빅트와르 교회와 광장 플라스 르와이알 그리고 루이 16세 동상
로어 타운 내려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