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소생의 계절에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9. 4. 18. 09:00

소생의 계절에

이택희

숨 죽였던 가지마다 물을 길어 올려 싹을 틔울 준비에 바쁘다. 얼어붙었던 대지에 파릇파릇 싹이 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잎이 돋고 꽃이 피리라.

소생의 계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똬리를 틀고 앉은 게으름의 담, 불신의 담이 눈 녹듯 사라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신 감동으로 찬란한 기쁨의 봄을 맞고 싶다.


십 수 년 전이었던가. 이년 가량 뉴욕에 머무를 기회가 있었다. 가까운 거리의 뉴 라이프 커뮤니티 교회에 등록하였다. 동양인이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였으나 그리 서먹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성가대원을 모집한다기에 지원하였다. 부활절이 다가오자 뮤지컬 공연을 준비에 들어갔다. 매주 한두 번 하던 연습시간을 배로 늘였다. 현란한 무대장치며 세심하게 준비된 의상, 오케스트라의 수준 높은 연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적인 음악학교며 브로드웨이가 가까이 있어 인재가 많은 탓이리라 여겼다.

좋은 뮤지컬 공연이 있으니 보러가지 않겠느냐는 집사님의 초대에 서슴없이 응하였다. 공연 한 시간 반전에는 도착을 하여야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하셨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김밥과 떡, 음료수를 내놓으신다. 초대하신 집사님은 운전으로 사모님은 음식을 공개로 바쁘시다. 촌장님 내외의 말없는 섬김에 머리가 숙어진다.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있다. 삼십분이나 기다렸을까. 입장이 시작되었다. 사천 명이 앉을 수 있는 공연장(예배당)엔 사람들로 가득하다. 비교적 빨리 입장을 한 편이었기에 무대가 잘 보이는 쪽에 자리를 차지했다. 미시사가며 브램튼, 미시간, 심지어 캘리포니아에서 온 사람도 있다

두 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동안 수차례 눈물을 훔쳐야 했다. 채찍에 맞아 신음하시는 예수님,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 고통스러워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부활의 아침 무덤에서 살아나신 예수님 모습이 재현되는 순간 벅찬 감격의 눈물을 흘렀다.   

예수님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부활을 그린 작품은 가히  수준급이다. 오케스트라는 인원이 많지 않음에도 훌륭한 소리를 낸다. 어떤 오페라나 뮤지컬에 비하여도 뒤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훌륭한 공연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뉴욕에 머무를 때 링컨 센터에서 공연되는 뉴욕필하모니의 연주를 무척이나 듣고 싶었다. 몇 번이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비싼 입장료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공연장 앞에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적도 있었다. 아빠와 엄마 예쁘게 생긴 두 아이 네 식구가 긴 코트에 멋진 목도리, 가죽 장갑을 끼고 입장하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토론토 패션 플레이(toronto passion play)는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두 차례 뮤지컬을 무대에 올린다고 한다. 참여하는 출연진과 스텝은 모두 자원한 사람들이다. 공연을 위하여 그들이 쏟아 부은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이번 공연을 위한 무대장치와 의상, 조명 등 제작비만도 팔만 오천불의 비용이 들었다 한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관계자들의 희생과 헌신이 놀라울 따름이다. 

타이틀 롤을 맞은 아딘 처치(Aadin Church)의 연주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미스 사이공, 라이언 킹에 주연으로 출연한 경력에 걸 맞는 막힘없는 목소리며 열정적인 연기는 전율마저 느끼게 했다.

멋진 공연이 있음을 알려주시고 차편에다 음식까지 제공해주신 임 집사님 내외분께 감사드린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져 싹이 나는 이치는 참으로 오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