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있음에
그대 있음에
이택희
겉으로 보이는 현상만이 전부인줄 믿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겨울에 죽은 듯이 보이는 나무를 보고 죽었다고 믿는 어리석음과 다를 바 없다. 내면의 아름다움이나 사람의 인격, 됨됨이를 보기보다는 겉모습만 보고 단정지어버리는 우를 범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수잔 보일이 무대에 올랐을 때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촌스러움에 조소하는 듯 킥킥 거렸다. 저런 모습으로 집에서 청소나 할 것이지 왜 나와서 수준을 떨어트리느냐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뚱뚱한 몸매, 시골에서 막 올라온 아낙을 연상하는 얼굴모습, 무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원피스는 저런 모습으로 무슨 노래를 부르랴 싶었다. 어쩌면 저렇게 뚱뚱한 중년 여인이 어울리지 않는 원피스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것 자체가 대회의 질을 떨어트린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였다. 객석에서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나 심사하는 사람들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들이나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잠시 후 그녀의 입에서 노랫소리 흘러나오자 심사위원석과 관중석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그녀가 부르는 '나는 꿈을 꿈꾼다'는 노래에 마냥 빠져 들었다. 이곳저곳에서 흐느끼는 소리도 들여왔다. 노래에 감동하여 흘리는 눈물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청중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뢰와 같은 박수를 계속해서 쳐대었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무대를 향하여 걸어 나오던 그녀를 향해 조소의 미소를 흘리던 심사위원들도 함께 일어나 열정적으로 박수를 쳤다.
우리는 사람들의 겉모습만으로 평가하여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의 내면에 감춰진 보물은 보지 못하고 겉으로 나타나 보이는 현상만 보며 단정지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때가 되면 죽은 듯 보였던 가지에서 싹이 나고 잎이 돋듯이, 죽은 듯 보였던 갖은 식물들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내듯 때가 되면 감추어진 내면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시인은 아내와 이혼을 하고 혼자 사신다. 시인은 참으로 겸손하고 순수하다. 얼굴에는 늘 잔잔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낮은 목소리로 조용조용 하는 이야기에 쉽게 빨려든다. 늘 남을 위한 배려가 몸에 배인 분이기에 함께 있으면 편안하다. 시인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세상의 어떤 근심도 걱정도 한순간 사라져 버린다.
시인의 눈은 잠시도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관찰하며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잔잔한 사색의 눈빛. 눈빛을 바라보노라면 신비함조차 느껴진다.
시인이 오래전 아내와 함께 헤어져 혼자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전혀 의외라는 생각을 하였다. 혼자 사시는 분이 어떻게 그렇게 편안한 얼굴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조용하면서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시인은 혼자서 어린 아들을 키운다고 하였다. 그리 넉넉지 않은 듯 보이는 형편에 아이의 양육까지 도맡아야 하니 힘든 삶을 사실 터인데 그런 모습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시인은 세상살이에서 노래를 만들어낸다. 그가 힘든 삶을 살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묵묵히 아들을 키워내며 살아내는 것을 보면 삶 자체가 시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우리는 화려한 겉모습을 부러워하고, 현란한 수사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박수를 쳐대고 환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들의 가치를 간과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인간다움의 가치를 추구하며 꿋꿋이 바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귀함을 잊고 살 때가 많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화려하다고 그 내면까지 아름답다고 단정 지을 수 없듯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초라하다고 내면까지 초라하다고 믿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수전보일의 노래를 들을 때나 박 시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행복하다. 이들이 있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May 3,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