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달려갈 길을 마친 후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9. 6. 20. 05:18

인생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하였다. 달려갈 삶의 길을 다 달린 후 세상을 떠날 때 그 삶이 크고 아름다웠다고 할 수 있다면 귀하고 자랑스러울 터이다.

내가 그 분을 만난 건 약 십오 년 전의 일이다. 당시 그 분은 나이에 비하여 젊으셨고 에너지가 넘치셨다. 나이가 드셨음에도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모습을 뵈면서 나도 그렇게 살겠노라고 다짐하였다.   

한국에 계실 때 건축업을 하신 분이었기에 매사에 스케일이 크셨고 일을 할 때 주저하지 않으셨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 하는 분이셨다.

기회 있을 때마다 꿈을 크게 꾸고, 간절히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그분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고 말씀해주셨다.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큰 소리로 축복해주시던 그 분을 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갈 바를 몰라 하거나 힘들어 할 때 그분은 늘 '기도하면 되지요, 함께 기도 합시다'라며 용기를 주셨다.

그분은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셨다. 이북에서 월남을 하셔서인지 사람을 무척 아끼셨다. 마음속에 망향의 아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달래신게 아닐까. 어려운 사람을 보면 가족도 모르게 사람을 시켜 쌀이나 라면을 보내주시던 분이셨다.

자녀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셨는데 두 아드님은 물론이요 뉴욕에 있는 큰 따님과 외손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수시로 큰 손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대학생이던 손녀가 유엔에서 인턴직원으로 일하게 된 것을 기뻐하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병석에 계실 때 어른을 찾아뵙지 못하여 못내 마음에 걸린다. 건강에서 회복되신 후 찾아 뵐 기회가 있었으나 혹 어른께서 부탁하시는 말씀을 순종치 못하면 어떻게 하나 염려하며 차일피일 미루던 중이었다. 못난 생각 때문에 생전에 얼굴을 뵈옵지 못함이 한스럽다.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 그저 멍한 느낌이었다.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정신이 들었다.    

관 속에 누우신 그분의 얼굴을 대하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당신이 평소에 가르쳐 주신대로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겠노라 다짐하였다. 미망인께서 고인의 생전에 당신을 무척이나 기다리셨다는 말씀을 들을 때 터져 나오는 슬픔을 감출 길 없었다. 참으로 고인과 가족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다.  

고인은 마지막 가시는 길을 통하여도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사랑하며 살아야하는지를 알게 하셨다. 인생이 유한하여 세상을 떠날 때가 있음도 분명히 알려주시었다. 

영결식 장에서 손자들이 그분의 사랑을 잊지 못하여 눈물 흘리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나도 그분처럼 손자를 사랑하여 훗날 장례식장에서 할아버지를 추억하고 아파하면서도 자랑스러워할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존경하는 사람이 있을 때 또 닮고 싶은 분이 있을 때 배우고 깨닫는다. 그 분의 삶이 방향타가 되어주고 나침반이 되어주기에 바른 길을 갈 수 있을 터이다. 내가 그분의 삶을 먼발치에서라도 보면서 직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자 행운이었다. 

남은 여생 그분의 삶을 닮으려 애쓸 것이다. 그분처럼 세상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 노력하리라. 기도하기를 쉬지 아니하시며 후배들을 격려하시던 장세근 장로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닮으려 애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