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바라보며
커다란 나무로 둘러싼 동네를 지나다보면 왠지 숙연해진다. 얼마나 자라야 저런 나무가 되려나. 수십 년 많게는 백년이상 자란 나무가 아닐까. 인간의 수명보다 몇 배나 더 긴 수명을 가진 저들은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후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지 않을까.
나무가 땅에 심겨져 자라기까지는 수많은 풍상을 겪는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을 삼키고 온 몸이 타들어가는 가뭄도 견딘다. 무섭게 휘몰아치던 강풍에 버티고 서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 칠도 것이다. 땅속으로 땅 속으로 더 깊게 뿌리를 내려 몸을 지탱하려 발버둥치리라. 잎을 다 떨어트리고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한 것은 또 몇 번이나 될까. 매서운 눈보라와 모진 강풍을 견디고 견뎌야 하지 않을까.
우여곡절 끝에 몸집을 불린 나무는 그늘을 만들어 쉴 곳을 제공한다. 밤새 나쁜 공기를 몸속으로 빨아들이고 아침이면 산소를 뿜어내어 내어 맑은 공기를 선물한다.
뵐 때마다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분이 계셨다. 경우 바르게 사시며 생각과 행동에 치우침이 없으신 없으셨다. 나는 그분을 대할 때마다 나무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꼿꼿한 성격의 할머니는 결코 남에게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으셨고 크던 작던 자신의 것으로 나누기를 원하셨다. 반찬거리를 준비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즐겨하셨다. 자그마한 그늘이나마 만들어 지친 이들에게 쉴 공간을 만들어 주려 하셨던 건 아닐까.
어른들을 모셔온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일면식도 없는 두 분께 식사대접을 하시겠다고 초대하였다. 식사를 하시며 살아오신 여정을 이야기하실 때 당신의 삶이 꼭 한 그루의 나무 같다고 생각했다. 온갖 풍상을 이겨내시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그랬고 자녀들을 돌보시며 이웃을 섬기는 모습이 그랬다.
나무는 묵묵히 자신 위치를 지키며 언제까지고 기댈 언덕이 되어준다. 할머니는 떠나셨지만 보여주셨던 삶의 향기와 사랑은 고목나무처럼 사람들 가슴에 남아있으리라.
핀치를 지나 영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커다란 단풍나무가 있다. 쉴 그늘을 제공해 주는 고목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해맑은 웃음을 나눠주시던 할머니를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