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나 해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나 해
‘사랑하는 아내’라고 표현하자 아내가 말했다.
"사랑은 무슨 사랑? 사랑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거지.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나 해?" 이 무슨 마른하늘에 벼락 떨어지는 소리인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내가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이른 아침 교회에 다녀와 음식을 장만하는 아내가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내가 오늘은 또 무슨 맛있는 음식을 만드실까?"라고 물었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건가. 아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나 또한 아내를 사랑한다고 굳건히 믿고 있었거늘. 혹 우리의 애정 전선에 문제가 생긴 걸까. 그럴 리는 없을 터이다. 어젯밤만 해도 한 이불 속에서 몸을 맞대고 잤었다.
지난번 녹즙기를 사왔을 때만 해도 그랬다. 개인적으로 몇 번 쓰고 말걸 왜 샀을까 싶어 애물단지가 되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당신이 고기만 좋아하니 야채를 더 먹게 하려고 샀다."는 대답에 즉시 소갈머리 없는 남편으로 전락했다. 이런 일로 미루어 아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렇다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최근 들어 특별히 아내를 화나게 하거나 슬프게 한 일도 없다. 혹 아내에게 젊고 잘생긴 남자라도 생긴 걸까. 자고 일어난 몰골이 눈에 거슬리기라도 했을까.
생각해 보면 찔리는 게 없는 건 아니다. 새벽에 일어나 교회로 향하며 함께 가자는 제의를 번번이 거절했다. 달콤한 침대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뒤척거리는 남편이 못마땅했을 법도 하다.
지난번 생일을 잊은 일도 마음에 걸린다. 며칠 전부터 아내의 생일이 다가온다고 스스로 노래를 불렀건만 막상 당일에는 깜빡 잊고 말았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오늘이 엄마 생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아차, 이럴 수가’싶었다. 건망증 핑계를 대기엔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남들은 쉽게도 하는 여행도 호젓이 떠나보질 못했다. 옆집 친구 폴은 아내 쉐리와 함께 크루즈를 타고 그리스와 터키, 이스라엘을 다녀온다고 했고, 김 집사님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다녀온다고도 하셨다. 유럽은커녕 캐러비언 구경도 한번 시켜주지 못한 잘난 남편 아니었던가.
집안일을 거들지 않은 일도 피할 수 없는 불찰이다. 가게 일하랴, 피아노 가르치랴, 눈코 뜰 새 없는 아내에게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찬만 했지 정작 몸을 움직이는 일에는 굼뜨기만 했다.
가끔 하던 설거지를 중단한 지도 오래다. 구태여 말하자면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시답잖은 돈벌이라도 하고는 있으니 설거지 쯤이야 미루면 어떠랴 싶었다. 그릇을 깬다는 핀잔도 신경이 쓰였다. 막상 아내의 손에서 깨어져도 종종 나의 문제로 귀결되곤 했다. 그릇을 너무 험하게 다루어 반은 이미 깨어진 상태라는 것이었다.
일이야 어찌되었든 집안 일 대부분은 아내가 담당한다. 모르긴 해도 몸이 서너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왜 하지 않을까. 이런 형편이니 어설픈 사랑타령보다 집안일이나 도와주었으면 싶을 터이다.
사랑이 무엇인줄 아느냐는 아내의 물음에 ‘위해주고, 아껴주고, 함께하는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생각해 보면 위해 주고 아껴 주고 함께 하는 건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나 하느냐는 물음이 메아리 되어 귓가를 맴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