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만 있으면 돼"
아내는 젊은 시절 몸매가 제법 날씬했었습니다. 함께 다니면 공연히 어깨가 우쭐해지곤 하였지요. 김태희나 송혜교만큼은 아니더라도 화장을 곱게 하고 나가면 사람들이 아내와 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곤 했었습니다. 키도 작고 못생긴 사람이 아내 하나는 잘 얻었다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대놓고 결혼 한 번 잘했다고 말해줄 때면 괜히 혼자서 우쭐했습니다. “아무렴 내가 그 정도는 되는 사람이지.”라고 혼잣말을 할 때도 있지않았나 싶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내의 몸이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살을 빼라고 돌려 말해보았지만 본전도 못 찾기 일쑤였습니다. 관리를 잘하여 날씬 몸매를 유지하는 여인네들도 많은데 왜 내 아내는 그렇지 못한지 불만스럽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찻집에 앉았습니다. 아내는 장난삼아 휴대전화기를 꺼내더니 제 모습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빙그레 웃으며 “나는 사진 속의 이 사람만 있으면 돼.”라고 말합니다.
사진이 잘 나왔으리라 기대하며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은 영락없는 동네 할아버지입니다. 머리는 벗어졌고 눈가엔 주름이 가득하며 한쪽 눈은 퉁퉁 부어 찌부러져 있습니다.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인지 오른쪽 눈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이게 과연 나인가 싶습니다. 그래도 제법 괜찮은 모습일 것이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불어나는 상대의 몸매를 바라보며 불만스러워하는 동안 아내는 주름이 늘어나는 남편을 바라보며 이 사람만 곁에 있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올립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