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할 것임을 굳게 믿는다"-최인호-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영화 ‘별들의 고향’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원작을 쓴 작가에 그리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냥 영화가 보고 싶어 극장으로 향했다. 그것도 내놓고 들어가기가 뭐해서 혼자서 몰래 변두리 극장을 찾아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남이 볼 새라 몇 번이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사위가 조용한 틈을 타 잽싸게 뛰어들어 갔었다.
알게 모르게 최인호 씨의 작품을 읽지 않았을까. 30대 초반부터 사십 대 후반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세간에 화제가 될만한 소설이라면 무조건 읽었고, 또 읽고 있으니까. 최근에 읽은 작품으로는 ‘상도’와 저자가 투병 중에 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이다. '상도'는 무척 재미있게 읽은 듯하다. 하지만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내가 이해한 작가의 스타일과는 달라 다소 의아해했었다.
암 발병 이후 작가의 삶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삶을 대하는 작가의 자세를 글을 통해 접하면서 주어진 삶의 순간들이 참으로 귀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어쩌면 나 스스로 나이가 들고 또 뇌종양 수술, 부친 별세, 사업체 정리 등 어려운 일을 경험하면서 작가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투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신은 왜 재능 있는, 성실한, 삶의 멋을 아는 작가를 그리도 빨리 데려가셨을까. 그가 조금 더 세상에 계셨더라면 완숙의 경지에 이른 농익은 작품들을 더 많이 접할 수 있었을 터인데. 사경을 헤매는 고통 속에서도 원고와 씨름하던 그였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작가는“주님이 오셨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영면에 들어갔다고 한다. 친구를 통하여 이 말을 들으며 나도 그런 죽음을 맞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 최인호의 작품은 나로 하여금 역사와 사람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였고 사고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금년 봄 펴낸 그의 작품‘인생’을 꼭 읽고 싶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인 2013년 9월 26일 본 시니어 대학 가을학기 강좌가 시작되었다. 작가를 추모하며 함께 한 수강생(?)들과 짧은 두 편의 글을 읽었다. 그 글을 올려둔다.
나는 느낀다.
내가 진실한 마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면 김춘수의 시 “꽃”처럼 나는 나에게로 와서 잊혀지지 않는 꽃이 되는 것을,
그리고 신비하게도 힘과 용기가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따뜻한 위로와 더불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좋은 벗은 나 자신이며, 세상에서 가장 나쁜 벗도 나 자신이다, 나를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힘도 나 자신 속에 있으며 나를 해치는 무서운 칼날도 나 자신 속에 있다. 이 두 개의 나 자신중의 어느 나를 따르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요즘엔 혼잣말이 부쩍 늘었다, 나는 다정스럽게 내 이름을 부른다.
“인호야.”
소리 내어 나는 대답한다.
“왜 불러.”
“나와 노올자.”
“그으래”
나와 나는 요즘 어깨동무를 하고 날마다 함께 산에 간다. 나는 내 친구가 너무 좋다. 우리의 우정은 천지가 갈라지기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부모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 왔고 죽음도 우리의 우정을 갈라놓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씨동무인 나를 사랑한다.
독일의 작가 F 밀러는 독일의 사랑에서 말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별이 하늘에 빛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별들은 저마다 신에 의해서 규정된 궤도를 따라 서로 만나고 또 헤어져야만 하는 존재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든가,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다.
밀러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다. 이 별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소멸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이 신의 섭리를 우리는 ‘인연’이라고 부른다.
이 인연이 소중한 것은 반짝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의 빛을 받고 너는 나의 빛을 받아서 되쏠수 있을 때 별들은
비로소 반짝이는 존재가 되는 것.
인생의 밤하늘에서 인연의 빛을 밝혀 나를 반짝이게 해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삼라와 만상에게 고맙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009년 초겨울 (최인호의 ‘인연’ 머리글)
그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더 쓸쓸하고 삭막하다. 마침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오늘은 정확히 아버님 2주기 기념일. 아내와 둘이서 테라코타를 다녀올 생각이다.
“내 다정한 아픈 사람들아, 그대의 병을 대신 앓고 싶구나. 아프지 말거라, 이 땅의 아이들아, 그리고 엄마야 누나야, 창밖을 보아라. 새봄이 일어서고 있다.”-최인호의‘인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