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샐러니(한 송년 파티에서 나눈 대화)
이십 년째 나누는 삶을 실천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내외분께서 15명의 친구들을 초대하여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대화 중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을 올려놓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많이 약하다. 마치 책상 위에 놓인 화병 같아 보인다. 실수로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깨질 것 같다. 예전에 우리들은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참고 살았는데 지금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조금만 힘든 일이 있어도 견디지 못한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캐나다로 올 때 돈 200불 가지고 왔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고 살지 않으면 먹고 살지를 못했다.
16세에 캐나다로 와서 지렁이를 잡으러 다녔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를 마치면 네 시에 지렁이를 잡으러 가 밤 열한 시 경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서야 공부를 시작했고 다음날 아침이면 눈을 비비며 학교로 갔다. 그래도 백 점을 맞았고 약대를 졸업했고 약사가 되었다.
약사로 40년 가까이 일했는데 돈은 크게 모으질 못했다. 아직도 우리네 사고에는 돈을 쫓는 것은 양반이 아니라는 사고가 있다. 크리스천 문화도 현세보다는 내세에 관심을 둔다. 이 땅의 물질-돈-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가지기가 쉽다. 그래서 자신도 돈을 등한시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닌 듯 하다. 돈도 중요하고 지금 이 순간도 중요하다.
인도계통의 사람들은 숫자에 강하다. 돈에는 철저한 편이다. 집을 하나 사면 그 집에 서너 가구가 함께 산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도 그럴 것이고 가족 간에 유대가 강해 그렇기도 할 것이다.
어느 날 가게에 온 인도사람에게 당신들은 왜 그렇게 돈을 밝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돈을 좋아하지 않고 돈을 멀리하면 돈도 나를 멀리하고 외면한다고.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 말이었다.
예전에는 온타리오 호수 근처의 백인 동네 샤퍼즈(Shopper’s Drug Mart)에서 25년을 일했다. 하지만 지금은 제인과 로렌스에서 일한다. 샤퍼즈의 높은 자리에는 이태리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직원들도 이탈리아 계가 많은 편이다.
자신은 중간관리자 겸 약사로 일한다. 고객들 중에는 흑인들이 많은 편이다. 자마이카 출신들은 비교적 착하고 성실하다. 소말리아 출신도 착하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출신들은 속이기를 잘한다. 겨울 같은 때 일부러 슬리퍼를 신고 와서는 가게에서 넘어져 다쳤다며 소송을 거는 경우도 있다. 백인 점원은 교묘히 흑인들을 놀리고 업신여기기도 한다. 이때 무작정 흑인들을 편들 수만도 없다. 백인 점원들이 은근히 자신의 말도 듣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높은 사람들도 이태리 계 백인이고 아랫사람들도 이태리 계 백인이니 중간에 끼어 애를 먹을 때가 많다. 지금 인생공부 많이 하고 있다.
CPP(Canada Pension Plan)를 부은 사람이나 붓지 않은 사람이나 나중에는 다 비슷해진다. 부은 사람은 자기가 부은데서 돈을 타먹고, 붓지 않은 사람은 정부에서 보조를 해주니 같아질 수 밖에 없다. 캐나다는 사회주의적인 면이 많은 것 같다. 의료비도 들지 않고 학교교육도 무상으로 보내주니 안정적이다. 대학교육도 정부에서 돈을 빌려주니 공부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잘사는 나라 미국도 그렇지 못하다. 의료보장제도가 온타리오 주와 같지 않다. 미국의 경우 중산층이라도 중병에 걸리면 가진 집 한 채 날리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캐나다는 사회보장 제도가 잘되어 있다. 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 노약자가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되어있다.
엔지니어가 대학을 졸업하면 초임이 얼마나 되는가? 직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약 4~5만 불로 보면 되지 않을까?
돈을 많이 버는 가정이나 적게 버는 가정이나 허덕이는 건 마찬가지다. 돈을 많이 벌면 그만큼 많이 쓰기 때문이다. 자녀를 사립학교로 보내려 한다. 고등학교에서부터 사립학교에 보내면 그 비용만해도 적지 않다. 하버드니 예일이니 하는 미국의 일류대학에 보내려면 자녀당 년간 10만 불은 족히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