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묻다/김사인 외
<깊이 묻다/김사인>
사람들 가슴에
텅 빈 바다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깊게 사무치는 노래 하나씩 있다
늙은 돌배나무 뒤틀어진 그림자 있다
사람들 가슴에
겁에 질린 얼굴 있다
충혈된 눈들 있다
사람들 가슴에
막다른 골목 조선낫 하나씩 숨어 있다
파란 불꽃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후두둑 가을비 뿌리는 대숲 하나씩 있다
“좋은 말, 산 말을 잘하려 애쓰는 것이 시의 본래 자리이지요. 동시에 노래였고요. 말한다는 것의 근본, 울고 노래한다는 것, 다시 말해 시의 근본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종이 위에 쓰인 시’ ‘비유와 이미지 등에 기대서 행과 연을 나눈 서정적인 줄글’이어야 시라고 여기는 우리의 고정관념은 덫일 수 있습니다. 벗어나야 시다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시는 애쓴 말입니다. 고단백의 에너지체여서 소화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발하는 말이고, 사람의 애씀이니 잘 어루만져보고, 잘 ‘옷 입어’ 보시면 전해져 옵니다. 어떤 수준의 시인지도 분간됩니다. 시를 문면의 말뜻 풀이로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 시를 받치고 있는 마음, 느낌에 우선 자신을 내줘볼 것을 권하고 싶어요. 시는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요. 자전거 타는 법, 헤엄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몸이 익혀야 비로소 알게 되지요. 시 읽기도 비슷합니다.” -김사인 시인의 말
<인면조의 자부심에 답함/신미나>
한 잎의 풀이
한 줄의 파도가 되어
풀잎풀잎풀잎풀잎풀잎
물결쳐오면
줄기를 자르면 하얀 진액이 나오고
쓴 풀을 먹기 좋아하는
초식동물이 되어
인간을 벗기로 한다
산양이 백조를 보듯이
여우가 오로라를 보듯이
인간 이외의 눈으로
앞발을 들고
오로지 자연의 말에 귀를 열어라
지금 나의 감각은 고원의 큰 바위처럼 확실하다
산딸기의 신맛처럼 생기롭다
내가 먼 하늘에 대고
사람의 말을 흉내 내면
이쪽에서 저쪽 산까지
이상한 메아리가 울려
작은 소리에도 놀란 사람들이 버섯처럼 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