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랑 선생님 면담
청소년기에 부모를 떨어져 혼자 지내며 공부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타 지방에서도 그러할진대 타국에서야 더욱 더 그러하다. 나는 30세 후반에 잠시 뉴욕에서 혼자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어른인데도 낯선 곳에 떨어져 공부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물며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기에야 오죽하랴.
오늘도 적지 않은 한국의 청소년들이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이국 땅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부모와 함께 하지 않는 유학생이 부모와 함께 하는 유학생보다 숫자가 더 많다. 청소년기에는 부모의 보호아래 있어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잘 알아서 하며 모범적인 생활습관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부모가 지켜보지 않은 타국에서 잘 하기란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리 만치 어렵다. 말도 통하지 않는데다 문화도,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정체성을 찾으며 공부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캐나다의 많은 유학생들이 이런 어려움으로 빗나간 길을 걷고 있다. 학교 수업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음은 물론 떼로 몰려다니며 노래방엘 다니고 술과 담배를 즐긴다. 심지어 마약까지 하는 학생도 있다. 유학생들이 함께 어울려 다니지 않으면 왕따를 시키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럴 마음이 없더라도 휩쓸리게 마련이다. 그러다 유학을 와서 본래의 목적인 공부에 전념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몇몇 학생들은 공부를 제대로 한다. 밤늦게 까지 24시간 문을 여는 커피가게에는 밤이 맞도록 공부하는 학생들을 쉽사리 볼 수 있다. 족집게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해야 할 공부를 혼자 힘으로 알아서 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를 해두면 대학에 가서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내성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은 대학에서 결코 따라갈 수 가 없다. 우선 영어가 안되면 그 많은 읽을 불량을 다 읽어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리포트를 쓰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많은 한국학생들이 대학 1학년, 2학년 때 탈락하여 도태된다.
부모가 함께 하지 않고 혼자서 중고등학교로 유학 오는 학생의 경우 누군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보살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유학을 와서 1년 6개월 된 해랑이가 학교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나 확인하고 싶어 선생님과 시간 약속을 했다. 약속된 시간은 학교수업이 끝날 무렵인 오후 2시 45분. 정확히 시간을 지켜 학교로 가니 기다리고 있던 유학생의 컨설팅 선생님이 반가이 맞아 준다. 선생님은 해랑이의 학습태도와 성적이 나무랄 데가 없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수학은 본인의 학년보다 한 학년을 건너 뛰어 공부를 하는데 그곳에서도 2등을 했다. 과학은 영재반에 들어갈 실력이 충분히 되는데도 본인의 영어 실력이 거기에 못 미친다고 사양하였는데 다음 학기에는 영재반에서 공부를 했으면 한다고 말한다. 면담하는 선생님 마다 해랑이 같은 학생만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말한다. 말투로 보아 빈말은 아닌 듯 하다. ESL을 포함한 전체 학과목의 평균성적도 90점이 넘는다니 칭찬할 만 하다. 짧은 시간에 많은 진전을 이룬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해랑의 경우 성공요인은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자신이 디시플린이 있다. 본인의 마음속에 나는 잘해야 하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자신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잘하기 위해 노력한다. 둘째 공부하는 방법을 안다. 공부는 집중할 때 능률이 커진다. 주위가 산만하고 집중할 줄 모르는 학생은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성적이 나오질 않는다. 대개의 경우 학생 본인이 미래에 대한 목표가 뚜렷할 때 집중할 줄 안다. 이런 학생의 경우 스스로 공부할 동기가 분명하다고 말하는데 해랑이도 이 경우에 해당된다. 셋째로 중요한 것은 주변의 친구들이다. 공부를 제대로 하는 친구들을 사귀면 공부를 해야 할 땐 집중적으로 공부를 한다. 하지만 주위의 친구들이 생전 공부는 하지 않고 떼지어 노래방이나 다니고 놀러만 다니면 본인도 모르게 공부와 거리가 멀어진다. 해랑의 경우 공부를 해야 할 땐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주위에 있었다. 공부를 안 하거나 못하면 왕따를 당하는 분위기가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부모의 역할을 대신 하는 가디언의 역할이다. 학생이 빗나가지 않도록 가디언이 학생의 정신상태나 생활모습, 바른 영양섭취를 통한 체력유지 등에 세심한 신경을 써 줄 때 학생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 해랑의 가디언은 1년 6개월 동안 학생을 잘 돌보아 준 것이다. 학교 선생님도 가디언이 학생을 참 잘 돌보아 주었다고 칭찬의 말을 잊지 않았다. 해랑의 성공을 대견해 하며 해랑이가 이곳으로 유학을 올 때 영향을 준 한 사람으로써 기쁨이 이만저만 아니다.
(2006년 12월 15일 토론토에서 이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