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께사 지역(Duquesa landfill area)은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마을이었습니다. 그곳 쓰레기 더미에서 돈이 될만한 것을 찾고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집 앞에서 물끄러미 낳선 방문객들을 대하는 그들의 눈빛은 참 따뜻했습니다. 경계하는 눈빛이나 외면하는 눈빛이라고는 없었습니다. 지킬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사람들의 눈빛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주어진 삶에 순응하는 듯한 모습이었다고나 할까요. 쓰레기 더미에서 무언가를 주워 머리에 이고 나오는 젊은이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마침 소 한 마리가 쓰레기 더미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어요. 먹을 것을 찾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주민들의 몸짓에는 선함이 가득했습니다.
두께사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주로 아이티 난민들입니다. 아이티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도미니카로 건너온 사람들이지요. 도미니카 정부는 아이티 난민들을 반기거나 환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난민의 지위를 가지고 살면 차별받고 소외받기 일쑤인가 봅니다. 그곳엔 어린이들이 많았습니다. 한 가정에 자녀들이 평균 서너 명은 되어 보였습니다. 엄마들이 자녀들을 돌보는 모습은 볼 수 있었는데 아빠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빠들은 자녀를 낳고 나면 떠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빠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물론 아빠로부터 사랑을 받아본 기억도 없겠지요.
아이들에게 다가가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장난을 치는 짓궂은 녀석들도 있었지만 마음을 열고 다가와주는 그들이 참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눈을 맞추고 함께 노래하며 춤을 추었지요. 노래하고 춤추며 그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잠깐 와서 그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모자를 나누어 주고 핫도그를 나누어 주고 사진을 찍어 현상해 주고는 떠나버리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무엇인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께사 지역의 아이들은 몸이 마르고 날씬했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 뚱뚱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릴 적 자랄 때 친구들 중 뚱뚱한 친구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처럼요. 당시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늘 코가 줄줄 흐르고 몸은 대개 말라있었지요. 두께사 마을에 사는 어린이들도 살찐 친구들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눈망울은 총총한데 몸을 말라있었답니다. 날렵한 몸을 가진 그 이이들 모습을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났습니다.
도미니카의 고아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돌보는 제니라는 미국인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고 고아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제니는 캘리포니아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도미니카 산토도밍고 지역에서 고야들과 한집에 함께 살면서 그들을 돌본다고 합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두봉 선교사님이 생각났습니다. 두봉 선교사님도 프랑스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먼 이국땅 한국의 가난한 마을에 와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사람들을 섬겼지요. 그렇게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제니 선교사의 모습을 보면서 두봉 선교사의 삶이 겹쳐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큰딸이 전문의 수련을 받기 위해 코넬 대학병원에 지원했을 때의 일입니다. 면접을 담당한 의사는 유대인 할머니 의사였습니다. 큰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가워했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 광주로 와서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치료했었다지요.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그 유대인 의사 할머니는 큰딸을 펠로우로 뽑았습니다. 당연히 충분히 자격 요건에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요. 펠로우로 지내면서 큰딸 내외는 의사할머니 부부와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큰사위가 버드 워칭 취미를 가지게 된 것도 유대인 의사 할머니의 남편이 버드 위칭 취미를 가지고 있었고 버드 위칭과 사진 찍는 취미를 가져보라고 권유했기 때문이지요. 딸은 유대인 의사 할머니 댁을 방문하여 김치를 함께 만들기도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베프에게 젊은 시절 서울에서 만났던 선교사 할머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친구가 만났던 선교사 할머니도 당시 싱글로 지내면서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그분으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을 만나는 건 큰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분들을 대하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냐는 도전을 받고, 또 작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이웃을 도우며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마을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동네 주변을 좀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길게 길이 나있고 길 양옆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었습니다. 철조망으로 집의 경계를 구분하고 있었지요. 집집마다 마당에서 닭이며 오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수탉이 암탉 몇 마리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내가 지나가자 꼬끼요 울기도 하였습니다. 오리들도 있었는데 그중 몇몇은 흰색털을 가진 오래였습니다. 털에 흙탕물이 묻어 검은색 오리인지 흰색 오리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였지요. 동네를 가로질러 냇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구정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쓰레기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 동네가 전혀 낯설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친근감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아주 익숙한 느낌이었습니다. 어릴 적 자라던 고향 동네 시골길과 많이도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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