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221

누가 나무를 돌보지? Who will look after my tree?

데릴은 사람들에게 친절할 것과 일상의 소중함을 알려주었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감각을 민감하게 갈고닦으며 유지해야 함도 일깨워 주었다. 그것이 자연이든, 사물이든, 관계든. 데릴과 내가 서로 알고 지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고작해야 이 년 반이나 될까. 대릴은 포트 이리에 살던 큰딸 가족의 이웃이었다. 그는 마치 내 옆집에 사는 이웃이라도 되는 양 가깝게 느껴졌다. 독일계 캐나다인인 그에게 서먹함이란 없었고 오히려 오랜 친구처럼 여겨졌다. 언젠가 딸아이는 옆집에 백인 내외분이 사시는데 따뜻하게 대해 준다며 웃었다. 한국 드라마며 영화를 보라며 자주 추천해 주신다고 했다. *파머즈 마켓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빵과 쿠키를 팔고 계셨다며 재미있어했다. 정원에서 키운 보랏빛 라벤더 꽃을 잘라 꽃다발을 만들어..

수필·시 2023.12.24

데릴 스테파닉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흰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오십 대 중반으로 보였다. 그다지 크지 않은 키에 걸음걸이가 가벼웠다.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인지 친근감마저 느껴졌다. 막 피어나기 시작한 대지의 새싹들이며 활짝 핀 개나리가 그렇게 보이게 했던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날씨가 너무 좋아요 안녕하세요? 라며 인사를 건네왔다. 가벼운 눈인사로 답례하며 세워둔 자동차로 향했다. 잘난 체하는 뭇 백인 남자들과는 다르게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라 여겨졌다. 옆집 현관 앞 정원에서 보라색 라벤더 꽃을 자르고 있는 그를 다시 만났다. 자신은 아내와 둘이 살고 있는데 아침마다 정원을 돌보는 즐거움을 누리며 산다고 했다. 빵을 굽거나 요리하는 것이 취미라며 나중에 시간이 되면 차라도 함께 나누자고 했다. 중..

수필·시 2023.10.10

낯설게 하기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오죽했으면 '명품 인생으로 사는 습관'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을까.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습관을 지니라고 강요하거나 잔소리를 해대지는 않았던 듯하다. 스스로 자신에게 힘주어 말하곤 했다. 사실 좋은 습관을 지니는 것보다는 나쁜 습관을 지니는 편이 더 쉽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음주나 흡연, 도박이 과하여 습관이 되면 중독으로 이어져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한번 습관이 들면 습관의 사슬이 고래 심줄로 변하여 옭아매기에 빠져나오기란 낙타가 바늘귀로 나오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내가 골프를 시작한 것은 삼십 대 후반 미국 뉴욕주의 한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졸업을 앞두고 학점을 계산해 보니 따야 할 필수 학점에 다소 여유가 있었다...

수필·시 2023.09.27

호박 행복

텃밭에 심긴 호박 넝쿨 쭉쭉 뻗어갈 때 나는 행복하다 호박 넝쿨 잎 돋아나 철망 가득 덮고 노란 꽃 날마다 피워 벌들 넘나들 때 나는 행복하다 꽃 진 뒤 구슬 닮은 열매 맺히는가 싶으면 어느새 파릇한 애호박으로 자라 있을 때 나는 행복하다 동그란 호박 길쭉한 호박 따면서 즐거워하는 아내 볼 때마다 나는 행복하다 애호박 이웃에 나눠 주고 돌아오며 환하게 웃는 아내 얼굴 대할 때 나는 행복하다 땡볕에 늘어져 정신줄 놓았던 호박잎이 제 정신 차리고 생기를 되찾으면 나는 행복하다 그냥 심기만 했는데 잘 자라 행복 가득 안겨주는 호박 너 참 고맙다

수필·시 2020.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