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은> 아침 이슬로 오셨습니다 파란 하늘로 오셨습니다 편안한 미소와 그윽한 눈길로 수줍은 듯 오셨습니다 삶의 질곡 아픈 이야기 귀 기울여 들어주셨습니다 조용히 말씀하셨지만 우렛소리로 들려왔습니다 긴 세월 닦으며 보관해 온 거울 하나 선물로 주셨습니다 수시로 비추어 .. 수필·시 2019.11.23
뙤약볕 하오 외 4편 본 교회 정원(꽃밭)을 소재로 쓴 자작 시 몇 편 올립니다. <누이> 활짝 핀 꽃을 보면 환한 얼굴로 웃고 있는 내 누이를 만난 것 같다 살짝 시드는 꽃을 보면 시름에 겨워 주름이 늘어난 내 다른 누이를 만난 것 같다 <뙤약볕 下午> 꽃밭에 잡풀을 뽑느라 물을 주느라 꽃을 옮겨 심느.. 수필·시 2019.10.24
4월에 드리는 안부/한소 <사월에 드리는 안부/한소> 그대여 사월입니다 얼어붙은 땅 스르르 녹아 민낯 내미는 사월입니다 나무들 뿌리에서 물 길어 올려 가지로 실어나르기 바쁜 사월입니다 꽁꽁 얼었던 호수 환한 얼굴로 기러기 떼 반겨주는 사월입니다 숙꾹새 쑥꾹쑥국 울어 가슴 쓸어내리는 사월입니다 .. 수필·시 2019.04.21
어느 길로 오시렵니까 <어느 길로 오시렵니까/한소> 허리에 수건 차시고 제자들 발 씻기셨듯 발 깨끗이 씻겨드리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허리 굽혀 정성스레 닦아주신 것처럼 그렇게 닦아드리겠습니다 가만히 눈빛 바라보신 것처럼 조용히 바라보겠습니다 수선화 수줍은 마음으로 맞이하겠습니다 하얀 목.. 수필·시 2019.04.04
아침에/한소 <아침/한소> 여린 관목 삐져나온 잔가지에도 다사론 햇살 내려앉는 지붕 위에도 두 팔 벌려 봄 기다리는 나무 위에도 잔설 소복한 수풀 속에도 당신은 자비론 얼굴로 비추십니다 메이저맥 선상 베더스트와 더플린 사이에 팀호튼 커피점이 있다. 북쪽을 향하여 앉으면 창밖으로 길이 .. 수필·시 2019.03.29
그늘 <그늘> 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키를 키우고 가지를 넓게 뻗는다 봄이면 싹을 피우고 그늘을 만들어 쉴 자리를 내어준다 나이테를 늘여갈수록 조금씩 가지를 뻗어 쉴 수 있는 그늘을 내고 싶다 동네 입구 느티나무 근처에는 못 가더라도 카리브 해변 야자수 정도는 되었으면 밴댕이 .. 수필·시 2018.12.08
거기 아무도 없나요 <거기 아무도 없나요> 저기요 저 좀 봐주세요 거기 문 열고 나가시는 분 제발 제게로 좀 다가와 주세요 예전엔 누구나 예쁘다고 한마디씩 하셨잖아요 엊그제 일인데 잊어버리셨나요 이토록 매몰차게 외면하실 수 있으세요 걸레질 하시는 분 저 좀 봐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언니 오.. 수필·시 2018.11.29
아내 1/閑素 <아내 1/閑素> 돈도 나오지 않고 밥도 생기지 않는 詩想을 떠올리며 시를 쓴다고 우두커니 앉아 일어날 줄 모르는 헐벗은 시인에게 방해가 될까 봐 살금살금 설거지를 하고 부엌과 거실을 부지런히 오가며 묵은지 꺼내와 토막 난 고등어를 빼곡히 얹네 비린내 나는 고등어 반 토막 같.. 수필·시 2018.01.10
살아야 하는 이유/閑素 <살아야 하는 이유/閑素> 죽었다 깨어나도 세상을 바꾸는 일은 할 수 없으리 세금을 줄여 더 많은 기업인이 지역사회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게 할 수는 없으리 하지만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헬퍼 한두 명 쓰는 일은 할 수 있으리 통 큰 기부는 못 할지라도 동네 주변을 깨끗이 .. 수필·시 2017.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