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거기 아무도 없나요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8. 11. 29. 04:25

<거기 아무도 없나요>

 

저기요 저 좀 봐주세요

거기 문 열고 나가시는 분 제발

제게로 좀 다가와 주세요

예전엔 누구나 예쁘다고

한마디씩 하셨잖아요

엊그제 일인데 잊어버리셨나요

이토록 매몰차게

외면하실 수 있으세요

걸레질 하시는 분

저 좀 봐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언니 오빠

물 한 모금만 주세요

목이 말라요

몸이 떨리고 아파요

말라가고 있어요

몸이 약해지니 진딧물이며 벌레들이 와서

살을 파 먹으며 못살게 굴어요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아직 저는 더 살 수 있어요

조그만 보살펴 주시면

새로운 잎도 피워낼 수 있을 거에요

꽃을 피워 향기가 가득하게 할 수도 있다구요

하지만 지금은 힘이 없어요

외로워요

제발 저 좀 봐주세요

조금만 더 있으면

버려져 죽게 되겠지요

그리고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겠지요

사라져 가는 게 무섭고 두려워요


누구도 반응하지 않던 비명과 호소에 응답하여 죽어가는 생명들을 살려내시고 새로운 잎을 돋아나게 하여 우리 모두에게 생명의 환희를 선물하신 김형호 장로님 감사합니다. 2018 11월 閑素 


 127일은 편지 쓰는 날(world letter writing day)이다. 누구에게 쓸까 생각하다 김형호 장로님께 쓰기로 하였다. 장로님께서는 교회 현관 앞에 놓인 화분에 심긴 화초를 정성껏 돌보신다. 한동안 물을 주지 않거나, 한꺼번에 너무 많이 주어 견디지 못하고 죽어가거나 몸살을 앓던 것들이다. 새록새록 살아나더니 지금은 생기가 넘친다. 매주 토요일 아침 두세 시간 정성껏 돌봐주시는 김형호 장로님(83) 덕분이다. 연로하셨음에도 몸을 아끼지 않으시고 만데빌라며 행운목 등 다양한 나무의 잎을 닦아주신다. 화장실 또는 부엌을 오가시며 물을 퍼다 나르신다.

 언젠가 우리도 외로워 질 것이고 힘들어 할 날이 올 것이다.

 

<감사 카드 내용>   

 사랑하는 김형호 장로님, 장로님께서는 교회 앞 화분의 식물들이 몸살을 하며 죽어갈 때 생기를 불어 넣어주시고 살려주셨습니다. 활짝 웃는 나무와 잎을 보며 온 성도가 기뻐할 수 있게 하셨지요. 장로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아름답고 좋은 세상을 어떻게 보살피고 다스려야 하는지 본을 보여주셨답니다. 장로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도 늘 건강하신 모습 뵐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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