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낯설게 하기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23. 9. 27. 07:32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오죽했으면 '명품 인생으로 사는 습관'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을까.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습관을 지니라고 강요하거나 잔소리를 해대지는 않았던 듯하다. 스스로 자신에게 힘주어 말하곤 했다.
사실 좋은 습관을 지니는 것보다는 나쁜 습관을 지니는 편이 더 쉽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음주나 흡연, 도박이 과하여 습관이 되면 중독으로 이어져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한번 습관이 들면 습관의 사슬이 고래 심줄로 변하여 옭아매기에 빠져나오기란 낙타가 바늘귀로 나오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내가 골프를 시작한 것은 삼십 대 후반 미국 뉴욕주의 한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졸업을 앞두고 학점을 계산해 보니 따야 할 필수 학점에 다소 여유가 있었다. 수강 신청했던 한 과목을 취소하니 미화로 팔백 불가량을 환급해 주었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하다 학교 근처에 있는 골프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렇다고 개인지도를 받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학과목을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그 시간에 나가서 혼자서 연습공을 치는 것이었다.
그래도 운동신경은 좀 있는 편이어서 공차기, 테니스, 탁구 등 구기 운동은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잘한다고 자부하는 편이었으니 은근히 자신도 있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연습장에 가서 텔레비전에서 본 프로 선수들의 스윙을 흉내 내며 힘껏 채를 휘둘러댔다. 이때 잘못된 습관이 몸에 배고 말았다. 평생에 후회하게 될 일을 하고야 만 것이다.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가 처음 배우는 것보다 수십  배는 더 힘들었다. 잘 치고 싶은 욕심에 마음이 앞서 엎어 치거나 뒤땅을 쳐대며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중이다. 정작 써야 할 근육은 쓰지 못하고 얄팍한 잔꾀만 늘었다.  
육십 대 중반이 되어 골프 선생님께 개인레슨을 받기로 하였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호기롭게 시작하긴 했지만 지도를 받을 때뿐 혼자서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 습관으로 되돌아가 버린다. 잘못된 습관이 고래 심줄이 되어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 한탄도 한두 번이지 이걸 계속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포기할까 하다가도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다행한 것은 술이나 담배, 도박, 마약 등 다른 중독성 있는 습관은 가져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전혀 그렇지 않을 사람으로 보이는데도 술이나 도박에 중독되어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곤 한다. 주변 사람들의 돈을 끌어들여 도박으로 탕진했다는 사람 이야기를 최근에도 들은 바 있다.
사실 습관은 우리를 편하게 한다. 습관을 만들면 특별히 에너지를 쓰지 않고도 쉽게 할 수가 있다. 모임에 참가하여 자리에 앉을 때도 어디에 앉으면 편하고 유리할지 순식간에 판단한다. 이것은 본능에 가깝다고 보아도 좋을 터이다. 한번 그렇게 자리를 정하고 나면 다음 시간에는 별생각 없이 앉았던 자리에 앉게 된다. 자신이 앉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으면 왠지 신경이 쓰이고 불편해지기도 한다. 이렇듯 습관은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고도 할 일을 해내기에 유리한 면이 많다.
하지만 글쓰기는 반복에 의한 습관이 좋지 않게 작용할 때도 있다. 습관적으로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면 새로움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들리는 소리 등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에 십상이다. 생각과 상상하기를 방해하는 익숙함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오감으로 느끼는 감각을 매 순간 경이로움으로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명품 인생으로 사는 습관을 지니는 것만큼이나 나쁜 습관과 이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각고(刻苦)의 노력으로 되기만 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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