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모임
이택희
문학단체의 번개모임을 청도에 있는 본인의 전원주택에서 가지자고 하였을 때 무척 기대가 되었다. 친해지지 않고는 집으로 초대하지 않는 상식에 비추어 모임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기쁨이 있었다. 도시생활에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온 나로서는 전원생활의 기쁨을 간접 체험하는 좋은 기회도 될 것 같았다. 찜통더위를 피하여 시원한 산중에서 문인과의 만남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일구어온 시골집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기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터였다. 삼십여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으니 음식준비만 해도 만만찮은 일임은 당연하다치고 참석자 대부분이 초행길이라 교통편까지 고려해야하니 신경 쓸 일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아닌 듯 자신의 시골집에서 번개모임을 가지자고 제의하였을 때 보통 강단은 아니다 싶었다. 문학단체의 사무국장직을 맡은지라 바쁘기기가 이만저만 아닐 터인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니 보통 배짱이 아니다.
전원주택이 위치한 산중턱에 올라오니 숨 막히던 더위가 거짓말처럼 가셨다. 눈앞에 펼쳐진 산등성이의 위세가 만만치 않다. 사방이 산으로 둘려져 있고 마을 앞쪽에 강이 흐르니 배산임수의 전형이다. 아니나 다를까 스님이 절집으로 쓰고 싶다고 팔지 않겠느냐고 타진해 왔단다.
산 중턱에 소담스럽게 지어진 집. 주인의 성격만큼이나 깔끔하게 정돈된 실내 공간, 고풍스런 느낌의 탁자며 편안한 소파, 바깥 풍경과 어울리는 그림이 정갈하다. 책장 속에 진열된 책들이 눈길을 잡아끈다. 문학에 대한 주인의 관심과 사랑이 느껴져 온다.
큰 바위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가 땀을 식힌다. 그러고 보니 커다란 바위들이 곳곳에 있다. 바위를 뒤로하고 소를 팠고 물위엔 수련이 떠있다. 분수처럼 물을 뿜어주니 속까지 다 시원하다. 집 뒤쪽의 높은 경사를 이용하여 물길을 만들었고 졸졸 흘러내리는 물이 소에 닫는다. 아기자기한 맛이 일품이다.
직접 농사를 짓는 고추며 가지 파가 나란히 심겨져있다. 주인의 부지런함을 증명이나 하듯 튼실하게 자랐다. 채소도 자기를 돌보아주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인가. 초보의 주인을 만나 생채기를 앓고 있는 캐나다의 채소가 불쌍하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뿌리를 제대로 내리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아픔을 겪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주변 경관을 돌아보고 참석한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자연에 취하고 정에 취한 듯 다들 환한 얼굴이다. 바비큐 틀 앞에서는 부채를 부쳐가며 고기를 구워대고 한쪽에서는 시원한 맥주를 나르기에 정신이 없다. 계곡 물에 담가두었던 수박을 잘라 내어오니 진치 집이 따로 없다. 야외의 식탁 앞엔 가지런히 준비해둔 마늘, 토마토, 상치, 고추 등 각종 야채들이 먹음직스럽다.
참석한 회원들이 식탁 주변으로 둘러앉았다. 연이은 건배 제의에 들뜬 얼굴로 기쁨을 나눈다. 구운 고기에다 각장 야채를 안주삼아 서너 배 술잔이 돌았다. 불콰하게 취기가 오르니 신선이 따로 없다. 산중턱에서 맞이하는 파티의 기쁨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구수한 된장국을 곁들인 밥맛이 일품이고 바비큐 틀에 구운 고구마도 구수하다. 강원도에서 공수하였다는 옥수수가 삶아져 나오니 시골 정취가 더해진다.
술 한 잔 나누는데 풍악이 없을쏘냐. 야외무대에선 아코오디언과 색스폰 연주가 시작되었다. 구성진 가락이 좌중의 흥을 돋운다. 여름밤 산중에 흐느적거리듯 울려 퍼지는 멜로디가 이색적이다. 밤이 깊어갈 수록 끈적거림이 더해진다.
원로 작가 선생님들과 막 글쓰기를 시작한 막내에 이르기까지 하나가 되어 노래를 부르고 몸을 흔든다. 선배들의 노래에 존경의 박수가 후배들의 노래엔 격려의 답례가 오고간다. 선후배간의 아름다운 어우러짐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리라.
흐르는 물길을 따라 위에서 술잔을 띄우면 아래에선 받아 마신다. 물을 퍼 담아 끼얹겠다고 쫓아다니고, 물벼락을 피해 혼비백산 달아나니 동심으로 돌아가 세상 근심 잊은 지 오래다. 아이 같은 해맑음만 있을 뿐이다.
밤이슬이 평상을 촉촉이 적시었다. 이슬을 맞으며 별빛을 바라본 때가 언제였던가. 어린 시절 시골 과수원에서 여름날이면 평상을 펼쳐놓고 별을 세었던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듯 소담스런 시골의 정취가 있고 낭만이 있구나싶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았다. 지금부터라도 추억을 되찾고 자연과 벗하며 조금은 느린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화가로 또 다른 삶을 개척하고 계신 회원님의 부군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젠간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닐까하는데 공감한다. 집 마당에 피어난 제비꽃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았느냐는 물음에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대답을 하였다. 캐나다에서 반년 이상 있으면서 나무와 꽃의 소리를 조금씩 알아듣게 되었으니 그리 대답하여도 무리는 아니리라.
불꽃놀이가 이어졌다. 타들어가는 불꽃을 바라보며 우의를 다졌다. 빛을 보는 순간 참석자 모두는 친구가 되었다. 불꽃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도 하나보다. 뻗어나가는 미래에 대한 희망만 있었다. 달구벌 수필 문학회가 대구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대한민국은 무론 세계 속에서도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문단이 되겠다는 염원이 담겨진 것이리라.
초저녁부터 시작된 모임은 열시가 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산을 내려왔다. 산장에서 차를 세워놓은 초입까지 제법 먼 거리라 차로 이동하였다. 탈 사람에 비해 준비된 차량이 적어 트렁크에 몸을 실었다. 좁은 트렁크에 세 사람이 끼어 타야했으나 웃음만이 가득하다. 자연 속에서 확인한 화합의 정신과 따뜻한 정으로 일 년은 너끈히 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