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들꽃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9. 7. 7. 23:50

들판에 핀 꽃들을 유심히 보아오지 않은 탓인가. 노랑 하양 보라 자줏빛으로 수놓은 꽃들이 한바탕 잔치라도 벌이나 보다. 무릎 높이만큼, 허리춤만큼 자란 들풀이 흩날리는 모습을 보노라니 어린 시절 동구밖 보리밭 길에 서 있는 듯하다.

어느 예술가가 들에 핀 꽃보다 더 아름답게 자신의 작품을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정원사가 가꾼 정원이 자연 그대로 바람에 흩날리는 들풀보다 귀하랴. 

꽃잎 위에 맺힌 이슬 방울이 햇살에 비치는 모습을 두고만 볼 수가 없어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시를 쓰고, 작곡가는 선율로 표현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창조한 어떤 작품도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는 미치지 못한다. 


뉴펀들랜드로 여행을 떠난 지인의 정원을 돌본다. 아침마다 정원에 나가 물을 주며 잡풀을 제거한다. 뜰앞엔 들풀이 가득한 공터가 있고 공터는 숲으로 연결되었다. 들판엔 하얀 들국화가 빼곡히 피어있다.

조그만 텃밭을 일구어 토마토니 상치, 깻잎과 쑥갓을 심었다. 오롯이 자라나는 상치며 조금씩 키를 더해가는 깻잎,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한 토마토를 보며 생명의 경이를 느낀다. 물을 뿌려주면 싱그러운 냄새를 풍기며 반기는 모양이 아기와도 같다. 잠시 돌보는 정원이요 텃밭이건만 금새 정이 들고 애착이 간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텃밭 가꾸기와 같지 않을까. 허락된 시간만큼 관리하고 돌보다가 때가 되면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랑하는 자녀조차 잠시 돌보다 놓아 보내주어야 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마음대로 컨트롤 하고 쇠뇌 하려 드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건 잊어버리고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을 하고 화를 낸다.


몇송이 꺾어 거실에다 두고 싶다. 온 들판이 어여쁜 들국화 천지이니 십여 송이 꺾는다고 표날 리도 없을 터이다.

하지만 줄기에 칼을 대어 싹둑 잘라내면 아프지 않을까. 한두 달은 족히 피어있을 터인데 내 욕심만 채우려 자르면 며칠 보는 것으로 끝나고 말리라.

있는 그대로 두고 보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그동안 내 욕심만 채우려 자르곤 했었다. 거실에 놓고 바라보는 기쁨을 당연하다 여겼다. 이제야 자연 그대로 두고 즐기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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