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인가 여름 한 철 고향에 계신 부모님 곁에서 지냈다. 자라던 당시와는 사뭇 다른 변해버린 고향이었지만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길지 않은 시간 부모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렸다.
끼니를 준비하며 행복해하시는 어머님 모습에 가슴 뭉클해 지곤 했다. 맛있게 먹고 있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흡족해하시는 얼굴 대하며 크고 높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 듯도 하였다. 어린 시절 마당 가운데 평상을 펴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맛있게 먹던 된장찌개며 부추부침개 생각에 눈가가 젖어들었다.
어느 날 베란다의 문을 열고 뜰 앞으로 나가보니 아파트 벽 한쪽 귀퉁이에서 난초 같은 어린 순이 올라왔다. 잎이 무성해지더니 어느새 꽃대를 피어 올렸다. 야생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지라 무슨 식물인지 궁금하였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원추리였다.
캐나다로 건너와 이년 가량 지나는 동안 알지 못할 고독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가족이 있다고는 하나 때로는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동생들, 친구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잦았다. 아무리 살기가 좋다한들, 아무리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한들 부모 형제가 계시고 조상의 뼈가 묻힌 고향산천에 비하랴.
바람에 흩날리는 들풀은 그리움에 젖은 여린 마음을 조금은 어루만져 주는 듯하다. 나날이 키를 더해가는 들풀이며 형형색색 아름다움을 뽐내는 들꽃을 보노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라 그럴까. 광활한 들판을 바라보면 고향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가 돌아갈 하늘나라도 바람에 나부끼는 들풀과 풀꽃이 가득한 저 들판과 같지 않을까.
야생화가 절정을 이루더니 칠월이 되자 눈에 익은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 베란다 앞뜰에서 본 그 원추리가 아닌가. 아, 이 땅에도 원추리가 있었구나!
멀거니 올라온 꽃대는 대문 앞에서 고개를 길게 빼고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님 얼굴이다. 이국땅에 떨어져 지내는 피붙이를 하루도 잊어본 날이 없으실 어머니.
흔하게 보는 원추리이지만 토론토와 고향을 연결해주니 더욱 정겹다. 특별히 예쁠 것도 미울 것도 없는 수더분한 원추리에서 동네 아주머니 모습도 보인다. 엎어지면 코 베어 갈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어리숙한 들꽃에 마음이 끌린다.
집을 나간 사람을 기다릴 때 노란 손수건을 나무에 걸고 놓고 돌아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던가. 원추리의 노란 꽃잎은 어쩌면 어머니 마음에 걸린 손수건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가을이 오면 부모님을 모셔와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가까운 곳에 여행이라도 하면서 환하게 웃으시는 얼굴을 대하고 싶다. 당장은 건강하시지만 언제 다시 약해지실지 모를 일이다. 시간만 보내다 영원히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하랴
멀거니 핀 원추리가 먼데 하늘을 바라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