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아버지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나 봅니다.
“우리 아빠는 앞을 보지 못해요. 함께 운동도 못해요.”
아버지는 실망치 않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보지 못하는 아빠가 보는 엄마보다 더 잘하는 게 있어. 아빠는 밤에 불을 꺼도 책을 읽을 수 있단다.”
아들은 아버지가 들려 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꿈나라로 향했습니다. 훗날 아들은 하버드 대학에 입학할 때 이 이야기를 글로 썼습니다. ‘어둠 속에서 들려준 베드 타임 이야기(Bed time story in the darkness)’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육신의 빛은 잃었으나 세상을 보는 선명한 비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눈 뜬 제가 아버지를 인도하는 게 아니고 소경인 아버지가 제 삶을 인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밤마다 불을 끄고 동화책을 읽으며 꿈과 희망을 심어주셨습니다. 밝은 미래를 보여주셨습니다. 앞을 못 보는 아버지가 제 아버지라는 사실이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강영우 박사와 큰 아들 폴(한국이름 진석)의 이야기 입니다. 폴은 하버드대를 졸업한 후 최고의 안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강 박사님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접한 건 아내로부터였습니다. 토론토에 오셔서 강연을 하셨는데 무척 감동적이었다고 했습니다.‘눈먼 새의 노래(A Light in My Heart)’라는 CD를 사서 건네 주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박사님의 강의를 접한 건 지난 해 한국의 한 병원에 있을 때였습니다.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병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중 우연히 박사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마침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직후라 마음이 무거웠던 때 강연을 듣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삶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앞을 보지 못함에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여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시각장애인 최초로 국비 장학생이 되어 미국 유학 길에 올라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철학박사 학위를 받으며 조지 W. 부시 행정부 의 차관 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자녀들에게 꿈과 비전이라는 원동력을 갖게 하여 원하는 길을 잘 갈 수 있게 한 이야기는 더 큰 감동이었습니다. 자신의 어려움과 장애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녀가 진정으로 부모를 존경하고 따르도록 모범을 보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퇴원 한 후 캐나다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췌장암 선고를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는 진단에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절망에도 불구하고 지인들께 메일을 보내어 슬퍼하지 말기를 부탁하셨습니다. 나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나는 축복받은 삶을 살았고, 행복했으니 나 때문에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지요.
박사님이 계셔서 어려운 중에도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역경 가운데서도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음을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역경을 당하여 비틀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당당히 이겨내고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음을 압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역경지수가 높은 사람이라고 한다지요. 강영우 박사님은 참으로 역경지수가 높은 분이셨습니다. 남기신 자취는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의 삶에 분명한 이정표가 되어 지리라 믿습니다.
박사님으로 인하여 세상이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강영우 박사의 마지막 편지 전문)
즐거운 성탄과 2012년 복된 새해를 맞이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올해는 그 어떤 해보다 뜻 깊고 아름다운 한 해였습니다.
50년 전 서울 맹학교 학생이었던 저는 자원봉사자 여대생인 아내를 처음 만났습니다. 40년 전 저는 그 예쁜 여대생 누나에게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는 비전이 담긴 이름 석자, “석.은.옥”을 선물하며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제가 아내와 함께 유학생의 신분으로 미국에 온지도 30년을 훌쩍 넘어 40년이 다 되어 가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창립한 사회복지법인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은 2012년 20주년을 맞이합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속에서 저희 두 부부의 사랑을 듬뿍 먹으며 훌륭하게 자라난 두 아들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 미국 주류 사회의 리더로서 각자의 분야에서 아버지인 저보다 훨씬 훌륭한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2011년 큰아들 진석이는 워싱턴 포스트가 선정한 최고의 안과의사로 뽑혔고, 차남인 진영이는 지난 8월 오바마 대통령의 선임 법률 고문으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경사에 경사가 겹친다고 10월에 진영이는 어여쁜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단 둘뿐이었던 저희 부부가 올망졸망 손녀딸들과 손자를 데리고 바쁜 일정 속에서도 짬짬이 식사도하고, 산책도 하고, 놀이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입니다. 게다가, 요번 크리스마스에는 조카들과 조카손주들까지 모두 모인다고 하니 어른들과, 초등학생부터 이제 막 태어난 간난아기까지 함께하는 아주 시끌시끌 정신 없는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아 기대가 매우 큽니다.
저는 지난 해 4번이나 한국을 방문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 냈습니다. 한글책 “원동력”이 두란노서원에서 출간되었고, 미국에서는 “Today’s Challenges, Tomorrow’s Glory”가 출간되었습니다. 특히나 원동력은 한국 기독교 출판협회에서 2011년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내도 자전적 에세이인 “해피 라이프”를 출간하여 지난 10월에는 함께 한국을 방문해 출판 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이번에 함께 연세대학교에 강연회를 참석하느라 오래간만에 아내 팔짱을 끼고 교정을 걷게 되었는데, 예전 아내와 함께 캠퍼스 커플이라도 된 양 신이 나서 교정을 누비고 다니던 그때가 생각이 나서 둘이 한참을 웃기도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저는 참으로 복되고 감사한 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저의 실명을 통해 하나님은 제가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역사들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전쟁이 휩쓸고 가 폐허가 된 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두 눈도, 부모도, 누나도 잃은 고아가 지금의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덕분입니다.
실명으로 인하여 당시 중학생이라면 꿈도 못 꿨을 예쁜 누나의 팔짱을 끼고 걸을 수 있었고, 실명으로 인하여 열심히 공부해서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 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실명으로 인하여 책도 쓸 수 있었고, 세상 방방곡곡을 다니며 수 많은 아름다운 인연들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아름다운 인연들로부터 받은 게 너무 많아 봉사를 결심 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강연들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눈을 잃고, 저는 한 평생을 살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늘 여러분의 곁에서 함께하며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보다 간절하나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여러 번 병원에서 검사와 수술, 치료를 받았으나 앞으로 저에게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 의료진들의 의견입니다.
여러분들이 저로 인해 슬퍼하시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작은 바램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끝까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렇게 하나, 둘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할 시간도 허락 받았습니다.
한 분 한 분 찾아 뵙고 인사 드려야 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점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하였고, 은혜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12월 16일
강영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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