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본 시니어 대학 가을학기 글쓰기 강좌 3
<수필 읽기>
공부는 때가 있는가?
이순섭
거창하게 공부라 할 것도 아니지만 무엇이든지 익히고 기억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고 힘이 든다.
나의 어릴 때는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기억도 잘 되고 오래오래 계속하고 싶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공부해라 숙제해라 하는 꾸중을 부모님께 들어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밤늦게까지 불 켜놓고 있으면 빨리 불 끄고 자라는 꾸중은 들은 적은 있었다. (그 시대는 시골 농촌에서 가난한 때라 온 식구가 한 방에서 자야 했다. 전깃불도 없는 때라 등잔불을 켜고 사는 시대라 오래 켜두면 끄름이 나서 아침에 일어나면 콧구멍이 까맣게 그을려 있게 된다)
일하다가도 잠깐 쉬는 시간에 책을 읽다 보면 꾸중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없어 청소년 시간을 공백으로 넘겼다.
결혼하고는 남편의 우환으로 일하며 바쁘게 살다 보니 공부는 물론 독서도 담을 쌓고 살수 밖에 없었다. 그러구러 인생의 황혼기인 노년에 들고 보니 머리에 녹슬고 신경이 무디어졌는지, 게다가 하고자 하는 의욕도 떨어지고 게을러지고 이해력과 판단력도 흐려지고 총기도 약화되었다.
이민 올 때는 2~3년 열심히 공부하면 잘은 못해도 생활에 불편은 없을 것이라 자신했는데 너무 힘들고 바쁘게 살다 보니 뜻대로 안 되고 역부족이고 한계를 느끼게 되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되고 영어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고 부끄럽기까지 하다.
집에서도 교회에서도 일터에서도 한국 인물만 상대하다 보니 영어를 접할 기회가 없으니, 그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 것 같다.
그나마 일에 묻히어 바쁘게 살다 보니 기억력 살아있는 시간은 어느새 흘러가고 말았다. 이제는 배운 것도 잊어버리고 깜빡깜빡 가물가물하는 노년이 되었다.
공부는 꼭 젊어서만 할 수 있는 것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황혼의 나이 육십 칠십 이후에도 열심히 노력해서 검정고시를 통해서 대학도 끝내고 박사도 통과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독학으로 전문 지식을 머리에 담고 세상을 놀라게 하며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되고 존경받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훌륭한 후배들을 키워내고 지식의 유산을 남기고 훌륭한 공적과 이름을 남기고 간 이들이 많이 있다. 그렇게 보면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 부끄러워진다. 시대와 환경 탓으로 돌리고 원망으로 나의 무능을, 게으름을 합리화하며 위안받으려는 자신이 후회스럽고 부끄럽다.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독서와 글쓰기와 방송을 통해 콩나물시루에 물 주기와 마찬가지 현실이지만 거기에서도 유익한 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정신세계와 질적 향상을 위해 거두어들이고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이 남은 삶을 보람 있게 행복으로 이끄는 것이 되지 않을까….
이 땅에서의 삶이 얼마나 남았을까. 금보다 귀한 순간순간 보람을 느끼며 후회없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노년에 와서 깨닫는 감사
장석영
덜컥 겁부터 났다. 나이가 들면서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그랬다. 사실 그보다는 내가 자리에 누우면 와병 중인 아내는 누가 간병하느냐가 더 큰 걱정이었다. 저녁을 마치고 식탁 의자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허리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파져 왔다. 임시방편으로 옆에 있던 손자에게 허리 좀 주물러 달라고 하고 부축받아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처음엔 나이 들어 그렇거니 하며 한숨 자고 나면 괜찮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웬걸 다음 날 아침에는 침대에서조차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간신이 목욕탕으로 들어가 양치질하려고 했으나 허리가 꼿꼿이 펴지질 않아 애를 먹었다. 세면대에 물을 받아 세수하려고 허리를 굽혔다가 통증에 그만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손에 들었던 비누가 바닥에 떨어졌으나 허리를 굽혀 줍는다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아침밥을 드는 둥, 마는 둥 하고 병원 문이 열릴 시간에 얼른 병원부터 찾았다. 의사는 “노년이 되면 운동 부족으로 찾아오는 근육통에 불과하니 약 먹고 쉬면 곧 괜찮아진다.”고 안심시킨다. 약국에서 약을 받아 들고 집에 와 다시 침대에 누워 별수 없이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그 사이 병원에서 처방해준 대로 약 먹고 거실에서 한 시간 정도 천천히 걷기운동을 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 며칠 동안 내가 생각해도 좀 무리를 한 것 같았다. 여기저기 모임에 불려 나가기도 했고, 시나 수필 청탁이 밀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글쓰기에 몰두했다. 그러니 운동시간이 꽤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미 그 며칠 전부터 가끔 목이 아프고, 눈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경고신호를 보낸 것인데, 미련하게 그걸 그냥 무시했다.
나는 체력적으로는 80대를 막 넘겼지만, 정신만은 50대를 유지한다고 자신해 왔던 터라 이렇게 내 몸이 어느 날 갑자기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때 내 생각은 이러다가 불구가 되면 어쩌지? 큰 병원을 찾아가도 나이가 많다고 수술도 해주지 않을 테고 이대로 여생을 고통 속에서 지낸다면 자식들에게 괜히 부담만 안겨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 중에 친구로부터 안부 전화가 왔다. 첫 마디가 건강하냐고 묻는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그냥 밖에 나가 걸어 봐”하고 싱겁게 웃어넘긴다. 그리고는 옛날 말에 드러누우면 죽고, 일어나 걸으면 산다는 말이 있다면서 “친구야, 기도 많이 하잖아, 기도해서 안 되는 게 없다면서 뭘 걱정해, 기도해봐, 걸으면서 기도하면 될 거야"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친구의 충고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거의 1주일 정도 사무실에도 못 나가고 공원길을 하루 30분 이상 기도하면서 걸었다. 그러나 반듯하게 속도감 있게 걷는다는 게 내 형편으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힘들면 가다가 쉬는 한이 있어도 꾸준히 걸었다. 며칠 뒤 허리 펴기가 신기하게도 예전으로 돌아왔다. 이게 은혜구나 생각했다. 걷는 시간은 봄철인데도 날씨가 추워서 예전처럼 아침 6시쯤부터 걷지 못하고 한낮이 되어 햇볕을 받으며 걸었다. 걷기운동을 같이 하던 동네 노인들도 만났다.
매일 아침 걷기운동을 함께 했던 한 분이 얼마 전에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전해 들었다. 젊어서 기업을 운영해 돈도 많은 분이다. 그분은 8순 중반인데 헬스장도 가고 이따금 골프장도 출입하는 건강한 분이었다. 그러던 분이 갑자기 뇌경색으로 수술받고 병상에 누워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며칠 뒤 주말에 동네 노인들과 문병 차 그분 병실로 가봤다. 정신은 있는데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평소에 나라 걱정도 많이 하고 마을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도 앞장서곤 하던 분이다. 그런 모습들을 회고하면서 쾌유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드린 뒤 돌아서려니 그분은 병문안에 고맙다는 눈빛으로 바라만 보았다. 나도 모르게 괜히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을 나와 집으로 오면서 그분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무얼까? 하고 생각해봤다. 그렇다. 그분은 아마 예전처럼 동네 친구들과 걷기운동도 같이 하고 나라 걱정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다는 아주 소박하면서도 사소한 일상생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상생활이 '하늘의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시간은 너무 늦는다는 점이 안타깝기만 했다.
사람들은 밥 먹고 잠자고, 일하고, 이웃의 애경사를 찾아가는 그 흔한 일이 '하늘의 기적'이라 것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인 것처럼 느껴져서 감사할 줄을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다가 큰일이 닥치면 그때야 자신의 미련했던 삶을 후회한다.
내 허리 통증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한 주일 만에 완전히 사라졌다. 사무실에 나가고, 교회에 가고, 친구를 만나는 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 모두가 신의 가호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지금에 와서 실토하지만 나는 늘 입으로만 감사함을 되뇌면서 진정으로 느껴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이번에 감사한 일이 무엇이고 내 주변에도 이와 같은 감사할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사할 줄 모르면 기쁨이 없다. 기쁨이 없으면 불행하다. 자그만 일에도 감사할 줄 안다면 그 사람은 언제나 행복할 것이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다. 감사가 지속되면 될수록 행복의 크기는 따라서 점점 커진다. 나부터라도 숨 쉴 때마다 감사 거리를 찾아 감사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먼저 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코스모스를 생각한다
유홍준
가을이 깊어간다.
아침이면 벌써 냉기가 몸속으로 스며들고, 천지에 요란하던 풀벌레 소리도 이미 끊어졌다.
먼 산은 높은 곳부터 단풍을 물들여 내려오고, 길가의 가로수는 겨울채비를 위해 나뭇잎을 떨구며 감량을 시작한다.
이 쓸쓸한 계절에 그래도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가을꽃이다. 가을산의 청초한 들국화와 해묵은 고가(古家) 장독대의 국화꽃에는 어릴 때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이 있다.
옛 사람들은 국화꽃을 무척 좋아했다. 고려 상감청자 찻잔에 가장 많이 나오는 문양 중 하나가 국화꽃이며, 조선 청화백자 중에는 들국화를 그린 명품이 많다.
옛 문인들은 국화를 즐겨 노래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강진땅에 유배온 지 10여년 되던 어느 가을날 "우리집 가까이 있는 심씨네 뜨락엔 해마다 국화꽃이 종류별로 48종이 피었었지" 라며 회상의 시를 읊고서는 "비오는 이 가을날 다산의 초부(樵夫)는 눈물을 흘리며 이 글을 쓴다" 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국화꽃에서 좀처럼 그런 시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 친구가 아파트 베란다를 노란 국화.흰 국화 화분으로 늘어 놓았더니 아내는 꼭 상가(喪家)같다고 투정하더란다.
현대인에게 국화 대신 가을날 서정을 북돋워주는 것은 코스모스다. 길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는 가을의 여정(旅情)을 일으키는 우리 국토의 표정이 됐다.
가을걷이를 시작하는 누런 들판과 어우러진 도로변의 코스모스가 여린 바람에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흔들릴 때면 애잔한 감상(感傷)조차 일어난다. 그래서 코스모스를 노래하는 것은 소녀 취미로 돌리고 사나이 대장부들은 모름지기 코스모스의 아름다움을 감춘다.
올해 나는 만주땅 압록강변에서 가을을 맞았다. 그곳 들판의 길가에도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었다. 고구려의 첫 도읍인 환런(桓仁)의 오녀산성으로 오르는 길, '선구자' 의 고향 해란강가 일송정으로 가는 길, 그 모두가 코스모스 꽃길이었다. 그래서 만주땅은 내게 조금도 낯설지 않았고, 더욱 더 잃어버린 고토(故土)처럼 다가왔다.
그런 코스모스이건만 정작 이 꽃은 우리의 재래종이 아니라 멕시코가 원산지인 외래(外來)식물이다. 코스모스가 이 땅에 뿌리내린 것은 불과 1백년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최순우(崔淳雨).이태준(李泰俊)같은 지난 세대의 안목(眼目)들은 코스모스의 아름다움 앞에 이국적인이라는 단서를 달고 가을꽃으로 억새나 과꽃을 더 높이 쳤다.
그러나 불과 3백년 역사의 고추가 우리 음식의 상징이 된 것처럼 코스모스도 어느새 어엿한 귀화(歸化)식물이 됐다
식물학에서 말하기를 외래종이 들어오는 것은 우리의 토양이 약할 때라고 한다. 우리 토양이 강하면 아무리 힘 센 외래종도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자리공처럼 못된 외래종이 요즘 판치는 것은 마구잡이로 땅을 파헤쳐 생땅이 곳곳에 드러나면서 황무지 현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양을 다시 안정시키면 재래종이 결국 외래종을 이겨낸다니 우리는 나쁜 외래종을 물리치기 위해선 우리의 토양을 굳게 지켜야 할 일이다.
그러나 외래종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외래종이 들어옴으로써 우리의 식물분포에 다양성도 생긴다. 코스모스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신작로 공사가 한창일 때였다.
땅을 갈아 길을 닦으니 길가는 생토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고, 이 황폐한 자리에 멕시코의 메마른 땅을 원산지로 둔 코스모스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지금도 고속도로건 국도건 차도변에 코스모스가 무리지어 피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외래종이지만 미국자리공은 재래종을 고사시키면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지만, 코스모스는 재래종이 감당하지 못하는 빈 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외래종이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사랑하게 된다.
더욱이 코스모스처럼 어여뿐 꽃임에야. 그리하여 이제 우리 강산의 가을날에는 산에는 들국화, 뜨락엔 국화꽃, 길가엔 코스모스로 어우러지며 '코스모스(조화)' 를 이루고 있다. 코스모스의 이런 정착과정을 보면 나는 항시 외래문화의 토착화라는 거대 담론의 실마리를 여기서 생각하게 된다.
기불통즉통(氣不通即痛) 기통즉불통(氣通即不痛)
신민식
동의보감에 나오는 문장이며 한의학의 중요한 원리가 담긴 “기불통즉통(氣不通即痛), 기통즉불통(氣通即不痛)”이란 명문장이 있다. ‘기불통즉통’이란 기가 통하지 않으면 통증이 생긴다는 뜻이고 ‘기통즉불통이’란 기가 통하면 통증이 없다는 뜻이다. 앞의 통(通)자는 통한다. 소통, 교통이란 뜻의 통이고 뒤의 통(痛)자는 아픈 통증이란 글자이다. 기가 소통되지 못하고 순환되지 못하면 통증이 생긴다는 한의학 원리이다.
피의 통로를 혈관이라고 하고 기가 흘러 다니는 통로를 경락이라고 하는데 우리 몸에는 기의 통로인 12개의 경락이 있다.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생겨서 고혈압, 심장질환이 생기듯이 기의 통로인 경락이 순간 막히는 현상이 있다. 그래서 우리 말에 ‘기가 막히다’ 라는 말이 있다.
기가 막히다는 것은 기가 소통이 되지 않고 정체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지인이나 가족으로부터 정신적 충격을 받는 ‘기가 막히는 일’이 생겼을 때 몸에서는 기가 흘러 다니는 경락의 순환이 안 되면서 통증이 생긴다. 그래서 기가 막히거나 기절할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면 몸에서 갑자기 여러 통증이 생긴다. 이러한 기가 막혀서 생기는 질환은 갑자기 오면서 변화가 심하지만, 병원에 가 진찰해도 아무 이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서 우리 인체의 기의 통로인 경락이 막혀서 생긴 통증에는 가장 좋은 것이 침이다. 침을 맞으면 기가 통하면서 통증이 없어진다. 즉 기를 뚫어주고 소통시켜 주는 역할을 침이 한다.
기가 막혀서 생기는 증상은 신체의 통증뿐만 아니라 마음의 통증이 생긴다. 남편이나 부인 혹은 자식에게 가슴에 대못을 박는 ‘너하고 결혼 안 했어야 했다’,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나를 왜 낳았나요?’라는 얘기를 들으면 세월이 지나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아프고 우울해진다.
몸의 통증은 침이나 치료를 통해 회복되지만, 마음의 상처, 통증은 치료약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신과 약을 먹어도 사실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 없다. 이러한 마음의 병이 생겼을 때의 처방도 역시 ‘기통즉불통’이다. 기통을 하면 마음의 통증이 사라진다는 것인데 이때의 기통은 ‘에너지의 교감, 소통’이라고 본다. 서로 상처를 준 지인끼리의 에너지 소통, 교감은 진정한 사과,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는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방의 말에 감동, 교감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교감이란 서로 감정을 교환 소통한다는 뜻이다. 감정이 서로 소통이 될 때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고 막힌 기가 뚫어진다. 교감, 감동을 통해 소통을 한다는 뜻으로 ‘감이수통(感而遂通)’이란 주역의 문구가 있다. 이때 감(感)은 느끼는 감정으로 감동, 교감, 감화의 의미가 있다. 감동, 감화, 교감을 이루면 서로 통해진다는 의미이다.
가족끼리의 교감을 이룰 수 있는 방법으로 스킨십과 마인드 터치가 있다. 남편이 아침에 출근할 때 한번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는 행위, 아들을 한번 가볍게 안아주는 스킨쉽은 막혀있는 마음의 감정을 순간 풀어주는 좋은 방법이다. 또한 딸하고 차 한잔하면서 즐거운 대화도 마인드 터치(mind touch)이다. 부인하고 남편 또는 자식 간에 서로 손을 잡거나 또 어깨를 잡아주거나 하는 스킨쉽을 통해서 기가 서로 전달이 되고 기가 막히지 않는 현상이 생긴다. 이러한 교감을 평소에 잘 되면 화를 내고 싸우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주는 기가 막히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직장이나 지인끼리의 소통을 하는 방법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장소에서 차 한잔 하는 것도 좋다. 시내를 떠나 자연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야외장소에서 차 한잔을 하다 보면 자연에서 주는 힐링 에너지 속에서 서로 좋은 기분을 갖게 해준다.
밀폐된 공간에서 서로의 감정을 위로해 주려다 오히려 감정 갈등이 더 심해지고 오히려 더 안 좋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반해 자연의 좋은 공기와 기를 호흡하고 산책을 하는 것이 저녁에 피곤한 상태에서 술 한잔 회식을 하는 것보다 좋을 수가 있다. 요즘같이 푸른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에 산이나 야외에서 가족, 지인들과 막힌 기를 소통시켜 주는 교감의 시간이 더욱 필요한 시기이다.
- 시 읽기-
<내가 나의 감옥이다/유안진>
한눈팔고 사는 줄은 진즉 알았지만
두 눈 다 팔고 살아온 줄은 까맣게 몰랐다
언제 어디에서 한눈을 팔았는지
무엇에다 두 눈 다 팔아먹었는지
나만 못 보고 타인들만 보였지
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
눈 없는 나를 바라보는 남의 눈들 피하느라
나를 내 속으로 가두곤 했지
가시 껍데기로 가두고도
떫은 속껍질에
또 같힌 밤송이 마음이 바라면 피곤 체질이 거절하고 몸이 갈망하면 바늘 편견이 시쿤동해져 겹겹으로 가두어져 여기까지 왔어라
-시집, 다보탑을 줍다, 2004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자크 라캉
이 말은 라캉의 욕망 이론에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는 인간의 욕망이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욕망을 통해 구성된 것이라고 봅니다.
<마당 없는 집을 지날 때면/김선향>
나도 모르게 생긴 버릇이 있다
길가에 맞닿은 지붕 낮은 집
쪽창 하나에 현관문 하나
보려고 마음 만 먹으면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집
외면하려 고개를 돌리거나 숙여 보지만
악다구니가 고스란히 들린다
이 부부에게도
마음 밖에 가난한 마당 하나 있어야겠다*
고욤나무도 좋고 대추나무 한 주도 좋겠지
눈부신 파초 그늘도 좋고
수북이 쌓인 눈 덮고 튤립 구근이 숨 쉬는 마당에
부부의 허밍이 번지는
그런 마당 하나 있어야겠다
-김선향(1966~)
*백두산, ‘마당 있는 집’, [그 모든 가장 자리], 창비 2012에서
<그러거나 말거나/이달균>
골목길 미용실에선 수다꽃이 피었습니다
커트가 어떻고 파마는 또 어떻고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끝나지 않습니다
어제는 모종비, 오늘은 가루비
미용실 앞 작은 텃밭엔 강냉이 새싹들이
이모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 구경 한참입니다.
-이달균 시집 [달아공원에 달아는 없고], 문학의 전당, 2024
<작가의 말>
하루해
짧다 해도
길다
한 생애
길다 해도
짧다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오늘은 또
말줄임표로
<어제보다 조금 더/이문재>
어제보다 더 젊어질 수는 없어도
어제보다 조금 더 건강해질 수는 있다
어제보다 더 많이 가질 수는 없어도
어제보다 조금 더 나눌 수는 있다
어제보다 더 강해질 수는 없어도
어제보다 더 지혜로울 수는 있다
어제보다 더 가까이 갈 수는 없어도
어제보다 조금 더 생각할 수는 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어제보다 조금만 더
<취급이라면/김경미>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아도 괜찮습니다
살아 있는 게 너무 재밌어서
아직도 빗속을 걷고 작약꽃을 바라봅니다
몇 년 만에 미장원엘 가서
머리 좀 다듬어 주세요, 말한다는 게
머리 좀 쓰다듬어 주세요, 말해 버렸는데
왜 나 대신 미용사가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잡지를 펼치니 행복 취급하는 사람들만 가득합니다
그 위험물 없어도 나는
여전히 나를 살아 있다고 간주하지만
당신의 세계는
어떤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오래도록 바라보는 바다를 취급하는지
여부를 들었으나
소포는 오지 않고
내 마음속 치욕과 앙금이 많은 것도 재밌어서
나는 오늘도
아무리 희미해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여전히 바다 같은 작약을 빗소리를
오래오래 보고 있습니다
-김경미 시집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민음사 2023
<감 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 고향/유안진>
섶 다리로 냇물을 건너야 했던 마을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가야 했던 동네
까닭없이 눈시울 먼저 붉어지게 하는
아잇적 큰 세상이 고향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의 희망도 익고 익어 가느라고
감 따는 아이들 목소리도 옥타브가 높아가고
장마 끝 무너지다 남은 토담 위에 걸터앉은 몸 무거운 호박덩이
보름달보다 밝은 박덩이가 뒹구는 방앗간 지붕에는 빨간 고추밭
어느 것 하나라도 피붙이가 아닐 수 없는 것들
열린 채 닫힌 적 없는 사립을 들어서면
처마 밑에 헛기침 사이 사이 놋쇠 재터리가 울고
안마당 가득히 말라 가는 곶감 내음새
달다 단 어머니의 내음새에 고향은 비로서
콧잔등 매워오는 아리고 쓰린 이름
사라져가는 것은 모두가 추억이 되고
허물어져 가는 것은 모두가 눈물겨울 것
비록 풍요로움일지라도 풍성한 가을열매일지라도
추억처럼 슬픈 것, 슬퍼서 아름다운 것, 아름다워서 못내 그립고 그리운 것
그렇게 고향은 비어가면서 속절없이 슬픈 이름이 되고 있다
허물어져 가면서 사라져가고 있다
사람 떠난 빈 집을 붉게 익는 감나무 저 혼자서 지켜 섰다
가지마다 불 밝히고 귀 익은 발자욱소리 기다리고 섰다
<9월도 저녁이면/강연호>
9월도 저녁이면 바람은 이분쉼표로 분다
괄호 속의 숫자놀이처럼
노을도 생각이 많아 오래 머물고
하릴없이 도랑 막고 물장구처던 아이들
집 찾아 돌아가길 기다려 등불은 켜진다
9월도 저녁이면 습자지에 물감 번지듯
푸른 산그늘 골똘히 머금는 마을
빈집의 돌담은 제 풀에 귀가 빠지고
지난 여름은 어떠했나 살갗의 얼룩 지우며
저무는 일 하나로 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밥상 물리고 이부자리를 편다
9월도 저녁이면 삶이란 죽음이란
애매한 그리움이란
손바닥에 하나 더 새겨지는 손금 같은 것
지난 여름은 어떠했나
9월 저녁이면 죄다 글썽해진다
<물의 백서 3 ‘얼음’/이문재>
초 겨울
얼음이 얼기 직전
뒤돌아보는 물처럼
초봄
녹기 직전
자기 앞을 내다보는
얼음처럼
한겨울
얼음 속으로
얼음의 한가운데로
꽝꽝 더 얼어가는
얼음처럼
더 차가워져서
더 단단해져서
스스로 터져나가기를
원하는 얼음처럼
제 몸 밖으로
터져나가
으스러지고 싶어하는
녹아 흐르고 싶어하는
얼음 속 언 물처럼
이윽고
가벼워져
구름의 손을 잡는
새벽 물 안개처럼
보란 듯이 땅을 버리는
이른 봄 아지랑이처럼
-참고 글-
“조로바가 돌맹이를 걷어차자 돌맹이는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조로바는 그 놀라운 광경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걸음을 멈추고 돌맹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나를 돌아다 보았다. 그의 시선에서 가벼운 놀라움을 읽을 수 있었다. 무릇 위대한 환상가와 위대한 시인은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던가.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매일 아침 그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본다. 아니 보는 게 아니라 창조한다.” 니코스 카자찬키스의 ‘그리스인 조로바’ 중에서
인생은 매 순간의 합이다. 마음에 따라 매 순간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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