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만진 슬픔/이문재>
이 슬픔은 오래 만졌다
지갑처럼 가슴에 지니고 다녀
따뜻하기까지 하다
제자리에 다 들어가 있다
이 불행 또한 오래됐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여 있어
어떤 때에는 표정이 있는 듯하다
반짝일 때도 있다
손때가 묻으면
낯선 것들 불편한 것들도
남의 것들 멀리 있는 것들도 다 내 것
문 밖에 벗어놓은 구두가 내 것이듯
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음 안에 한 자리 차지할때까지
이 고통 오래 다듬어야겠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격월간 '녹색평론' 2019년 9-10월호
<문자/김경후(1971∼)>
다음 생애
있어도
없어도
지금 다 지워져도
나는
너의 문자
너의 모국어로 태어날 것이다
우리는 정지용이라는 시인의 이름을 곧잘 기억한다. 유명한 시 몇 편이 따라오는 유명한 시인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정지용이 유명한 걸까. 그건 바로 ‘정지용 시집’ 때문이다. 정지용 시집은 1935년에 나왔다. 이 시집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그야말로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양하는 이에 대해 가난한 우리말이 정지용의 손에 의해 아름다운 말이 되었다고 극찬했다. 정지용의 시집에서 “우리는 조선말의 무한한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정지용의 명성은 그의 모국어 능력과 사랑 때문에 가능했다.
문학에서만 모국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모국어는 우리의 삶 그 자체에 매우 결정적이다. 문화, 정서, 역사, 소통 모두 모국어 위에 놓여 있다. 모국어를 잃으면 그 모국어로 이루어진 영역을 흡수할 수가 없다. 모국어란 단순한 문자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과 몸을 채우고 있는 절대적인 무엇이다.
김경후 시인은 말을 다루고 사랑하는 시인답게 모국어의 절대적인 속성을 익히 알고 있다. 이 시에서 그는 모국어의 절대성을 이용해서 간절한 고백을 이루어냈다. 사랑한다는 말은 한마디도 들어 있지 않지만 이 시는 언어의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애정 표현을 담고 있다. 너의 과거와, 미래와, 의식과, 표현을 지배하고 있는 모국어가 되고 싶다는 말은 어마어마하다. 이 생에서 이루지 못한다면 다음 생에서라도 이루겠다는 말은 무시무시하다. 하여 색채에 대한 묘사 하나 없이 뜨겁기만 한 이 시를 놓고 생각한다. 이 생에서 나는 누군가의 모국어인 적이 있었던가. 과연 누군가를 모국어로 받든 적이 있었던가. -나민애 문학평론가
<불편한 동침 / 홍억선>
"작은 소리도 2인실에선 소음이고 6인실의 복닥거림 때론 편안하듯 낯선 곳 적응 누구에게나 두려워"한동안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바쁘다고 종종거린 것이 화를 불러와 발목이 부러지는 낙상을 입은 것이다.
응급 치료를 마치고 올라간 6인 병실은 진풍경이었다. 머리를 나란히 맞댄 침상 위에는 팔다리며, 머리, 가슴까지 허연 붕대를 감은 사람들로 일색이었다. 침상 옆에는 보호자 간이침대가 놓여 있어 가뜩이나 좁은 방에는 정원의 두 배나 되는 사람들로 복닥거려 그 밀도가 콩나물시루는 저리 가라였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은 나는 앉은 김에 쉬어 간다고 그 동안 누적된 심신의 피로며, 미뤄두었던 읽을거리를 이참에 해결하리라 마음을 느긋하게 먹기로 했다. 그러나 소박한 소망은 금방 깨어지고 말았다. 뼈를 다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입이 왕성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입원했다 하면 대부분 보름이나 한 달씩은 묵어가는 장기 투숙자라는 것도 같았다.
6인 병실의 식구들은 마치 전세버스를 타고 관광을 나선 사람들의 양상이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웃고 떠들었다. 세상 이야기의 근원지가 여기인 듯 화제는 무궁무진, 호화찬란했다. 그야말로 적당히 세상을 살아본 중년 이상의 남녀가 섞인 미니 세상은 가관이었다.
특히나 밥 때가 되면 부산하기 그지없었다. 잘그락거리면서 밥차가 오면 어디서 숨었다가 나오는지 온갖 비상식량이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와 이 입으로 들어가고 또 저 입으로 들어가는 걸 보노라니 먹고사는 것이 참으로 경이로웠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에서 막장 드라마라도 시작되면 그야말로 일사불란이었다. 마치 군대에서 제식훈련이라도 체득한 양 눈과 귀와 입은 한 모양이 되었다. 밤이 이슥하여 이윽고 불이 꺼지면 하루를 살아내기가 그렇게 고단한 듯 이곳저곳에서 깊은 한숨과 거친 코골이가 좁은 방을 덮었다. 하룻밤을 세운 나는 다음 날 원무과에 들러 사정을 해서 겨우 2인실을 하나 얻었다.
2인실은 일단 고요했다. 무엇보다도 같은 크기의 방을 둘이 쓰니 쾌적했다. 룸메이트는 나보다 십여 살이 젊은 뇌경색 환자였다. 그는 약간의 두통이 있었고, 구토가 있었으며 아침에 일어나니 한쪽 눈이 암흑천지가 되는 바람에 이곳에서 뇌경색 전조증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소심했다. 젊은 사람이 멀쩡히 다니면서 머리 어디에 혈관이 막혔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했다.
그는 정신적 절대안정이 필요했고, 나는 부은 발목을 높이 들어야 하는 육체적 안정이 필요했다. 그의 치료법은 약물로서 혈전을 녹이면서 하루 18시간 이상을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이었다. 그는 종일 이어폰을 끼고 억지 잠을 청하는 것으로써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다. 나 역시 외부와의 연락을 일체 차단한 채 오랜만에 심신에 자유를 부여하면서 마음껏 자고 실컷 글을 읽었다.
문제는 밤이었다. 평소에도 잠이 그리 많지 않은 나로서는 낮잠까지 보탰으니 밤을 낮처럼 쓸 수밖에 없었다. 내 딴에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서 책장을 넘겼건만 룸메이트는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내 머리맡에 켜진 전등 빛이 거슬렸던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한숨 소리를 내더니 조금 있다가는 이불을 거칠게 끌어당겨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그러다가 음악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소리로써 빛을 제압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내가 못이긴 척 불을 끄고 눕자 소리도 사라졌다.
이틀 밤을 뜬눈으로 밝히고 다시 원무과를 찾았다. 오히려 6인실이 그리웠다. 그곳에서 적응하기가 훨씬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방이 없단다, 그 복닥거리는 방이 더 귀하단다. 당부를 해놓고 병실로 돌아오자 한발 앞서 룸메이트가 짐을 싸고 있었다. 그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면서 6층에 있는 3인실 방으로 낮추어 가기로 했다고 했다. 가끔 들르겠으니 나보고도 놀러 오라고 했지만 그는 오지 않을 것이고, 나도 가지 않을 것이다.
낯선 곳으로의 적응은 설렘보다는 늘 두려움이 앞선다. 맞은편 침상이 하루만이라도 비어 있기를 고대해 보지만 그 기대도 난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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