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실수 투성이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7. 7. 4. 19:26
 

실수투성이  

이 택 희

이사를 자주 하면 부자가 된다고 한다. 학군 따라 옮기고, 아파트 평수 넓히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부자가 된단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니 부인하지는 못할 노릇이다. 
 아직 부자가 되지 못한 것은 한 곳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는 습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한 곳에 눌러앉아 사는 걸 은근한 자긍심으로 여겼다. 이사를 자주 다니지 않아야 더 잘 사는 거라고 은연중 교육을 받은 게다. 그래서인지 옮겨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전세금이나 월세를 올려 달라고 하면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다가도 소리 없이 올려 주고 한자리에 눌러 앉았다. 캐나다로 이주한 후에도 처음 들어간 아파트에 십 수 년을 살았다. 자기 집도 아니면서 오래 산다고 불가사의(不可思議)중 하나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걸 부끄럽다거나 잘못 되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사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한 때는 청빈하게 사는 사람들이 괜히 멋있어 보였다. 고위공직자 중 재산이 적은 사람이 더 정직해 보이고 존경스러웠다. 유명인이 전세를 살거나, 사는 집 규모가 턱 없이 작으면 괜히 따라하고 싶었다. 동일시에 의한 대리만족을 한지도 모르겠다. 이런 마음이니 집을 사고, 돈을 벌고 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 삼백육십오일 열심히 일만하고, 봉사할 기회가 주어지면 그걸 더 기뻐하고, 책이나 읽고 살면 만족했다.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 되는 줄 알았다. 
 사십 대 중반.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친구나 동료 중에 나 같은 사람이 없었다. 다들 집 한 채 정도는 가지고 있었고 돈 좀 벌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들려왔다. 내 생각이 당연한 게 아닌 걸 늦게야 알게 된 것이다. 소수의 성인군자가 멋있게 보였으나 모두 성인군자는 아니었다.     
 크건 작건 내 집 하나쯤은 장만해 두었어야 옳았다. 아이들 교육에, 어른들 생활비 보태느라 정신이 없었다 치더라도 집 한 채 장만치 못한 것은 내 부족함의 소치였다. 하긴 집 장만을 위해 알뜰히 돈을 모으기도 했다. 나중에 보면 집값이 모은 돈의 배나 올라 있었다. 빚 얻어서 집 산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돈 꾸지마라. 남에게 손 벌리지 마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다. 남의 돈을 잘 활용하는 것도 능력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다. 무리를 해서라도 내 집을 마련하고 평수를 넓히는 게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때 이미 버스는 지나간 후였다.
 사촌 형 내외를 만났다. 형은 오랜 교사생활을 했다. 세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아들 둘은 의사가 되었고 딸 역시 의사에게 시집을 가 삼 남매가 모두 의사이다. “삼 년 계획으로 미국에 머물며 박사학위취득을 위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58세)에 어려운 결심을 한 형을 축하해 주었다. 형수는 이 결정이 옳은가 의심하는 눈치다. 나이가 들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이 왜 없겠는가. “친정의 경우 삼 대 째 백년간 이사 한번 안가고 살고 있는데 이렇게 미국으로 덜렁 떠나도 될지 모르겠다.”며 속내를 내비친다.
 이 말을 끝에 “백 년 동안 대대로 한집에 사는 것이 자랑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고 핀잔을 주었다. “부자가 되려면 집 평수도 늘이고 이사도 좀 다니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두 분과 헤어져 돌아오며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듣기에 따라서는 거북할 수도, 마음이 상할 수 도 있었겠다 싶다. 처우가 그리 좋지 않던 시절 빚을 져가며 자녀교육에 몰두했던 두 사람이 아니던가. ‘전통을 지키며 사는 삶’의 가치를 인정한 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아닐 수 도 있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피력했어야 옳았다. 결과적으로 상대를 존중하기보다는 속물근성만 내보인 꼴이었다. 경솔하게도. 
 두 분께 책을 선물한 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헤어지기 직전 잠깐 앉아계시라고 하고는 서점으로 가 두 권의 책을 샀다. 하나는 형에게 다른 한 권은 형수께 드렸다.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좋아하신다. 가만히 백을 열더니 예쁜 펜 한 자루를 수줍은 듯 내어 놓으신다. “이거 잘 써질지 모르겠어요.” 

조금 전 한 권을 살까, 두 권을 살까 망설이다 결국 두 권을 샀는데. 그거 하나는 잘한 일이다. 한 권만 드렸다면 더 미안했으리라.
 세월은 자꾸 가는데 나는 아직 실수가 많다. 책 제목처럼 ‘경청’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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