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담장 허물기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7. 7. 21. 20:43

담장 허물기

                                                                                                                                                                        과수원엔 탱자나무와 아카시아 나무로 된 울타리가 있었다. 울타리는 계절이 바뀔 때 마다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는 가시만으로 황량했다. 봄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카시아 가지에 새싹이 나고 잎이 돋아 무성해졌다. 여름이면 아카시아 잎은 토끼 양식이 되었다. 아카시아 잎을 한 소쿠리 따 토끼장에 넣어주면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맛있게 먹었다. 비 온 뒤 물에 젖은 아카시아 잎을 먹였다가 설사로 토끼를 잃은 아픔도 있었다.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하며 누가 먼저 잎을 없애나 내기도 했다. 탱자나무에 탱자가 열리면 따서 냄새도 맡아보고 구슬치기도 하며 놀았다. 울타리는 참새 떼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참새들은 계절에 상관없이 울타리 주변을 맴돌며 놀았다. 겨울철 잔설(殘雪)이 남은 울타리 주변을 ‘짹짹’ 거리며 넘나드는 참새 떼가 정겨웠다.
   울타리는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사는 집 울타리 안쪽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였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남의 집 울타리 안으로 살그머니 고개를 들이밀면 ‘멍’하고 개 짓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한 울타리는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도시의 울타리엔 멋이 없다. 벽돌이나 블록을 쌓아 올린 울타리엔 이야기도 없고 낭만도 없다. 그냥 경계를 표시하는 하나의 상징물일 뿐이다.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을 구분 지어주는 역할만이 있다. 도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높이 쌓아 올린 담장은 벽안의 세계와 벽 밖의 세계를 구분하는 이분만이 존재한다.
마음속에도 울타리가 있다. 사람들은 마음속 울타리 안에서 편안해 한다. 오랫동안 익숙한 환경에 길들여지면 어느새 마음에 자신만의 울타리가 생겨나고 그 울타리 안에 안주하려 한다. 영어로는 이를 ‘컴포트 죤(comfort-zone)’ 이라 한다. 인간들은 ‘컴포트 죤’에 머무르며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하는 습성이 있다. 이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면 공포가 있고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새로운 도전이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울타리를 벗어나야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이 생긴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자신이 만든 울타리 안에 눌러 앉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이 만든 껍질 속에 마냥 안주하려 든다. 껍질 안에는 평안함이 있다. 긴장할 필요가 없다. 안정감과 평온함을 즐긴다. 

   그 껍질, 울타리 안에 가만히 있으면 마냥 좋은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세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바뀌는 세상,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태된다. 수시로 변하는 세상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퇴물이 될 수 있다.
   세상은 참으로 빠르게 변한다. 예전 같으면 몇 백 년이 걸려도 불가능할 변화가 십 년 아니 불과 삼사 년 안에 이루어진다. 인터넷이 상용화된 것이 십 수 년 전의 일이다. 이후 세상은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은행을 가지 않고 돈을 부치고, 밀린 공과금도 납부한다. 집집마다 전화를 한대씩 가지게 된 게 오래지 않은데 지금은 초등학생까지 핸드폰을 가지고 다닌다. 편지도 메일이나 문자메시지가 대신한다. 이제는 핸드폰으로 TV까지 본다. ‘MP3’다 ‘아이팟’이다 새로운 기기들이 하루가 다르게 출시된다.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바뀐 환경이 되려 나를 짓누른다. 새로운 기술을 익혀 활용할 줄 모르면 나도 모르는 새 바보멍청이가 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정년을 보장해주었다. 근무 년 수가 길어질수록 일은 쉬워지는 반면 급여는 많아졌다. 지금은 정년 때까지 일을 하는 사람이 극히 적다. 한 직장에서 정년을 하는 것이 미덕이요 당연하던 시대가 갔다. 지금은 오히려 한 직장에만 있으면 스스로 가치를 떨어트리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
   동유럽 사람들은 늑대사냥을 할 때 형형색색의 헝겊을 끈에 듬성듬성 매단다. 숲 속에 그 끈을 길게 묶는다. 몰이꾼들은 소리를 지르며 끈이 묶인 곳으로 늑대를 몰아간다. 당황한 늑대는 헝겊이 듬성듬성 달린 나지막한 끈을 통과하지 못하고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밑이 훤히 내다보이는데도 빠져나갈 줄 모른다. 아무런 저항 없이 그냥 통과할 수 있음에도 늑대는 그 울타리는 지나갈 수 없는 장벽으로 착각한다. 결국엔 포수의 총에 맞아 안타까운 죽임을 당한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마음의 울타리가 있다.
   근자에 들어 각 구청마다 울타리 없애기 운동이 한창이다. 담장 허물기 캠페인이 그것이다. 담장을 허물면 주변이 넓고 깨끗해 보인다. 내 집 앞 담장 허물기만 동참할 일이 아니다. 때로는 우리들 각자의 마음에 있는 담장도 허물어야 한다. 이 담장 허물기는 매일 매 순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어릴 적 추억 속의 울타리까지야 허물 필요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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