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선 택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8. 1. 20. 09:40
 

선 택 

이 택 희

삶의 여정가운데 때로는 쉬운 길을 만나가기도 하고 험산준령을 넘는 것 같은 어려운 길을 만나기도 한다. 길을 걸으며 성취의 기쁨을 맛보기도하고 때로는 절망의 나락에 빠져들기도 한다.

우리가 걷는 인생길에 언제나 성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취보다는 오히려 실패로 인하여 실망하고 안타까워하는 시간이 더 많을지 모른다. 항상 최선을 다한다고는 하나 무언가 부족하고 그때 그랬을 걸하고 아쉬워 하곤 한다. 만족을 모르는 우리의 욕심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더 큰 것을 얻으려 하는 향상심 때문이기도 하리라.

스스로 돌아보아 자신을 반성하고 더 나은 길을 찾는 일은 결코 나쁜 일만은 아니다. 자신에 대한 기준을 높이 정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 노력이 한 개인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삶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이다. 아침에 일어날 것인가 더 잘 것인가에서부터 학교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전공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결혼은 언제 할 것인가, 어떤 배우자를 선택할 것인가,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 어느 회사에서 일할 것인가 등. 이 모든 것이 의사결정이요 선택이다.

선택하는 삶을 살면서도 선택하며 산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더 많다. 남이 시켜서 또는 해야만하니 한다는 생각에 습관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 가운데 매일 매순간 있는 크고 작은 선택들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특별히 작은 선택들이 모여 습관이 되고 습관은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쉽게도 사람들은 큰 선택만을 선택으로 여기고 작은 선택은 선택으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큰 선택들도 중요하지만 작은 선택도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작은 선택이 모여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큰 선택은 신중하면서 우리 삶에 꾸준히 영향을 미치는 작은 선택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자세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선택도 훈련이다.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미리 상상해보고 바른 선택을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리라.

바른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우리는 실망한다.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하였던가하고 후회한다. 나의 삶 역시 실수의 연속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이 그렇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은혜를 잊고 산 것도 그렇다. 아이들을 공부시킨다고 외국으로 보내고는 곁에서 그들을 돌보지 못한 사실 때문에  가슴에 못이 박힌지 오래다.

청소년 오케스트라로부터 바이올린 독주 의뢰를 받은 딸이 기어이 연주를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자신은 솔로로 연주하는 것을 싫단다. 많은 준비를 해야하고 또 연주 당일 무대에 서서 긴장하며 연주를 해야 하니 싫은 걸 게다. 여러 명이 함께 연주 할 경우 긴장감도 덜하고 또 연습하는 데 재미도 더 있을 터. 혼자서 연습을 하고 연주하는 데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으리라. 

성인이 다된 나에게 강요를 말아 달란고 정색을 한다. 맞는 말이지만 마음 한구석이 공허하다. 토론토 청소년교향악단의 시즌 마지막 연주회에서 예쁜 드레스를 입고 멋지게 솔로 한곡 연주한다면 제법 그럴 듯 할터인데.

한국에서 같으면 억지로라도 시키겠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에 익숙한 환경이다 보니 아이가 싫다는 일을 부모가 강제할 수만은 없는 일. 이럴 땐 한국식 사고와 의사결정 방식이 은근히 그립다. 하지만 아이들을 이곳 캐나다에서 키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선택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 들여야 한다.  

기차는 이미 떠났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음 기차가 오게 되어있다. 혹 오늘 떠난 기차가 마지막 기차였더라도 내일 새벽에 도착하는 새로운 기차는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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