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 전문가
이 택 희
무심코 던진 조약돌 하나가 연못 속 개구리에게는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흉기이다. 옳다고 하는 일이라도 모두에게 옳고, 좋을 수 없음을 알려주는 교훈이리라.
수목원 초입에 진열된 분재가 아름답다. 자그마한 화분에 심겨진 소나무 한 그루, 쓰러진 고목의 등걸에서 가지가 나고 잎이 돋았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깊은 숲이나 산골짝을 찾지 않고도 가까운 곳에서 고목의 정취를 즐길 수 있음이 분재를 보는 묘미이리라.
적당한 크기의 그릇에 심긴 소나무가 귀하다. 한 폭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모과나무도 여럿 보인다. 감상하기에 좋도록 한곳에 모아 두었다.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걸으며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건 하나도 없다.
토론토의 집에도 하나쯤 가져다 놓았으면 좋겠다. 서양친구들이 와서 보면 무척이나 좋아할 것이다. 지난번 초대받아 갔을 때 옆집 친구 폴(Paul)은 남아메리카의 가이아나(Guyana)에서 가져온 식물을 하나씩 소개하며 자랑하지 않았던가. 밀림 속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는 나의 칭찬에 으쓱하기도 했던 것 같다. 분재를 가져다 놓는다면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선배로부터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고목나무처럼 보이게 하려고 철사를 엮어 억지로 가지를 잡아 비트는 것쯤은 예삿일이란다. 나무둥지를 잘라 암실에 넣고 뿌리기 나올때까지 몇 달을 기다리기도 한단다. 정상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일도 쉽지 않을 터인데 동강난 나무의 몸통에서 강제로 뿌리를 내리게 하다니. 심지어 나무에 염산을 발라 반쯤 태우기도 한다니 아연실색할 일이다. 사람들 눈에 좋게 보이려고 나무에게 하는 고문치고는 심하지 않나 싶다.
소리를 지를 수 없는 식물인지라 아픔을 호소할 수 없었으리라. 분재가 만일 인간이나 동물이었다면 크게 비명을 질러대지 않았을까. 밀렵꾼의 덫에 갖힌 노루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며 애타게 울부짖는 겁먹은 눈빛의 불쌍한 노루.
고목처럼 보일수록 가치를 더하니 자라지 못하도록 윽박지르고, 철사로 몸을 묶어 원하는 방향으로만 자라게 하는 건 이해가 되나 마음 한켠이 심히 아려오는 것도 사실이다. 비명소리가 들려오는듯하여 아름답게만 보이던 분재가 오히려 측은해 보인다.
며칠 후 집에서 조용히 신문을 읽고 있었다. '수학 천재소녀의 몰락'이라는 기사가 눈길을 잡아끈다. 13세의 어린 나이로 영국 옥스퍼드대학에 입학하여 부러움을 샀던 소녀가 십 년 후 몸을 파는 거리의 여인이 되었다는 내용의 기사이다.
‘학습 과속화 기법’을 개발한 유명한 과외 교사였던 소녀의 아버지는 이 학습기법을 딸에게도 적용했었나 보다. 정신이 맑아진다는 이유로 차가운 방에서 공부하게 하고, 주기적으로 명상을 시켰다. 공부시간 이외에는 지칠 때까지 테니스를 하게 했단다. 아버지에게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는 지옥 같은 생활을 했다고 말했을 정도이니 공부에 대한 강요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딸은 이를 견디다 못해 뛰쳐나가고야 말았다. 그리고 십년 후 몸을 파는 거리의 여인으로 나타났다. 자녀를 천재로 만들려 했던 부모의 강압적인 교육방식과 학대가 도리어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야 이해가 된다.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하여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니 욕심이 날만도 하지 않았으랴. 하지만 딸의 입장에서는 천재라는 칭찬을 듣고, 어린 나이에 일류대학에 입학하여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게 그리 좋지만은 않았나 보다.
철사로 비비 꼬아놓은 분재의 가지가 머리를 스친다. 분재가 소리 없이 아픔을 견디고 있었듯이 천재소녀 역시 아프고 힘 든다고, 지쳐 견딜 힘조차 없다고 오랫동안 아우성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혹 소녀의 부친은 그 아우성을 알고도 모른 척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지나 않았을까. 아이를 통하여 대리 만족을 얻으려는 부친의 어긋난 욕심이 아이의 정신을 비틀고 꼬아 회생불능의 상태로 만든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힘들어 할 때마다 조용히 와서 기댈 수 있는 나지막한 언덕이 되어지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비오는 날 우산 같은 존재로 남을 수는 없었을까.
사진에서 본 천재소녀의 눈동자가 자꾸만 어른거린다.
'수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변에서(금호강의 추억) (1) | 2008.04.18 |
---|---|
어떤 실수 (0) | 2008.04.14 |
비가 그린 삶의 모자이크 (0) | 2008.04.04 |
책 이야기 (0) | 2008.03.25 |
아 숭례문 (0) | 2008.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