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유난히 선생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문제 학생이었다. 딱히 사고를 쳐서 문제라기보다 해야 할 공부는 하지 않고 허공만 바라보며 공상에 잠기는 학생이었다.
교과서나 참고서를 읽는 데 집중해야 할 시간에 실존문학 작가에 빠져 그들의 저서만 들고 있었다. 각종 운동경기는 다 보아야 했고 성에 차지 않으면 운동장으로 나가 공을 차고 놀기에 바빴다.
선생님은 무척 엄격하셨다. 더러는 좋은 말로 충고도 하셨지만 때로는 사정없이 매질도 해댔다. 엉덩이나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맞아도 그때뿐이었다.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고 오죽잖게 위안도 했다. 성실하게 할 일을 꾸준히 하는 모범생이 더 많았음에도 말이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단체 여행을 하게 되었다. 마침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빈자리에 선생님께서 앉으셨다. 어인 날벼락인가! 여행을 망쳤구나 싶었다.
학생과장을 겸하셨던 선생님께서 옆자리에 앉으셨으니 여간 긴장되는 게 아니었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왜 그리 속만 썩이느냐는 책망이 있으리라 짐작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침묵 속의 긴장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선생님은 가만히 자신의 오른손을 뻗어 나의 왼손을 꼭 잡으셨다. 한참을 그렇게 계셨다.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은 '너를 사랑한다, 너를 인정 한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손을 잡은 채로 아버님 어머님은 잘 계시느냐고 물었다. 얼굴 한 번 뵌 적이 없는 부모님의 안부를 물었으나 그 말씀이 '네게 늘 관심을 두고 있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그날 왜 그렇게 기뻤는지 모른다. 하늘은 더 푸르렀고 나뭇가지에 촘촘히 달린 잎은 다른 날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싱싱하였다. 여행 내내 들뜬 마음 감출 길 없었다. 이후 선생님께서 담당하였던 국어 과목은 다른 과목의 교과서보다 더 잘 읽혔던 것 같다.
선생님의 손길은 삼십오 년이 지난 지금도 분명한 흔적으로 가슴 속에 각인되어있다. 그 손 잡음은 백번의 매질이나 천 번의 잔소리보다 더 가치가 있는 사랑의 충고였다. '나'라는 인격에 대한 인정이었고 '너를 믿는다'는 믿음이었다.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하여도, 절망적인 순간에도 선생님의 손길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나락으로 빠져들더라도 너끈히 헤쳐 나올 자신이 있다.
어려운 일이 닥칠 적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거나, 역전의 발판으로 삼는다. 이러한 습관을 지니게 된 역시 선생님 손바닥으로 전해져 온 따뜻한 체온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 역시 국어 과목을 담당하셨던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이 마음에 남아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