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소동을 보며
이택희
큰 아이가 한국에서 벌어지는 소고기 수입에 따른 광우병 우려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자신이 보기에는 문제도 아닌 일에 국력을 소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다른 중요한 일이 많을 터이고 거기에 시간과 노력을 집중해야 함에도 엉뚱한 곳에 신경을 쓰고 있단다.
딸의 논리는 미국의 식품의약국(FDA,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이 철저하게 검사하여 광우병에 걸린 소를 처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광우병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이다. 한국의 경우 정작 대중식당의 청결함이나 종업원들의 위생관념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그런 문제는 도외시하고 유독 광우병만 가지고 온 나라가 시끄러우니 이해하지 못하겠단다. 공부에 열중해야할 청소년까지 촛불 시위를 한다고 거리에 나서는 걸 보고 있자니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열을 올린다. 본인이 보기에는 미국이나 세계인의 관점에서 보면 웃음거리가 될 거라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떨어져 있는 우리가 제대로 알겠느냐며 이해를 시켰으나 안타까운 마음은 딸과 다를 바 없다.
얼마 전 몸이 좋지 않다고 미국보다 광우병이 더 자주 발생하는 캐나다산 소고기의 뼈를 고아 곰국을 해먹지 않았던가. 캐나다 산 고기를 매일 먹고 있는 캐나다 국민은 다 광우병에 그렇게 무감각한 건가. 코스코(COSTCO)나 노프릴 등 대형 유통점에 가면 고기를 사려는 사람들로 줄을 서있고 쇼핑카트엔 고기 덩어리가 한 두 개씩 담겨있지 않은가.
불에 살짝 구운 쇠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는 식당의 손님들은 또 어떤가. 여름이 다가오자 공원 곳곳에서 바비큐 틀에 불을 지펴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들로 줄을 선다. 얼마 전 경로잔치에서 드럼통으로 한 가득 갈비를 구워 65세 이상의 어르신 오백 분이 푸짐하게 드시게 하였다. 쇠고기가 그렇게 위험하다면 어르신들에게 갈비를 구워 대접할 생각도 하지 못하였으리라.
광우병 우려를 명분으로 수입고기를 제한하여 국내 축산업을 보호하고 농민들이 잘 살게 하자는 입장이 저변에 깔려있다는 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수출이 살 길인 대한민국이 처한 입장을 고려하면 무작정 시장보호만을 외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보호무역장벽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불이익을 당하는 건 오히려 우리가 아니던가.
실망스럽기는 정치인도 마찬가지이다. 표만 의식한 채 자신의 입장을 이리저리 바꾸어 국민을 현혹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국가적인 위기가 닥치면 사실에 입각하여 바른 판단,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판단으로 국가와 국민에 유익을 주도록 해야 함이 마땅하리라.
미국의 정치인의 경우 바른 소신에 의한 의사결정을 하고 발언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당의 입장과 개인의 입장이 다를 경우 무조건 당의 입장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무엇이 유리한지를 따져 소신껏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정치인에겐 언제쯤이나 그런 성숙함을 볼 수 있을까.
국민의 건강에 유달리 신경을 쓰는 미국의 FDA나 캐나다 연방정부의 보건부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지는 않을 터이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 누구보다 신경을 쓰는 그들이 아닌가. 광우병에 걸린 소가 있다면 가장 먼저 살 처분하여 국민들의 안전을 지켜내리라.
미국 역시 캐나다로 부터 소를 수입한다. 그들의 기준으로 광우병에 걸린 소를 수입 금지하려면 소 백만 마리당 두 마리 이상의 광우병 소가 발견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캐나다의 소가 천만 마리라 가정할 때 스무 마리의 소가 광우병에 걸려야 수입을 금지한다는 이야기이다.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국민을 보호하려는 생각은 바람직하다. 국민들도 이를 요구할 만하다. 그러나 있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너무 떠들어 정부와 국민 간, 국민 들 간에 신뢰를 잃게 하여서야 곤란할 것이다.
자녀와 함께 촛불시위에 나선 부모도 있고 부모를 따라나선 어린 자녀도 보인다. 거리에 나서기 전에 진실을 제대로 알고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과 의견을 정립한 뒤 행동에 나서면 좋지 않을까. 신문 보도만 믿고, 다른 사람의 의견만 듣고 길거리로 나서는 건 어리석고 답답한 일이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아주 낮거나 제로에 가깝다. 이 문제를 가지고 국력을 소모하고 열을 올릴 게 아니라. 건강정진을 위해 국가와 개인이 어떤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은지를 따져보면 낫지 않을까.
최근 광우병 우려를 인한 촛불 시위를 보면서 집단의 오류가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 확인케 된다. 독일 국민을 선동하여 육백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역사가 어떻게 가능하였을지 짐작도 된다.
광우병 소동을 보면 한국 사회가 지금 집단최면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 싶다. 감정에 치우치기보다 냉철한 사고와 판단에 의한 행동이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