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희
봄꽃들이 만개하여 자꾸만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내는 주말이다. 집안에만 있자니 뭔가 허전하고 공연히 마음이 설레는 이유는 순전히 꽃들의 유혹 때문이다.
이런 날은 강변으로 나가 강바람을 쏘이고 강가에 심겨진 보리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으리라. 온 몸을 불태우며 절정을 노래하는 벚꽃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바람이 일렁일 때 쏟아져 내리는 꽃비를 맞으면 마음속 응어리진 앙금들이 저절로 녹아내릴 것이다.
활짝 핀 벚꽃은 가는데 마다 장관을 이루고 있다. 햇살이 드는 곳의 목련은 이미 지는데 응달에 심긴 목련은 이제 막 피울 채비를 한다. 개나리는 파란 잎을 제법 키웠다. 아직도 추위를 느끼는 복사꽃은 몽우리 속에 숨어 더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나 보다. 며칠사이에 잎을 뾰족이 밀고 나와 사방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리라.
계간지 문장 4호에 실린 '작품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이라는 테마기사가 생각난다. 하긍찬의 소설 수난이대의 배경이 되었으리라 짐작하는 금호강 물띠미 인근을 취재한 작가는 낮은 콘크리트 다리위에서 ‘시간이 정지된 듯, 외팔의 아버지가 외다리의 아들을 들쳐 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모습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고 표현하지 않았던가. 문득 그곳을 가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의 강 언덕에서 눈앞에 펼쳐진 봄을 와락 끌어안고 싶었다. 봄은 마치 꿈길 같으리라.
강으로 나오니 불어오는 봄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따사로운 햇살아래 아낙은 바구니와 호미를 들고 강 언덕에서 나물을 캔다. 외로운 백로는 졸리는 눈으로 강바닥을 바라보고 무심히 흐르는 강물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백로를 물끄러미 응시한다.
다리 너머로 종묘를 파는 곳으로 유명한 마을이 보인다. 갑자기 묘목이라도 몇 그루 사고 싶었다. 마음 속 소망들과 함께 정원에 심고 싹이 돋고 꽃이 피는 모습을 바라보면 좋지 않으랴.
잠수교를 지나 강 건너 마을로 갔다. 마음도 강물처럼 출렁인다. 강을 따라 흐르고 싶은 욕심 때문인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잠재된 욕망의 표출인가. 봄의 유혹이 범인이다.
전부터 알고 있는 한 농원을 찾았다. 농장일 때문에 이런저런 신세를 지고 있는 김사장을 만났다. 지난해 가을에 만난 후 몇 번의 전화통화는 있었으나 직접 대면할 기회는 없었다. 오랜 만에 만나 반가움을 나누었다.
농장 경영은 잘되어 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제는 정상괘도에 올랐다고 한다. 인근의 대학 교수로부터 묘목 전문가까지 단골 고객이 많이 생겼단다.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을 지키며 넉넉히 나누는 게 비결이라며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거짓 없이 성실하게 고객을 맞고 정성을 다하면 고객은 다시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체험을 이야기 한다. 말에서 진실함이 배어난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마음에 어찌 거짓이나 과장이 있으랴.
정원수로 좋을 과실나무 몇 그루를 사고 싶다고 하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앙증맞은 묘목 대 여섯 포기를 뽑아 왔다. 홍매화, 수서해당화. 서부해당화, 복숭아과에 속하는 남경도라며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인다.
값을 치르려하자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며 손사레를 친다. 그냥 가져가서 나무가 예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눙원이 잘되기를 기원해달란다. 폐를 끼칠 수 없노라고 강변했다. 서너 차례 실랑이가 오간 후 양보키로 하였다. 다른 일로 넉넉히 값을 치르겠노라고 다짐하며 묘목을 차에 실었다.
바람이나 쏘이자고 모시고 나간 부모님과 추어탕 한 그릇으로 점심을 나누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아 부모님과 함께 맞을 이런 봄날이 몇 번이나 더 있으려는가!
아직도 싹을 틔울 생각도 하지 않는 대추 농장을 돌아보고 길 건너 구멍가게에 들러 주인 아주머니께 인사를 건넸다. 지난 가을에 뵌 후 봄에 보게 되니 꼭 반년만이다. 아주머니 또한 반갑게 맞아준다. 가게에서 음료수와 물, 과자를 샀다. 강 건너 대조리의 옥방농원에 다시 들러 사간 물건을 전해드리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봄기운을 쏘이려 나갔다가 마음 가득 정을 담아왔다.
정원으로 나가 삽을 들고 흙을 떠내 묘목을 심는다. 물을 흠뻑 주니 어린 나무가 방긋 웃는다. 나무와 함께 내일을 향한 꿈과 소망도 자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마침 식목일이다.
2008년 4월 5일 하양과 금호를 다녀와 쓴 글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