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육사를 찾아 떠난 시간 여행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8. 7. 31. 23:28
 

육사를 찾아 떠난 시간 여행

이택희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야의 시인 육사를 찾아 떠났다. 문우들과 함께 하는 여행. 글을 통하여 서로의 마음을 잘 아는지라 편안하다. 근자에 들어 기온이 가장 높이 올라간다는 날이지만 문학에의 열정은 무더위쯤이야 너끈히 식히고도 남음이 있다.

육사문학관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선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이야기에 배를 잡는다.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특별히 감출게 무엇이겠는가. 사랑 이야기며 고부간 갈등 등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부담 없이 나눌 수 있는 건 회원 상호간 글을 통하여 공감대가 형성된 때문이다. 부부는 소유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위하여 필요한 만큼 빌려 쓰는 존재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비가 내린 탓인지 하늘이 맑고 푸르다.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에 마음도 한가롭게 떠간다. 산과 들엔 초록이 짙다길옆에 빼곡히 심긴 싸리나무에 핀 빨간 꽃이 앙증맞다. 육사기념관으로 가는 길 양 옆 텃밭의 참깨는 하얀 꽃을 듬성듬성 피웠고 제법 넓은 도라지 밭에는 보랏빛 물감을 들어부은 듯하다. 큰 키를 자랑하는 옥수수 대는 수염을 길게 늘어트리고 한 여름 뜨거운 태양을 견디고 있다. 노지에 널린 수박덩이는 신문에 싸여 몸집을 불린다. 오랜만에 보는 담배 밭에는 잎들이 누렇게 익어 주인의 손길만 기다리나 보다

'몽실 언니'를 쓰신 권정생님의 생가가 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탑지기로 일하셨다는 교회가 보인다, 평화롭고 소담스런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마음에 남은 욕심의 찌꺼기를 끊임없이 퍼내셨으리라. 버리고 또 버렸기에 풀 한 포기와도 친구가 되었고 성가신 모기조차 명대로 살게 버려두라 하지 않으셨을까. 쌀 한 톨의 욕심도 가지지 않으신 선생님. 두 달을 만난 뒤 헤어진 여인을 사랑하여 평생을 혼자 사셨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아리하다.  

이육사문학관 앞에서 바라보는 들녘은 광활하다. 멀리 보이는 산 위로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이 여유롭다. 속도를 줄여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시인이 있는 하늘 끝과 맞닿아 있는 것일까. 일대기를 그린 영상물을 감상하였다. 민족의 내일을 생각하며 몸으로 항거한 젊음 시인과의 만남이 가슴 시리게 한다. 작은 체구에 어디서 그런 강인함이 나왔을까. 거대한 힘에 맞서 끊임없이 저항한 선인의 인품에 머리가 숙어진다.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노래를 부르게 하리라'고 노래한 시인의 갈망이 지금의 나와 우리를 있게 한 것이리라. 벌거벗은 모습으로 역사의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본다. 퀭한 눈의 낯선 사내가 있다.

시인이 사십 년의 생애를 사시는 동안 유년을 안동에서 보내었으며 대구와 서울, 일본과 중국 등 떠도는 삶을 사셨다 한다. 때로는 배움을 위하여, 때로는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며 이곳 저곳 떠다니셨으리라. 대의를 위하여 기꺼이 떠돌이의 삶을 선택한 시인이지만 힘들고 고독할 때마다 고향이 그리며 시상을 떠올리지 않으셨을까.       

따님 이옥비여사는 세 살 때 부친을 여의어 아이보리 색을 좋아하셨다는 것 외에는 기억이 없다고 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로부터 훌륭한 아버지를 두어서 좋겠다는 말을 들었으나 정작 자신은 나무꾼이라도 좋으니 곁에 계셨으면 했단다. 많은 사람이 부친의 시를 기억해주고, 문학관까지 생겨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질 않으니 지금은 아버지가 더 크게 여겨진다며 수줍어하신다. 따님을 통하여 육사의 모습을 본다.    

흉상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마친 후 문학관을 떠나려는 순간 광야에서 부르리라는 제목의 시집이 눈에 들어온다. 얼른 구입하여 3층으로 뛰어올라 서명을 부탁 드렸다. ()자 비()자 적으시며 아버님께서 백일에 지어주신 이름이라 했다. 육사의 자식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오롯이 느껴져 온다

퇴계 이황 선생(1501~1570)의 종가에 이르렀다. 원래의 건물은 화재로 없어지고 1929년 옛 종택의 규모를 참고하여 13대손 하정 충호가 현재의 집 모양으로 다시 지었다 한다. 34칸 규모의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 어린 시절 한옥에 살았던 기억 때문이리라툇마루에 퇴계의 15대 손 이동은 옹이 백세의 연세에도 하얀 바지저고리를 입으시고 앉아계신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한줄기 흐르는 땀을 식힌다. 단체로 기념촬영을 한 후 추월한수정(秋月寒水庭)으로 들었다. 퇴계의 차 종손 이근필 할아버지(본인께서 77세라 소개하셨음)께 현판에 쓰인 글을 풀이해 달라고 부탁 드렸다. '퇴계선생의 마음이 가을 하늘의 밝은 달이며 차가운 물과 같다'는 의미로 쓰인 글이라 푸셨다.

현송 선생을 뵈러 이수다원을 찾았다. 새벽 세시에 받은 물로 우려낸 녹차와 다식을 맛보니 있는 곳이 선계인지 사바세계인지 몽롱하다. 선생으로부터 차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차는 인연이라는 것과 목 넘김이 좋고, 혀끝에서 단 침이 올라오고, 박하처럼 화한 맛 나는 차가 좋은 차라는 내용만 기억하여도 제법 유식해진 듯하다. 지인은 강의내용이 차 공부하는 곳에서 여러 달 배워야 할 분량이었다 한다. 7대 다사 중 한 분이라 소개하는 선생과의 만남이 지속 되어 지리라 믿으며 다원을 나섰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끝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되돌아 왔다.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는 선생의 노랫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육사문학관 정문 앞에서 바라다 보이는 정경

 육사 문확관 정문 앞

 육사의 따님 이옥비여사

 내 고장 칠월은

흉상 앞에서 따님 이옥비여사와 함께(왼쪽 다섯번째가 옥비여사)

 퇴계종택(뒤에 흰옷을 입고 계신 이가 종손이자 15대손 이동은 옹, 올해 백 세)

 추월한수정 들어가는 입구

 추월한수정을 풀이하시는 차종손 이근필선생(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하시었다)

이근필 어른께서 설명하시는 모습 

 다도를 강의 하시는 현송 선생

 현송께서 차를 우려내는 모습

 현송이 직접 만드신 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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