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은 키가 아주 컸다. 사흘 동안 같은 곳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렇게 클 수가 있을까.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 그에 비하면 나는 정말 새 발의 피였다.
그는 수도원 전체를 지키는 파수꾼 같았다. 누가 오는지 누가 가는지 다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그의 큰 키는 조물주의 무한한 능력을 나타내 보이는 듯하였다. 키만 멀거니 커 싱거워 보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큰 키에도 야무지고 단단한 친구가 있다. 녀석은 야무지고 단단한 친구였다.
사시사철 변함없는 모습으로 웅장하게 서 있는 친구. 누가 말을 걸어오면 어김없이 대답해 줄듯한 모습이다. 다소 무뚝뚝해 보이기는 하나 다정다감한 면이 있어 보인다. 어딘가 모르게 정겨움이 느껴진다.
옆에 있는 다른 나무에 속삭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젯밤 잘 잤니? 밤새 내가 너희를 지켜주었지. 부엉이가 다녀갔는데 그것도 모르고 잘도 자더군.”
변함없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너는 힘들 때 무엇을 생각하니?”
“뭐, 특별히 힘든 것 없어.”
“때로 나는 기다림이 참 힘든 것 같아. 너는 어떻게 견디니?”
“기다림이란 어려운 것이지. 나 역시 기다림이 힘들 때도 있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한여름 작열하는 뙤약볕 아래서나 이렇게 서서 기다려야 하니 말이야. 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기다림에 익숙해져. 아무렇지도 않게 기다릴 힘이 생긴단다.”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럴듯했다. 오십 년 이상 아니 백 년 가까이 그 자리에 서 있는 친구의 말이니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성숙한 눈으로 세상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남과 경쟁하듯 살 것이 아니라 남을 도우며 이웃을 위해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될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섭리를 평온한 눈으로 바라보게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고 여유 있는 눈으로 세상을 관조하게 될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녀석에게 말을 걸어볼 작정이다.
2012년 6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