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카슨은 몸은 하나인데 머리 뒤쪽이 붙은 샴쌍둥이를 분리하는 수술로 유명한 신경외과 의사이다. 어머니의 격려와 도움으로 어린 시절 문제아에서 세계적인 뇌수술 전문의가 되고 트럼프 행정부에서 장관(United States Secretary of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으로 일하기도 했다.
벤은 흑인으로 가난한 가정의 싱글맘 손에서 자랐다. 공부는 꼴찌에 가까웠고 성적표엔 F가 수두룩했다.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까지도 놀려댔지만 자신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나는 바보야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어”라고 말하곤 했다. 벤의 엄마는 “너는 절대로 바보가 아니다. 너는 무슨 일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가 있어”라고 독려한다.
청소하러 다니는 집주인의 서재에 꽂힌 책들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벤의 어머니는 아들 벤과 커티스에게 도서관에 가서 일주일에 두 권씩 책을 빌려 읽고 독후감을 쓰라고 말한다. 마지못한 벤과 형은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고 TV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책을 읽었다. 벤의 성적은 한 계단씩 올라갔고 스펠링 비(Spelling bee)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과학시간에는 책에서 읽은 내용을 발표하여 선생님과 친구들을 놀라게 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중고등학교를 마친 후 장학금을 받고 예일대학교에 입학하여 심리학을 공부한다. 이후 미시간 대 의대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고 존스 홉킨스에서 수련의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벤은 세계적인 신경외과(neurogurgery) 의사가 된다.
벤 카슨이 쓴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Gifted Hands: The Ben Carson Story’를 보았다.
영화 속에서 벤은 “나는 안돼”,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똑똑하지 않아”라고 말하지만 엄마는 벤에게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실패자가 될 수 없는 운명이야. 너의 욱하는 성질도 다스릴 수 있어.”, “너는 얼마든지 성적도 올릴 수 있어. 네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단다.”, “너는 바보가 아니야. 똑똑한 아이야. 명심해. 엄마 말 잘 들어. 너는 그냥 너의 그 똑똑함을 사용하지 않고 있을 뿐이야.”라고 말해준다.
엄마는 지속적으로 아들 벤에게 '너는 운명적으로 실패할 수 없도록 태어난 아이'라고 각인시킨다. 샴쌍둥이 수술을 앞두고 골똘히 생각하며 고심하고 있는 아들에게도 엄마는 “넌 분명 방법을 찾아낼 수 있어. 너는 이 수술을 반드시 해낼 거야. 그렇고말고. 너의 머릿속에 모든 세상이 있어. 보이는 것 그 너머를 봐”라고 말한다. '모든 세상은 아들의 머릿속에 있고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상상력을 이용해 그 이상을 볼 수 있음'을 말해준다.*
새해 들어 '나만 아는 풀꽃 향기’를 읽고 있다. 나태주 시인과 딸 나민애* 교수가 함께 썼다. 아래의 글은 딸이 아빠를 생각하면서 쓴 '예쁨 받은 기억이 예쁘지 않은 나를 돕는다*'이다.
[우리 아버지는 예쁜 것을 좋아한다. ‘무척’ 좋아하는 게 아니라 ‘너무’ 좋아한다. 예쁜 것들은 대개 연약하거나 비싸다. 그저 순간에만 머물거나 쉽게 달아나기도 한다. 쉽게 말해서 ‘예쁨’이란 가난한 시골 선생님이 가질 만한 취향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예쁜 것만 보면 눈이 하트가 되고, 좀 큼지막한 입이 더 크게 웃는 입이 되곤 했다. “오오, 민애야, 이것 좀 봐라.” 감탄은 금세 찬미로 이어졌다. 내가 보기엔 별것 아닌데도 아버지는 이게 왜 예쁜지 확신을 갖고 설명했다. “세상에나, 멋지지 않나!” 정작 아버지의 감탄사와 설명이 더 거창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더 했다. 곁방에는 비가 새고, 안방에는 연탄가스가 새는데도 아버지는 귀하고 예쁜 것들을 안고 집에 오곤 했다. 아버지의 품에는 실크로 만든 인형, 에나멜 구두, 벨벳으로 된 원피스, 작은 도자기 등등이 들려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예쁜 것들 중에서 가장 예쁜 것은 따로 있었다. 너무 예뻐서 그대로 시간이 멈추길 바랐던 것. 그래서 아버지가 제일 많이, 즐겁게 사진을 찍어 남겼던 것. 남 보기에도 분명 예쁠 것이고 아버지 보기엔 더 예뻐서 아버지를 뿌듯하게 만들었던 것. 아버지의 세상에서 영원히, 가장 예쁠 것, 놀랍게도 그건 바로 나였다.
사실 나는 그다지 예쁘지는 않은데,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너는 엄청나게 예쁘다고 진지하고 단호하게 강조하셨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며, 민애는 예쁘다. 오늘 날씨는 맑고, 바람이 불며, 민예는 예쁘다. 이런 식이었다. 나를 위해 꾸며 낸 말이 아니었다. ‘우리 민애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아버지는 모세가 십계명을 믿듯 믿었다. 내 이야기를 할 때 우리 엄마 아빠는 손발이 척척 맞았고 좀 푼수 같았다. 어린 나는 잠결에 엄마 아빠가 소손소곤 이야기 나누는 걸 듣곤 했다. “우리 애기 오늘도 예뻤지?”
“그럼 말해 뭣해. 오늘은 어제보다 더 예쁘지. 앞집 사는 할머니가 이쁘다고 몇 번이나 그랬어.” “그래? 그 할머니 똑똑한 사람이네. 우리 민애가 이쁜 것도 알고.” 이런 식이었다.
내가 잠에서 깨어 있을 때는 한술 더 떴다. 엄마 아빠는 진지하게 우리 민애 귀밑머리가 특히 이쁘고, 이마는 눈이 부시고, 눈썹을 팔자 눈썹이지만 그래도 너무 이쁘지 않으냐고 토론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귀밑머리가 있는 줄 알게 되었고, 내 이마를 좋아하게 되었으며, 아버지 닮은 팔자 눈썹이 제일 멋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라고 믿어 버렸다.
물론 초등학교에 가자마자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 버렸고 아버지에게 가서 따졌다. 왜 거짓말했느냐고. 세모눈을 하고 노려보니까 아버지는 내게 화를 내셨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지금 생각하면 웃긴 촌극 같지만 진짜로 아버지는 진지했다.
“아버지 내가 바야바야, 짐승이야? 왜 이렇게 팔에 털이 많아. 왜 이렇게 낳았어.”
그러면 아버지는 팔짱을 끼고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곤 했다.
“이 바보야. 털이 많아야 진짜 미인인 거야. 털이 이렇게 숨풍숨풍 많고 머리숱이 이렇게 많아야지. 너는 아무것도 몰라서 참 큰일이다.”
“아버지, 왜 우리 집 여자들은 다리가 이렇게 굵어. 고모들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 왜 다리에 알을 하나씩 달렸어. 이제 뭐야, 치마를 못 입겠어.”
교복을 입다가 짜증을 내면 아버지는 답답하다는 듯이 반박하곤 했다.
“여보, 이리 좀 와 봐. 나는 민애 다리가 얇아서 걱정인데 지금 얘가 한심한 소리 하고 앉았네. 야, 민애야. 다리가 굵어야 달리기를 잘하고 건강하지. 건강해야 예쁜 거야. 이렇게 굵은 다리가 세상에서 제일 이쁜 거야. 남들은 갖고 싶어도 못 가져. 아버지 다리랑 똑같으니 예쁘기만 하네.”
도통 말이 통하지 않았다. 엄마도 예쁘다, 예쁘다 하며 나를 키웠는데 아버지는 논리 정연하게 네가 어떻게 얼마나 예쁜지 설명해 주곤 했다. 집에 우리 식구만 있을 때에는 ‘쳇, 또 시작이네’와 ‘정말 나는 이쁜가?’ 사이에서 기분이 좋기도 했다. 그런데 남들 앞에서 ‘우리 민애가 좀 이쁜가요. 아주 걱정이네, 걱정이야’ 이러면 얼굴이 확 붉어졌다. 나는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인간이었는데 아버지는 영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는 시인이라는데 미적 기준이 영 엉망인가 걱정도 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딸 바보 지수가 좀 지나쳤다. ‘세상에 딸 바보가 몇 있는데, 피천득 선생님이 그렇게 딸 바보였다. 멋진 사람들은 딸 바보가 많다. 나는 그보다 못한다’ 이런 걸 나한테 설명해 주곤 했다. 나는 피천득 선생님을 위대한 ‘인연설’의 작가가 아니라 팔불출 딸 바보로 먼저 알았다.
아무튼 아버지는 예쁨의 기준이 나였다. 이건 민애만큼 이쁘고, 이건 민애처럼 이쁘고, 이건 민애보다는 못하지만 이쁘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지나가다 진열대에 있는 인형이 나를 닮은 것 같으면, 내가 보기에는 하나도 안 닮았지만 볼이라든가 이마라든가 머리카락이라든가 한 군데라도 닮은 것 같으면, 그 인형을 사 오셨다. 엄마는 엉뚱한데 돈을 썼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어, 그러고 보니 민애를 닮긴 했네.’ 이런 식으로 넘어가 주었다.
아버지는 엄마 빼고 나만 데리고는 신작 영화를 보여 주거나 자장면을 사 주기도 했다. 엄마는 서운해하기는커녕 ‘맨날 둘이 데이트하고 니 아빠는 너밖에 모른다’고 흐뭇해했다. 엄마는 아빠를 민애 머슴이라고 부르면서 행복해했고, 아빠는 엄마를 민애 시녀라고 부르면서 껄껄댔다. 나는 그 사이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했다.
언젠가 한 번은 박스에 있는 금발의 백인 모델이 나를 닮았다는 이유로 내 메리야스를 사 오셨다. 그때 나는 중학생이어서 사춘기였는데 아버지가 딸 메리야스를 사 온다는 게 마뜩잖았다. 게다가 그 메리야스는 사이즈도 작고 천보다 레이스가 더 많아서 도대체 입을 수도 없었다. 부글부글 속이 끓는데 아버지는 이 여자가 민애를 닮지 않았느냐고 너무 크게 말해서 몹시 화가 났다. 한두 번 삶으면 찢어질 만큼 얇은 메리야스를 나는 14살에 받았다. 그걸 마흔넷이 된 지금도 옷장 깊숙이 가지고 있다는 걸 아버지는 모를 거다. 그 사이에 한 이사 횟수만 해도 열네 번 이상은 됐을 거다. 어려서 화는 냈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세상의 모든 예쁨이 딸이라는 블랙홀로 귀결된다는 걸 잘 알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속으로는 매우 매우 뿌듯했다.
‘힘들어서 죽고 싶어’ 이런 생각이 나를 점령할 때 아버지가 떠올랐다. 내가 죽으면 아버지의 세상이 대체 불가능한 절대적 예쁨이 사라지는데, 그럼 아버지의 가슴에는 구멍이 뻥 뚫릴 텐데. 나는 나 혼자의 삶이 아니라 생명의 도미노였다. 내가 죽으면 아버지가 죽고, 내가 불행하면 아버지가 불행하고, 내가 나를 예뻐하지 않으면 아버지의 예쁨마저 부정당하는 거였다. 그래서 가능하면 길게, 아버지의 말을 믿어보자고 툭툭 털고 일어나기도 했다.
사회에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허름한 옷에 가난한 표정으로 백화점에 들어가 무시당하는 것처럼 세상에게 무시당할 때에도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항상 미더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보다 오래 살았으니까. 똑똑한 사람이니까 아버지의 식견을 믿어 볼까. 아니, 나는 아버지의 예쁘다는 말을 간절하게 믿고 싶었다. 우리 아버지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예쁘다고 했으니까 적어도 나는 함부로 무시당해 마땅한 인간은 아니었다. 천 원짜리 김밥을 먹으면서 생활비를 아끼고, 알바비를 떼여서 울 때에도 아버지와 엄마의 만담 같은 이야기를 생각했다. 민애는 예쁘지? 그럼, 너무너무 예쁘지.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파도처럼 슬픔이 밀려들다가도 예전에 들었던 그 말이 들리면 슬픔의 파도가 귀를 쫑긋하곤 했다.
거미줄 같은 지하철 역사 안에서 내가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느껴질 때, 거기 벤치에 앉아 울 때에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서울이 나를 괄시할 때에도 나는 아버지의 진지한 얼굴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을 수 있었다. 아버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가 여기 앉아 있네. 여기서 조금만 울다가 집에 갈게요.
사실 나는 예쁘지 않다. 아버지가 들으면 경칠 소리지만 뭐,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예쁜가 안 예쁜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귀찮을 정도로 아주 많이 예쁨 받았다는 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게 중요하다. 아버지는 어린 내가 빛도 아닌데 마치 눈이 부신 것처럼 나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나는 쉽게 꺼질 수 없는 존재다. 나는 아버지가 살아 있는 한 빛이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나는 어떤 한 사람에게는 무려 빛이었으니까.]
* 네이버 블로그 ‘엄부자모의 책, 여행, 자녀교육-타고난 재능: 벤카슨 스토리(Gifted Hands)’와 ‘국민대 노윤아 교수가 쓴 Movie English-타고난 재능: 벤 카슨 스토리(Gifted Hands: The Ben Carson Story,2009’를 참고하였다.
* 나민애 교수는 2024년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로 일하며 동아일보의 ‘시가 깃든 삶’을 연재하고 있다. 2007년 문학사상 신인평론상을 통하여 등단했으며 저서로는 ‘제망 아가의 사도들’, ‘내게로 온 시를 너에게 보낸다’, ‘책 읽고 글쓰기’, ‘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된다’ 등이 있다.
* 나만 아는 풀꽃 향기/나태주 나민애 著/ (주)넥서스 刊/ p13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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