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과외를 하며 느낀점>
나에겐 한국과 이곳의 교육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한국에서 갓 유학온 초등학생들을 돌보며 학습지도까지 겸해주는 생활을 통해 양국의 교육시스템의 차이점을 느낀대로 정리해본 글이다.
한국교육의 특징은 엘리트선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방법으론 시험을 통해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고 선택되어진 소수의 엘리트를 위해 다수가 희생되는 상황이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명확해진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그에 비해 공교육의 개념에 더욱 충실해보인다. 엘리트 선발과정에 역점을 두기보단 공동체 사회의 개인으로서의 소중한 자질을 키워주고 그 사회를 지탱할 팀웍을 익히도록 제공해주는데 기반을 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진학을 위한 디딤돌적인 면에서 바라보면가소롭기 그지 없다.
한국아이들이 제일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부분은 아마도 프로젝트일것이다. 수업을 통해 조를 만들고 과제를 나누어 활발한 토론과 역할분담, 조정을 이루고 결과를 취합해내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아이들은 벅차한다. 언어적 문제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설득하는 과정은 가까스로 해낸다해도 모든 조원의 의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취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합리적 서구문화란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반영해주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우리의 문화는 쌍방성보다는 일방성에 길들여있지는 않은건지 의심을 든다. 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리더가 부상하고 그 리더의 조절에 잘따라오는 이곳 아이들의 성숙함을 따라잡기란 여간 어려운것이 아니다.
따라서 내가 한국의 조기유학생들에게 주안점을 두는 것은 이 곳의 문화에 빨리 적응하도록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차이점을 잘 받아들여주고 인정하는 이곳에서지만 모든 관계의 기본은 공통점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적 시각을 주입시킬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적당하게 타협해야하는 것은 상식이다.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지름길은 우리가 한발 다가서 그들의 문화에 접근해야한다.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학습분위기 적응에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적응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부분도 이 점이다. 여행과 캠핑등을 통한 자연으로의 노출과 계절에 맞는 액티비티등을 주도하는 이유도 문화적 적응을 위한 방법이다. 심지어는 연극활동을 통해 지도해주는 방법까지도 썼다. 이 부분에선 내가 다른 분들과 구획을 그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과 동시에 학습적 차이를 극복하도록 해줘야만 한다. 대개 언어장벽을 극복하지 못했기에 유학초기엔 밑바닥점수거나 배려점수를 얻는데 만족하지만 한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성적은 바닥을 치고 상승하여 학생들의 능력에 상관없이 학년 진급할때에는 90점대에 진입한다. 누구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주변에서 도와주기만한다면.
초등학교 5학년 사회교과과정중에 정당과 정치활동에 대해 이해시키기 위해 학급을 3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끼리 정당을 구성해 전교생과 선생님을 대상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투표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첫째 그룹은 ‘숙제없는 당’을 만들었고 두번째는 ‘환경보호당’ 나머지는 ‘특별활동당’을 구성해서 선거전에 돌입했다. 역할을 분담해 포스터를 만들고 연설문을 작성하고 연설을 하거나 학생들을 상대로 지지를 얻기 위해 애썼다. 결과는 박빙의 차로 환경보호당이 승리를 거두고 말았다.
나는 이보다 더좋은 교육적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이들에게 이번 활동을 스스로 분석하도록 유도했다. 내년에 5학년이 되는 아이들의 창의력에 자극을 주어 좋은 전략을 대비하도록 하고팠다. “너가 선생님이라면 숙제없는 당에 투표를 하겠니?” 꼴찌를 해서 분을 삭이지 못하는 경쟁심이 강한 아이에게 슬쩍 질문을 했다. 아니란다…. “환경보호를 가르치는 선생님 입장에선 어떤 당을 택할 수 밖에 없었겠니? “ -자연보호당이란다. “결국 이번 선거는 선생님의 투표권이 성패를 갈랐다는걸 느낄 수 있다. 그럼 내년에는 올해를 교훈삼아 어느 당을 만들면 선생님과 학생들의 골고른 지지를 얻을 수 있겠니?”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아이들의 답이 나오지 않았다. 충분히 한계단씩 오르도록 다리를 놔주었는데도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 선생님의 투표권이 당선을 가를 수 있는 현상황에서 기독교학교인 우리학교에 선교와 봉사를 지원하는 당을 만든다면 당선 가능성이 어떻겠니?”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게 성원을 보내주었다. 이 와중에 꼴지를 한 조에 속한 아이는 자기에게 전략의 부재를 탓하는 것으로 넘겨짚는 센스를 발휘에 눈물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이것이 경쟁사회에 익숙한 한국학생들의 자화상인가.
“이번에만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가 배우고 느낀 점을 기억하고 원인을 찾아낸다면 내년에는 분명 더좋은 결과가 나타날거다. 이일로 속상해서 감정조절을 못한다면 네 안에 스스로 갇혀 발전을 가로막는 스스로를 해치는 행위”라고 조언을 해줘도 쉽게 수긍하지 못한다. 다른 아이들에게 자기를 모욕하려는 이유라고 도발적으로 변한다. 한국의 현실이 이렇단 말인가? 이런 문화적 차이와 학습적 차이를 장벽으로 가진 아이들은 이곳에서의 성공이 불투명할지도 모른다.
오늘의 실패가 그 아이에게 허방다리처럼 헛딛지 않고 계단처럼 밟고 오를 수 있기를 간구해보며 엄마와 상담을 했지만 엄마도 나의 뜻을 이해하진 못한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던가. 아이들의 제한적인 지식과 능력속에서 그들의 가능성 계발해내는 일은 지극히 전문적이고 계획적인 간섭과 보조없이는 쉽지 않다. 공식을 통해 답을 구해내는 천편일률적인 교육에 익숙한 우리 세대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지도한 아이들은 빠른 시간에 변화하고 성숙해졌다. 암기를 지양하고 이해위주의 교육, 항상 소신을 지우고 의심을 통해 본질을 이해해야만 실체에 접근하도록 자극해주기를 마다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는 통학차 안에서 시시콜콜한 대화로 시작해 오늘 해주기를 당부하는 말까지 다 쏟아놓는다.
유학초기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수업중에 이곳에서 공부하는 장단점을 영어로 표현하도록 했다. 4학년짜리애가 하루종일 전혀 못알아듣는 수업에 참여해 시간을 어찌 보내야하나 걱정한단다. 어리고 야물지 못한것들이 그러고 교실에 앉아 하루종일 시간을 죽이고 있단 상상을 해보니 측은함이 솟구쳤다. 그후론 내가 그애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진거같다. 생업의 대상이란 관점에서 시작된 관계였지만 내가 오래전에 이곳에 와서 겪었던 씁쓸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동질감이 느껴지고 그 순간 서로 맘이 열려짐을 느꼈다. 아이들은 앞을 보고 달려가는 존재이다. 오늘 이룬 성취감은 참고자료일뿐이다. 오늘의 성공 또는 실패를 통해 경험하고 훈련하며 깨닫게 해야한다. 모든 힘은 반작용을 통해 밀어내야 추진력이 생기는거처럼 아이들도 날아오르기 위해선 뒷발을 밀어줘야한다는 지혜를 배우길 바랄뿐이다.
(이 글은 어떤 분이 daum에 올린 컬럼을 복사한 것입니다. 글쓴이의 메일 주소를 잊어버려 올리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Practice·청소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중, 집중 또 집중 (0) | 2007.07.02 |
---|---|
성공하는 3%의 사람이 지키는 지침 10가지(따온 글) (0) | 2007.05.21 |
과학영재학교 최연소 합격 비결 (0) | 2007.05.21 |
선생님의 농담까지 놓치지 마라 (0) | 2007.03.19 |
몸으로 영어를... (0) | 2007.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