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대구에서 자주 오르는 산은 달서구의 삼필봉이다. 도원지 쪽에서부터 산을 오르면 삼필봉까지 약 2.5키로 정도의 거리. 매일 아침 삼필봉 인근 앞이 탁 트인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며 새 날을 맞게 해주신 절대자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부모님이 계신 본가 보성맨션을 출발하여 삼필봉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남짓. 늘 갔던 길을 되돌아 오니 좀 단조롭다는 느낌이 든다. 오래 전부터 산을 한 바퀴 돌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머리를 정리하러 미장원을 들었을 때 미용사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삼필봉으로 해서 산을 한 바퀴 돌아올 방법이 없느냐고. 입이 걸걸한 아주머니는 몇 년 전 자신도 산에 미쳐서 늘 산만 다녔노라며 삼필봉을 지나 계속 걸으면 삼거리가 나온다고 한다. 용련사로 내려가는 길과 앞산으로 계속 가는 곳, 그리고 도원지로 가는 길이 있는 삼거리.
오늘 아침은 산을 한 바퀴 돌 작정을 하고 아침 8시경 집을 나섰다. 초입에서부터 삼필봉까지는 그다지 힘들지 않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삼필봉을 지나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니 무척 힘이 든다. 이상하게도 가지 않은 길은 조금만 걸어도 아주 멀리 걸었다는 느낌이 든다. 막상 갔던 길을 돌아와 보면 크게 멀리 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산을 오른 후 한 시간 삼 십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쉬고 싶다. 새로운 길을 간다는 심리적 부담이 컸던 것이다. 산 중턱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애써 잊으려 했지만 산 초입에서 본 시신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둘러서서 무엇인가 구경을 하고 있길래 가만히 다가가 보니 소방대원들과 경찰들이 도원저수지에서 숨이 �은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시신을 건져 올리고 있다. 러닝셔츠차림으로 신은 벗은 채 검은 양말에 연 초록 등산 바지를 입었고. 얼굴과 상반신이 물에 잠겨있는 시신을 소방대원 몇 명 이서 힘에 겨운 듯 들어 올리고 있다. 물 밖으로 끌어 올리자 마자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바로 눕히더니 비닐에 싸서 얼굴을 가린다. 다리를 굽히는 것 같아 보여 혹 살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면 몸이 퉁퉁 부어있어야 할 터인데 금방 수영하러 물에 들어간 사람처럼 멀쩡해 보인다. 주위 사람들 말에 의하면 오늘 새벽에 물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멀리서 보니 나이는 60세 전 후로 보인다. 옆에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글쎄” 하고 혀를 찬다. “인공호흡이라도 한번 해보지” 라고 혼자 말로 중얼거리니 시간이 너무지나 소용없는 일 일거라 말해 준다. 하얀 광목으로 몸을 감싸던 중 책임자가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중단 시킨다. 감쌌던 광목을 다시 펼쳐 반듯이 누워있는 모습 몇 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나중에 사건을 종결하기 위한 증거자료로 쓸 모양이다.
주검은 전날 저녁부터 물에 뛰어 들기 전 새벽까지 삶의 무게를 실감하며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로 뛰어 들었으리라. 죽을 용기를 가졌으면 다시 한번 열심히 노력해 보지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이 60에 재기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으리라. 젊을 때 말이지 나이가 들면 재기도 힘들어 지는게 사실이다. 재기를 꿈꾸기 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대로 받아 들이고 포기하는 법을 배웠더라면 차라리 살아가기가 쉬웠을지 모른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으면서 이런 상상을 해 보는 것 자체가 무리다.
어떤 사람은 죽을 까봐 두려워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는데 물에 몸을 던져 한 목숨 쉽게 버리는 것을 보면 용감했다는 생각도 든다. 살아있을 때 세상 고민 다 하지만 목숨을 끊어 버리면 금새 그 모든 걱정과 근심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물에 빠져 5분만 지나면 사람의 목숨은 끊긴다. 어쩌면 5분이 아니라 2-3분이 지나면 의식을 잃을지 모른다. 의식을 잃는 순간 그 영혼은 바로 몸을 떠나리라. 사는 것과 죽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임을 오늘 그 주검을 보고 다시 한번 느낀다. 가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그렇게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났다. 기왕 사는 인생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냥 허허 웃으며 살다보면 좋은 날도 오게 될 것을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다니!
이런 생각을 뒤로 하고 일어나 계속 걸었다. 한참을 걸으니 미장원 아주머니의 말대로 삼거리가 나오고 이정표가 나온다. 앞산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오르락 내리락 몇 번을 더하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멀리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대구 도성이 까마득하다. 제법 깊은 산중에 올라온 느낌이다. 걷고 또 걷다가 또 다른 삼거리를 만났다. 이제는 내려가는 게 낫겠다 싶다. 방향을 바꾸어 하산 길로 들어섰다. 한참을 내려오니 산 입구의 텃밭이 보인다. 며칠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땅에서 단내가 난다.
2007-06-07이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