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온 빌
이택희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나 조용히 침잠하며 생각에 잠기고 싶은 때가 있다. 늘 생활하던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주변에 숲이 적당히 우거져있고, 거리엔 가끔 사람이 오가며, 역사적인 건물이나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좋으리라. 이런 장소라면 피곤한 두뇌도 충분한 쉼을 얻지 않을까.
유니온 빌을 자주 찾게 되는 건 집에서 가까운 탓도 있지만 새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거리의 모습이며 오가는 사람들 길거리에 즐비한 상점들은 늘 대하는 풍경과는 딴판이다.
가지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빨강 노랑 파랑 형형색색의 꽃들이 거리를 아름답게 장식할 때 집에만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온다. 맑게 갠 파란 하늘하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봄이 주는 신선한 기운을 만끽한다. 길가에 즐비한 골동품 가게나 옷가게에 들러 물건을 사기도 하고 산책도 즐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걸음걸이는 느릿느릿하고 눈동자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새로운 것, 아름다운 것을 보는 재미를 즐긴다. 오래되어 귀한 골동품, 귀엽고 예쁜 물건을 보는 재미에 푹 빠진 사람이다. 이곳에서 쇼핑을 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사기에 급급하거나 억지로 값을 깎으려 하지도 않는다. 유유자적 거리를 거닐며 봄을 만끽하고 가게를 돌아보며 사고 싶은 물건 한 두 개 쯤 골라 백에 넣으면 그만이다.
길 양 옆 길거리 식당엔 사람들로 가득하다. 색안경을 끼고 밝은 빛의 원색 옷을 입고 주위의 정경과 분위기를 즐긴다. 테라스에 마련된 야외식당에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검은 색안경을 끼고 주위를 돌아보며 맥주와 와인을 마신다.
사람들이 많은 레스토랑에 자리를 했다. 편안하게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딴 세상에 와있는 듯하다. 살아가면서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음이 감사하다.
특히 이곳은 오픈카가 많이 보인다. 날렵하고 세련된 오픈카를 타고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머리가 희끗하게 세어 나이가 드신 분들이 오픈카를 타고 다니신다. 오픈카는 보통의 차보다 값이 많이 비싼 편이다. 보통의 차가 삼사천만원이라면 오픈카는 칠팔천 만원에서 일억 이상을 주어야 살 수 있다. 나이 드신 분이 오프카를 많이 타는 건 인생의 노년에 가진 것으로 마음껏 즐기겠다는 생활태도에서 나온 것일 게다
헨리 데이비슨을 타고 나온 오토바이족들은 한 쪽에 모여 자기네 들끼리 농담을 주고 받으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나이든 사람들이 가죽잠바와 가죽바지를 입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유니온 빌을 주위에 예쁜 집들이 즐비하다. 1890년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백년 이상 된 마을이다. 아기자기한 풍경에 근사한 집들이 잘 어울린다.
메인 스트리트로 조금만 올라가면 제법 큰 호수가 하나 있고 주변으로 산책로가 나 있다. 유유자적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토론토 주변에 이렇듯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어 좋다.
유니온 빌에도 어느새 가을이 왔다. 메인 거리(main street)는 붉게 물든 단풍으로 가득하다. 스타 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가을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본다.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단풍나무는 윗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아랫부분의 잎만 오롯이 남았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하나 둘 흩날린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니 부질없이 마음이 시려온다. 언제까지고 저렇게 매달려 있으면 좋으련만.
길거리에 놓인 화분에 꽃들은 아직도 싱싱하다. 눈이 오고 얼음이 얼기 전까지는 저렇게 피어 있으리라. 다가오는 계절이 기대 되지만 떠나는 계절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계절이 바뀌면 함께 떠나야만 하는 것이 있다. 화초나 꽃들도 그 중의 하나이다. 나뭇가지에 잎이 지고 거리에 핀 꽃이 모두 사라지면 하얀 눈이 그 자리를 메울 것이다.
눈보라를 헤치고 마차가 달려올 듯 옛 정취가 어린 유니온 빌의 거리. 낭만과 꿈이 있는 유니온 빌의 가을 모습이 여유롭다. 이렇듯 한가하게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 귀하다.
아름다운 정경을 보면서 내 삶에 영향을 준 사람들을 생각하며 얼굴을 떠올려 본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 엇갈린 운명 속에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어쩌면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사는 자체가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유니온 빌은 내일을 향한 꿈을 꾸고 지나간 추억을 생각하며 낭만에 젖게 하는 묘한 곳이다.
<2008년 10월 13일 추수감사절 연휴 마지막날. 날씨가 좋아 산책과 쇼핑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캐나다의 추수감사절은 미국보다 5주 가량 빠르다 >
유니온 빌의 가을
산책 나온 사람들
아이스크림을 사러 줄을 서 있는 모습
재미삼아 몰고 나온 오래된 차
올드 컨트리 인의 레스토랑
단풍나무
거리의 악사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
낙엽이 지고 몇 안남은 이파리들만 가지에 붙은 가을 풍경
유니온 빌의 메인 스트리트
길거리에 즐비한 노천 카페
값도 그다지 않고 음식 맛도 괜찮아 자주 들르는 펍(pub)겸 레스토랑
노천 카페에서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즐기는 사람들
오토바이 족들이 몰고 나온 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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