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tences a day in English

Top Ten Tiger Woods Excuses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9. 8. 18. 21:52

양용은 선수가 미국 프로골프 메이저 대회의 하나인 PGA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사실은 세계 스포츠계에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어제 미국 CBS 방송의 데이비드 레터만 쇼에서는 타이거 우즈가 양용은 선수에게 질 수 밖에 없었던 열가지 이유를 말하기도 하였지요.

메이저대회에서 타이거 우즈 선수에게 뒤지고 있다가 역전하여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시아 선수로 미국 프로골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도 없었지요.

양용은 선수는 세계 랭킹 110위인 자신이 세계 1위 타이거 우즈에게 뒤진다고 해도 손해 볼 게 없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고 하지요?  실제 대회 마지막 날 타이거우즈와 한조가 되어 경기를 하였지만 전혀 주눅들지 않았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비교 될 만한 경기를 보며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룬다는 진리를 다시금 확인하였습니다.

양 선수는 19세 때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았다고 합니다. 티칭 프로가 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겠다고 했던 그였습니다. 배고픔을 면해보겠다고 늦게 시작한 골프였지만 꾸준히, 피땀흘려 노력한 결과 한국과 일본 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혼다클래식에서도 우승했지요. 그리고는 지난 일요일 PGA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였습니다.

골프채를 잡기 전까지 양용은 선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골프채를 처음 잡았을 때는 또 어떠했을까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을까요?  

열아홉의 나이라면 늦은 나이임에 분명합니다. 타이거 우즈는 19세 때 이미 골프의 천재로 각광을 받으며 여러 대회를 석권하고 있었지요. 양선수가 골프를 시작할 당시 세계 최고의 타이거 우즈 선수와 겨눌 기회가 주어지리라는 건 상상치도 못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골프를 하여 밥만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을 하였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실력을 쌓아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한 계단씩 밟고 올라섰던 게지요. 계단을 오를 때마다 더 높은 계단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오르다 보니 타이거우즈를 만났고 타이거 또한 올라야할 하나의 계단으로 알고 자연스럽게 올라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현실에 두발을 내딛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최고를 향해 나아갔다는 사실이지요. 시작이 늦었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고, 산이 높다고 지레 겁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늦었다고 판단되거나 도저히 이룰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이 앞을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낙담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일어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The Late Show Top Ten List; Top Ten Tiger Woods Excuses>

10."No room left in my trophy case"

9."Spent previous night with John Daly"

8."Uhhh...the barometric pressure?"

7."Wasn't feeling very Tiger-y"

6."Would you practice if you had a hot Swedish wife?"ㅋㅋㅋ

5."When I learned winner doesn't get a sharp looking green jacket, I said, 'Screw it'"

4."Maybe it was the heat, but by hole 12 my 9-iron was talking to me"

3."Too much pre-tournament gazpacho"

2."Instead of winning majors, focused on making every recipe in Julia Child's cookbook"ㅎㅎㅎ

1."What do you expect? Y.E. Yang wins everything"

(Source: THE LATE SHOW with David Letterman on CBS. Monday, August 17, 2009)


<Yang feted as a national hero in his Korean homeland>

JEJU, South Korea -- Eyes glued to the TV, Y.E. Yang's family on the island of Jeju stayed up all night to watch the South Korean face off against world No. 1 Tiger Woods at the PGA Championship.

Yang, ranked 110th, made history Sunday by coming from behind to beat Woods and become the first Asian-born man to win a major tournament -- a stunning rise for the self-taught son of a farmer who first picked up a golf club at age 19.

"I am so happy and proud of him. What else can I feel?" elder brother Yang Yong-hyuk said yesterday. "Since he has finally reached the peak, I hope that he will work even harder to become better and defend his position."

Yang, 37, is known as "Son of the Wind" in his native South Korea for his consistency even on windy days. Now he deserves a new name, the Korea Professional Golfers' Association said: "Tiger Killer."

Though relatively unknown on the international circuit, Yang was named rookie of the rear after going pro in 1996 and has twice beaten Woods. But never in such a high-profile tournament.

"Seeing Yang, ranked 110th in the world, win against Tiger Woods, I felt so proud to be a Korean today," Kim Soo-mi, who like many South Koreans woke up at 4 a.m. ET to watch the final round live.

"It's great! And as the first South Korean -- and as the first Asian man to win a major -- I expect this will have a positive influence on men's professional golf in South Korea."

Golf is huge in South Korea, which in recent years has produced a number of top female players. But the top ranks had until now evaded Asia's men.

Even South Korea's president, Lee Myung-bak, watched the tournament live on TV. He later phoned Yang to offer his congratulations.

"I woke up at dawn today to watch the broadcast, and you played in a calm manner," Lee told Yang, according to the president's office. "You enhanced our people's morale by winning the major title for the first time as an Asian."

(Source: The Toronto Sun Tuesday August 18, 2009 page S8 By THE ASSOCIATED PRESS)

 

<물에 찬밥 말아 먹으며 독학골프… 연습장 볼보이 '인생 역전>’

2006년 11월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을 일본 미야자키의 한 횟집에서 만났다. 당시 그는 유럽투어 HSBC챔피언스에서 타이거 우즈(미국)의 7연승을 막고 우승해 한창 상한가를 치고 있을 때였다. 그 후 일본 대회에 출전하고 있던 그는 힘들었던 자신의 지난날을 털어 놓으며 새 각오를 밝혔다.

“제주도에서 어렵게 감귤 농사를 하던 부모님이 저를 낳았는데 몇 분 후에 딸이 또 나왔어요. 제 쌍둥이 동생이었죠. 가난한 살림에 형제도 많았으니…. 늘 배고프고 힘들었죠. 아직 갈 길이 멀어요.”

17일 제91회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동양인 최초로 메이저 대회 챔피언에 오른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고향 제주의 강한 바닷바람에 이리저리 뒹구는 돌멩이처럼 험난한 인생 역정을 거쳤다.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쌍둥이 동생보다 1년 먼저 학교를 갔어도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학비라도 아낄 생각에 보디빌더를 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1990년 고교 졸업 후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골프 연습장에서 찬밥을 물에 말아 먹으며 볼 보이 생활을 시작한 게 골프와의 인연이었다. “웬 골프냐”며 나무라던 아버지의 권유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왼쪽 무릎을 다쳐 병원 신세를 졌다.

해안경비 단기사병(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그는 1991년 제대 후 제주 오라골프장에서 본격적으로 골프에 매달렸다. 비닐하우스 파이프를 휘두르고 하루 12시간씩 공을 치며 독학으로 스윙을 익혔다. 그 결과 1996년 프로 테스트에서 결원이 생겨 추가 합격되는 행운을 누렸다.

하지만 열악한 국내 프로 현실에 부닥쳤다. 1997년 신인왕에 올랐어도 시즌 상금은 590만 원에 불과했다. 1999년 박영주 씨와 결혼한 뒤 프로 투어 생활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웠다. 두 아들과 보증금 250만 원에 월세 15만 원짜리 지하 단칸방 생활을 했다. 그해 상금 9위를 했어도 금액은 1800만 원. 서른이 넘은 2002년 SBS 프로최강전에서 국내대회 첫 승을 올린 그는 2004년 일본 투어에 진출해 4승을 거뒀다. 2006년 HSBC 우승으로 유럽투어 출전권을 따내며 단번에 7억 원 가까운 상금을 벌었다. 경제적인 안정을 찾았지만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2007년 3수 끝에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출전 자격을 얻었다. 지난해 11차례나 예선 탈락하며 상금 157위에 처져 시드를 잃었다. 그래도 포기는 없었다. 다시 퀄리파잉 스쿨을 거쳐 올 시즌 PGA투어 재진입에 성공해 3월 혼다클래식에서 꿈에 그리던 첫 우승을 이뤘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스윙 교정에 나서 템포를 늦추고 쇼트게임을 강화한 덕분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두 달 전 미국 서부 팜스프링스에서 낯선 땅인 중부의 댈러스로 이사했다. 이동 시간을 줄여 체력과 시차 부담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어렵게 지냈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그는 2006년부터 모교인 제주고(옛 제주관광산업고)에 장학금을 지급하며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공부에 미련이 많아 최근 만학의 길을 걷기 위해 고려대에 입학 지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PGA챔피언십 우승이 확정된 뒤 양용은은 함께 고생했던 아내와 포옹을 하며 비로소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이런 순간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꿈을 꾸는 게 아닐까요.”

(동아일보 2009년 8월 18일자 신문에서 발췌,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가 취재)


<[사설]양용은 ‘꿈과 땀’이 일냈다>

 양용은은 전날 밤 잠들기 전에 골프 채널을 한참 시청했다. 2위로 최종라운드에 나갈 그의 모습이 화면에 많이 비쳤다. 제주 ‘촌놈’이 미국에 와서 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텔레비전을 끄고 흥분을 가라앉히며 일찍 잠을 청했다. 두세 번 잠을 깼다. 골프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타이거 우즈와의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잠을 깊이 들 수 없었다.

그는 숙면을 취하지 못한 채 대망의 날을 맞았다. 그러나 첫 번째 홀의 티 앞에 서자 초조함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판사판 해보는 거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그의 미국프로골프(PGA) 순위는 110위였다. 양용은이 랭킹 1위인 우즈에게 진다고 실망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청난 갤러리(관중)가 따라다녔다. 모두 우즈를 보러 나온 팬이었다. 마음을 비우자 공은 신들린 듯이 맞았다. 양 선수가 우즈를 꺾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든 건 14번째 홀에서였다. 그린 주변에서 침착하게 칩샷을 한 공이 홀에 빨려 들어가 이글을 잡았다. 갤러리도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양용은은 19세에 골프 클럽을 처음 잡은 늦깎이다. 제주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양 선수는 고교 졸업 후 골프연습장에서 공을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처음부터 큰 꿈을 꾸지 않았다. 골프 연습장에서 티칭 프로가 되는 것이 소망이었다. 세미프로가 되고 나서 KPGA 프로로 꿈이 커졌다. 그리고 일본으로 아시아로, 최종적으로 전 세계 골퍼들의 꿈인 PGA에 도전했다.

프로에 입문한 1996년 국내 신인왕이 된 뒤에도 찬밥을 물에 말아 먹으며 연습에 매진했다. 흔한 골프유학도 다녀오지 못했다. 주로 유명 골퍼들의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공부하고 연습했다. 누가 골프를 부잣집 아이들의 운동이라고 했는가. 양용은의 PGA 우승은 헝그리 골프의 승리라서 더 감동적이다.

어제 그는 PGA 올해 마지막 4대 메이저 대회인 PGA 챔피언십 정상에 올라 아시아인 최초로 메이저 우승기록을 세웠다. 1998년 박세리가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이후 박세리 키즈들이 성장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는 한국 선수들이 메이저 대회 11승을 포함해 통산 82승을 올렸다. 양용은의 역할 모델은 PGA에서 7승을 거둔 최경주였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각고의 노력과 도전정신으로 쾌거를 이룬 감동 스토리가 청소년들에게 자극제가 돼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양용은 키즈’가 나왔으면 좋겠다. 꿈은 땀과 함께 이루어진다.

(동아일보 2009년 8월 18일자 사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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