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오는 바디메오는 삶을 비관하고 포기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세상을 원망하고 삶을 비관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앞을 보고 싶다는 희망을 버리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루는 예수가 마을을 지나간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지나가는 길목에서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누가 지나갑니까?”
“예수란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네.”
바디메오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가던 걸음을 멈추신 예수님은 물었습니다.
“네가 무엇을 얻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 것이다”
그 순간 소경 바디메오는 보게 되었습니다. 평생에 꿈꾸어 왔던 것을 한순간에 이루었습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제게 이십 불만 도와주세요.” 혹은 “먹을 것 좀 주세요.”라고 간청했을지도 모릅니다. 눈을 뜰 수 있다는 믿음은 그리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도 눈을 뜨게 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앞을 보았으면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요. 또한, 병을 잘 고치는 예수라는 분이 마을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부탁해보자고 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선생님께서 마을을 지나가자 과감히 간청했습니다.
누구나 어품풋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살았으면 하는 희망, 보람 있는 일을 하였으면 하는 희망, 좋은 직업을 가졌으면 하는 희망, 사업을 일으키겠다는 희망 등 말입니다. 문제는 이런 희망들이 대개는 구체적이지 아니하고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인 막연한 희망으로 존재하고 있지요.
이 막연한 희망을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 한 것으로 만들어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꿈을 마음에 품고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되뇌어야 합니다. 품은 꿈이 명확하고 확실하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 마련입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현실이 되어있음을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동일한 질문을 제게도 하십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Determination·청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헹복해 지는 법(^^) (0) | 2012.11.02 |
---|---|
생각이 삶을 결정합니다. (0) | 2012.10.24 |
삶을 일으키는 원동력(강영우 박사 강연) (0) | 2011.10.06 |
오늘의 도전, 내일의 영광(강영우 박사의 조언) (0) | 2011.09.23 |
원대한 꿈을 꾸라 (0) | 2011.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