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그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벽에 걸린 그림이 집안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정도가 전부이다.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그림 그리기 대회에 나가 입상 후 받은 트로피나 상장을 조회시간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증정받을 때 무척이나 부러웠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다는 건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
친구는 어느새 그림의 소재를 모래로 바꾸었다. 화폭 가득 모래를 담아 발자국 같은 걸 찍어놓고 작품이라 했다. 사람들이 수천만 원에 사서 갈 때에도 나는 그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친구의 그림을 수집, 소장하는 또 다른 친구가 하나쯤 장만해두면 미래를 위한 좋은 투자가 될 것이라며 살 것을 권유했다. 그럼에도 여태 단 한 점도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
금년 봄 평소 알고 지내는 시인이 피카소 특별 전시회에서의 감동을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었다. 시인의 글을 읽으며 전시회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마땅히 기회를 얻지 못하던 중 큰 아이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온타리오 아트 갤러리에서 열리는 피카소 특별 전시회 입장권을 보내왔다. 나는 마치 그림을 잘 알기나 하는 것처럼 잔뜩 무게를 잡고 작품들 앞에 섰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들 앞에 서서 전율할 수 있었던 건 작업에 몰입하는 화가의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런던의 대영 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을 본 기억도 난다. 그림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시간에 쫓겨, 혹은 많은 수의 그림에 질려 제대로 감상한 적이 없지않나 싶다. 하나하나 눈여겨보고 그림 앞에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욕망을 가져보긴 했던 듯하다.
올여름 가족이 함께 시카고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마침 시카고 아트 갤러리에서 열리는 리히텐스테인 특별 전시회를 관람하였다. 상업적인 소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들인 그의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두고두고 그림을 음미하고 싶은 욕심에 카메라에 담아 블로그에 올렸다.
오늘 맥 마이클 갤러리(http://www.mcmichael.com/visit/)에서 그룹오브 세븐(Group of Seven)의 작품을 대한 건 행운이었다. 십수 년 전이었던가. 그룹오브 세븐 화가의 그림을 감상하려고 맥마이클 갤러리에 갔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아 비싼 입장료를 내고 선뜻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입구까지만 돌아본 후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던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되돌아왔지만, 한동안 아내와 두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져버릴 수 없었다.
오늘 나는 그곳 맥마이클 갤러리 안에 있었다. 캐나다의 자연을 그들만의 방법과 열정으로 표현한 그림을 대하며 꿈속에 있는 듯하였다. 때로는 은은한, 때로는 현란한 색채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림 속에 표현된 명암이며 소재가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자작나무며 단풍, 흐르는 시냇물, 추수를 끝낸 가을 들녘이 끊임없이 나를 향해 손짓을 해댔다. 나는 그림 속의 바위에 앉기도 하고 황금물결 일렁이는 들녘을 거닐기도 하고 단풍잎이 되어 흐르는 강물 위로 둥둥 떠다녔다.
캐나다의 자연을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로 잘 표현한 대표적 화가 톰 톰슨(Tom Thomson, 1877-1917)은 그룹 오브 세븐의 결성을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화풍은 동료와 후배 예술가들에게 하나의 이정표를 던져 주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룹 오브 세븐의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인생은 이렇듯 예기치 않게 왔다가 예기치 않게 가는 것인가 보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행복해하고 즐거워한다. 그림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제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은 알다가도 모를 인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한 후 그 노력의 산물을 남기고 떠난 예술가들이 존경스럽다. 나는 과연 무엇을 남기고 떠나려 하는가.
2012년 10월 25일
'수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0) | 2012.11.24 |
---|---|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 딸에게 (0) | 2012.11.01 |
억새처럼(꺾이는 나무가 되기보다 굽어지는 억새가 되라) (0) | 2012.09.15 |
인정하고 존중하기 (0) | 2012.09.05 |
명확한 꿈은 현실이 된다. (0) | 2012.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