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인정하고 존중하기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2. 9. 5. 01:24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가 겸손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데 인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집이 늘어납니다. 고정관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생각의 유연성이 떨어집니다. 자기 생각이 전부인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데 점점 인색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나 역시 인정받고 존중받기 어렵습니다. 인정하고 존중할 때 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면 자신을 인정하고 존중해 달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 자신도 관계에서 있어서 인정받고 존중받기를 원하지요. 그럼에도 정작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데 인색합니다.

남이 하는 것은 다 부족해 보이고 내가 하는 건 다 괜찮고 잘한다는 식의 생각을 하면 주위에 사람이 모이질 않습니다. 부족하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 괜찮아서 그럭저럭 사는 것이라는 자세로 살면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무엇이라도 가르쳐주려 합니다. 나만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은 외로워집니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떠나려 하니까요.

너무 완벽해질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좀 부족하고 실수를 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더러는 망가지기도 해야 주위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사람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 말은 정확하고 철저하여 빈틈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미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좀 허술한 부분이 있어야 주위 사람들이 편안해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인간미를 느낍니다.

스스로 잘난척하고 완전한척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 그들로부터 배움을 얻으며, 부족한 듯하지만 속이 점점 차가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최근에는 기업이나 관공서에서도 관계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선호합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의사나, 교수, 엔지니어도 관계 능력을 중시합니다. 혼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려 일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나이가 들어서나, 젊어서나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딛히는 법이 없다.”

이 말은 조선 초 맹사성에게 한 고승이 준 가르침입니다. 열아홉에 장원급제하여 스무 살에 군수에 오른 맹사성은 젊은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올라 자만심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맹사성은 그 고을에서 유명하다는 선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 생각하오?”

그러자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맹사성의 찻잔에 찻물이 넘치는데도 계속 차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는 맹사성에게 스님은 말했습니다.

찻물이 넘쳐 땅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부끄러웠던 맹사성은 황급히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문지방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 스님 저, 페이지 69-70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