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2. 11. 24. 01:58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호스피스 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우의 이야기가 저를 울렸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임관순이라고 합니다. 식도에 나쁜 병을 얻어서, 단순한 위궤양인 줄 알았는데 진단 일주일 만에 식도암 말기로 판정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러운 병을 얻어서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리의 잘못이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난 30여 년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여행을 다니지 못하고 홀로 사업여행만 다녔습니다. 제 사랑하는 아내는 지금도 여권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를 간병하기 위하여 옆에 모포를 깔고 자는 모습을 바라볼 때 제가 없으면, 이 사람이 아프면 누가 간병을 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미어집니다. 허나 꿋꿋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제 아내에게 하고 싶습니다. 제가 평생 결혼한 이후에 호칭을 우리 애들 엄마’, 기껏해야 당신이었습니다. 이제 꼭 한번 불러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평생 불러보지 못한 여보’.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나를 지켜주고, 내가 없을 때 우리 딸 둘 온전하게 키워주고 다 결혼시켜서 행복하게 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게끔 하여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내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국내여행부터 해외의료선교까지 다녀오자고 그렇게 약속을 하고, 애들 둘 다 출가해서 둘이 홀가분하게 손 붙잡고 봉사활동 하자고 한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어서 미안해. 사랑합니다 여보.”

임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상기했습니다. 매일 매 순간 사랑하면서 사는 것, 즐기면서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영원, 영겁의 시간 속에서 보면 우리의 삶은 하루살이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내곤 합니다. 삶에 있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를 생각하지 않고 살지요. 하루하루 매 순간을 즐기면서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지금 당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요. 나를 위해 기도하며,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전화 한 통화라도 돌리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하고 싶어했던 이야기는 '사랑한다'였습니다.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할걸’, ‘여행을 더 많이 할걸’,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질걸등이었습니다. ‘더 열심히 일할걸’, ‘돈을 더 많이 벌걸등의 이야기는 아니었던 듯합니다. 문인들이 미리 쓴 유언장이 눈길을 끕니다. ‘한국문인에 연재된 글을 모은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경덕 출판사)에 실린 글입니다. 

피천득---"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 본다.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염치 없는 사람이다."

도종환---"아들아, 내가 쓴 책과 원고 등 문학과 관련된 자료들은 아버지와 함께 문학 문화단체에서 일을 함께한 아버지 후배들에게 공적 자산으로 전해 주라. 내가 쓴 글 속에 담긴 정신을 네가 마음속에 담아두면 그것으로 됐다."

공선옥---"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형국이니 엄마가 죽고 나서 너희들이 안심할 수 있는 재산을 남겨 주지 못하고 가는 것이 원통하다." " 엄마가 정 생각나면 양지바른 강가에 나무 한 그루 심어 놓고 오다가다 그 나무를 가꾸면서 그게 바로 엄마거니 여기며 한세상을 재미있게 살다가 이 어미랑 만났으면 싶다."

한말숙---"수의는 엄마가 준비해 둔 것을 입혀라, 부의금은 절대 사절하라, 화장해서 재는 엄마가 아끼는 정원의 주목 밑에 뿌려라. 너희 아빠의 재혼은 안 된다."

전상국---"항상 나보다 앞서 있는 내 독자들을 내가 얼마나 두려워했는가를 너희가 증언해 주기를 부탁한다."

이해인---"내 관 위에 꽃 대신 시집 한 권을 올려놓으면 어떨까?"

유현종---"나는 좋아하는 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살아왔으니 다시 태어나도 작가가 되련다."

하성란---"(딸에게) 네가 내 나이쯤 되면 넌 네 엄마를 너와 같은 여자로 봐줄까?"

이형기---"내 가상 유언장에는 무소유 한마디밖에 쓸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