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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시 한 편(보석/박철 외)

싼 것이 편한 인생이 있다 팬티도 양말도 런닝구도 싼 것을 걸쳐야 맘이 편한 사람들이 있다 한 번 산 운동화를 사골 고듯 신고 다니는 그런 사람들이 보석처럼 지키는 한 가지가 있다 그렇게 싼 것을 걸침으로써 그들에게 밸런스를 맞추고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소중한 무언가가 하나씩은 있다 지금 나의 남루 속에 천금같이 숨겨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청노새 눈망울처럼 절실한 그리움의 보석은 무엔가 무엔가 말이다 어젠는 분명 긴 봄밤이었는데 오늘 잠을 깨니 단풍 이는 가을 새벽이었다 짧은 꿈속에서 조용히 흔들리던 묽은 떨림 일장춘몽 속에 나 진정 세상 모두를 사랑하였으므로 내겐 세상 하나가 반짝이는 옥빛 구슬이었다 한없이 걸어들어가는 구슬문이었다 사랑은 덧없이 싼 가을 낙엽이었으나 나 오늘도 보석 같은 단..

문학일기 2024.09.28

캐러비언 도미니카 푼타카나 (2)

마켓 키친 뷔페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데 돌을 갓 지난 듯 보이는 아가가 의젓하게 앉아있다.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들도 귀여운 듯 다가가 하이 파이브를 한다. 주변 사람들도 아가를 향하여 활짝 웃으며 손짓을 한다. 테이블에서 저만치 떨어져 앉은 나도 아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기가 방긋 웃더니 부끄러운 듯 가만히 얼굴을 돌린다. 아침에 만난 백인 아기뿐 아니라 어린 자녀와 함께 한 젊은 부부가 여럿이다. 아가들을 바라볼 때마다 환하게 미소 짓게 된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울음소리가 들려와도 성가시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 아침 파파야, 망고, 파인애플, 구아버, 용과 등 열대과일 맛이 일품이었다.

미셀러니 2024.09.03

캐러비언 도미니카 푼타카나 (1)

두 딸 가정과 함께 캐러비언에 왔다. 열 명의 식구가 같은 비행기에 올라 다소 염려가 되었지만 무사히 도착하여 마음껏 즐기고 있다. 오늘은 둘째 네 큰손자 시온이 생일. 온 가족이 함께 파이니스트 푼타카나 리조트(Finnist Punta Cana Resort) 멜팅 팟 식당에서 데판 야끼로 저녁 식사를 하며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 가정이 각자 또는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딸과 사위, 손주들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카리브해 휴양지에서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게 놀랍고 감사하다. 개인 풀장이 있어 각자의 스위트에서 물놀이를 즐기기도 하고 공용 풀에서 함께 즐기기도 한다. 아내와 나는 오늘 해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미셀러니 2024.09.03

어머니에 대한 후회(정호승) 외

누나 엄마가 오늘 밤을 넘기시긴 어려울 것 같아 그래도 아직 몇 시간은 더 계실 것 같아 봄을 기다리는 초저녁 여섯 시 내가 뭘 안다고 인간의 죽음의 순간에 대해 내가 뭘 안다고 여든이 다 된 누나한테 누나 작업실에 좀 다녀올 게 급하게 보내야 할 메일이 있어 금방 올 게 오늘 밤은 엄마 곁에 계속 있어야 하니까 누나는 말없이 나를 보내고 나는 어머니의 집을 나서 학여울역에서 대청역까지 어머니가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에 한 정거장 지하철을 타고 작업실로 가 메일을 보내다가 갑자기 노트북 자판기에 커피를 쏟듯 마음이 쏟아져 지금 이 순간 혹시 엄마가 돌아가시는 게 아닐까 서둘러 지하철 계단을 뛰어내리는데 호승아 지금 오니 누나의 짧고 차분한 전화 목소리 네 지하철 탔어요 금방 가요 다급히 돌아와 아파트 문을..

문학일기 2024.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