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해에 걸쳐 멕시코 리베라 마야(칸쿤)와 도미니카 푸에르토 플라타에 다녀왔었다.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해변에서 책을 읽으며 주로 시간을 보냈다.
올해(2018년)에는 크루즈 배를 타고 캐러비언을 돌아보기로 했다. 여행지에서 느꼈던 감흥을 메모해 두곤 했었다. 훗날 다시 읽으며 기쁨을 음미하고자 올려둔다.
1월 20일 토요일
토론토에서 비행기 편으로 플로리다 포트 라더데일(Fort Lauderale)에 도착 마이애미까지 버스로 이동하여 노리즌 이스케이프에 오른다. 마이애미의 스카이라인을 뒤로하고 석양이 어리는 부두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다. 인생의 후반부에 타는 첫 유람선 여행이지만 그리 늦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가장 적절한 시기에 왔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감사할 따름. 바다가 넓다는 것을 실감한다. 육지만큼 큰 규모의 바다 그 많은 물.
저녁 시간 선상 파티, 라이브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사람들. 젊은 커플로부터 나이 든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이 리듬에 맞추어 몸을 흔든다. 때로 삶은 이렇게 셀레브레이션 하는 것이려니! 아내와 함께 배 위에서 펼쳐지는 라이브음악을 들으며 몸을 흔들 수 있다는 게 즐겁고 감사하다.
저녁 9시부터 9시 30분까지 밤참을 즐기다. 21일 저녁 10시 뮤지컬 ‘after midnight’과 22일 저녁 6시 light dinner와 함께 하는 The Company의 연주 프로그램에 예약하다. 23일은 저녁 8시 30분에 duo piano 연주가 있다.
1월 21일 일요일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바다를 바라보며 책을 읽고, 바다를 바라보며 글을 쓴다.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한 바다. 어제 밤새 내달렸고 오늘도 온종일 물살을 가른다.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 아쉽다면 아쉬울까 그 외에는 아쉬울 것이 없다. 그저 수평선만 끝이 없이 펼쳐질 뿐이다. 고래들은 이렇게 큰 바다를 자신의 세상으로 알고 헤엄치며 다닐 것이다. 원양어선을 타는 선원들은 바다란 그저 망망하고 배에서 밥을 해 먹어야 하고 파도와 싸워야 하는 곳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루즈 배를 타는 사람들은 바다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하리라.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세상이 전부인양 착각할 수도 있겠다.
밤 10시 뮤지컬 after midnight을 보다. 뉴욕 할렘가를 중심으로 한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의 삶의 애환을 극화한 뮤지컬, 배우들의 춤 솜씨며 노래 실력이 출중하다.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과 어우러진 트럼펫 트롬본 등 밴드의 실력도 수준급이다. 늦은 시간임에도 잔뜩 화려하게 차려입은 손님들로 극장 안이 가득하다.
1월 22일 월요일
“카리브해에 위치한 휴양지 자메이카 팔머스(Falmouth, Jamaica West Indi)에 왔다. 30대 후반 뉴욕에서 공부할 때 자메이카에서 왔다는 사람들을 더러 만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휴양지로는 자메이카만 한 곳이 없다고도 했다. 물론 그들 자신의 감상적(센티멘탈) 가치(벨류)에 의한 견해였겠지만. 20일 오후 4시경 마이애미에서 출발한 유람선(Norwegian Escape)은 밤낮으로 항해하여 쿠바와 아이티 사이를 돌아 22일 아침 8시 자메이카에 도착했다. 빠르고 경쾌한 리듬의 음악이 카리브 휴양지에 있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항해하는 동안 계속 흐린 날씨였으나 오늘은 흰 구름 사이로 제법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푸른 하늘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느끼는 바다와 회색빛 뿌연 아래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사뭇 다르다. 토론토는 눈이 쌓여있고 살을 에는 한파 속 겨울이나 이곳은 나뭇잎이 무성하고 잔디가 푸르게 펼쳐진 여름이다. (사실 계절로 따지면 여기도 지금이 겨울이지만) 며칠 사이에 서로 다른 계절을 경험할 수 있음도 재미있는 일이라면 재미있는 일이다. 오늘은 배가 정박한 이곳 주변의 쇼핑센터를 둘러보고 해안을 따라 걸어도 볼 생각이다.”
시장(자메이카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하나란다)에 들러 코코넛 열매를 사서 윗부분 껍질을 벗겨내고 아내와 나누어 마신다. (칼로 껍질을 벗기는 일은 가게 주인이 해주었다) 처음 마셔보는 코코넛 열매의 원액, 얼마 전 아내가 코스코에서 사다 놓은 종이팩에 든 코코넛 원액의 맛과 같다. 무엇이든 평생에 처음 해보는 일은 즐거운 일, 두뇌가 무척 좋아한다. 시장 골목으로 깊이 들어가니 또 다른 과일 포장마차가 있다. 크고 잘생긴 파파야 하나를 골랐다. 젊은 가게 주인이 정성껏 껍질을 벗겨 비닐에 넣어준다. 속이 붉은 잘 익은 파파야 맛이 일품이다. 시장 중앙에 있는 광장으로 나와 코코넛과 파파야를 먹는다.
이곳 사람들의 일상을 잠시 들여다볼 기회였다. 총을 들고 다니는 군인들이 있는가 하면 교복을 입고 있는 여학생들도 보인다. 미장원에서 머리를 말아 나오는 아주머니도 있고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도 계신다.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삶은 무척 고단해 보인다. 영화에서 보는 쿠바의 모습 같기도 하고… 우리 한국의 육십년대가 그러지 않았을까.
1월 23일 화요일
“사흘을 항해하여 케이먼 아일런드의 조지 타운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뜨거운 태양이 연안 얕은 바다에 작열한다. 크고 작은 배가 부두에 떠있다. 인구 삼만 명도 안 되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 이 섬에도 인생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사람들이 산다.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든 우리는 그저 세상에 왔다가 때가 되면 떠난다.”
“케이먼 제도(Cayman Islands)의 세븐 마일 비치(Seven Mile Beach, Grand Cayman)에 있다. 흰 모래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고 푸른 물결이 넘실댄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 파스텔 물감을 뿌린 듯 하늘은 푸르다, 그 위에 두둥실 떠 있는 흰 구름, 마음은 이미 구름을 타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딸, 손주 손녀, 온 가족이 함께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정겹다. 몸을 반쯤 바닷물에 담그고 맥주병을 들고 있는 사람들, 각테일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 주변에서 들려오는 키득거리는 소리…아! 휴가란 이런 것인가보다.”
1월 24일 수요일
어제 그랜드 케이먼을 거쳐 오늘 멕시코의 코스타 마야(Costa Maya)에 왔다. 그랜드 케이먼과는 또 다른 분위기. 케이먼 아일런드가 깔끔한 영국풍이었다면 이곳 멕시코는 순박한 시골 분위기다. 잠시 해변을 걷다 근처 식당에 들러 멕시코산 맥주 인디오와 마가리타를 주문해 마신다. 곁들여 먹는 타코도 괜찮은 편.물 속으로 뛰어들지 않은 건 아쉬운 일이다. 에메랄드 빛 바다며 물 위에 떠 있는 보트, 해안을 따라 줄지어 선 야자수가 한 폭의 그림이다.
“저물녘 그랜드 케이먼을 출발한 배는 밤새 물살을 가르며 서쪽으로 항해하여 다음 날 오전 11시경 멕시코 동쪽 연안 코스타 마야에 도착했다. 맑은 태양 아래 쾌적한 날씨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온(섭씨 26도) 여기서 6시간 30분가량 정박 후 저녁에 코즈멜로 출발할 예정이다. 오늘 아침 스파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며 위스콘신주 시카고 인근에서 온 분을 만났다. 그는 토론토에도 온 적이 있다는데 CN 타워와 원더랜드를 기억했다. 이번 유람선 여행이 마흔 세 번째라고 했다. 같은 배를 타고 연속으로 여행한 적도 여러번 있단다. 그는 노리즌 크루즈라인(Norwegian cruise line)의 프리미엄 엘리트 멤버라고 했다. 이른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갑판 위 한쪽 트랙을 도는 산책과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건 유람선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멕시코 코스타 마야의 Mahahual Limpio의 해변에 있는 40 cannons restorant(40 years 되었다고, 사실인지는 모르지만)에서 나초와 함께 인디오 맥주를 마십니다. 두 병…ㅎㅎ 엄마는 마가리타 한 잔 마시고 얼굴이 빨개졌습니다.ㅋㅋㅋ 아빠는 당근.ㅎㅎ 서빙하는 젊은 웨이터가 마음에 들어 팁을 좀 넉넉하게 주었습니다.”
1월 25일 목요일
“바하마의 수도 나소(Nassau)로 갈 예정이던 배는 아침 8시 멕시코 코즈멜(Cozumel)에 정박했다. 나소 쪽 바다에 폭풍이 예상되어 멕시코에서 하루 더 머무르다 간다는 선장의 멘트가 있었다.
25일 저녁에 코즈멜을 출발하면 밤낮으로 항해하여 27일 아침 마이애미에 도착하게 된다. 그저께 위스콘신주에서 온 아저씨는 코즈멜에 머무르게 되는 게 여섯 번째라고 했다. 그 중 세 번은 기후가 좋지 않아 일정이 바뀐 것이란다. 코즈멜에 정박한 배 위 16층 가든 카페에서 피어쪽을 바라보며 아침식사를 한다. 팬케이크와 와플을 곁들인 콘티넨탈 블랙퍼스트. 아내가 가져다준 파인애플 두 조각과 오렌지로 디저트를 했다.
키가 크고 잘 생긴 할아버지 할머니가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친구 커플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남부 악센트가 강하다. 유람선 여행의 매력 중 하나는 미국은 물론 아일랜드, 브라질 등 오대양 육대주에서 온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다는 것일 거다.
아침 식사를 하는 사이 소나기가 두 차례나 지나갔다. 정박한 배에서 내리던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피어 쪽으로 걸어간다. 아침에 늑장을 부린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듯하다. 이른 아침 갑판으로 올라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후 조깅을 하곤 했는데 오늘은 그만 늦잠을 자버렸다. 덕분에 소나기를 피했다.
코즈멜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아직 정하진 않았다. 인근을 돌아보며 걸을 수 도 있을 것이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멕시코산 맥주나 각테일을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비치로 나가 바닷물에 몸을 담그며 한가로이 책을 읽거나 바다를 바라볼 수도 있겠다.
다시 햇볕이 쨍쨍해졌다. 하지만 맞은 편 하늘엔 구름이 가득하다. 언제 다시 소나기를 뿌릴지 모를 일이다. 흐렸다가 개였다가를 반복하는 게 우리네 인생과도 흡사하다.ㅎㅎ”
“배가 코즈멜을 떠날 준비를 한다. 출항 예정 시간이 될 때까지 도착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방송으로 계속 이름을 불러댄다. 빠른 속도로 배를 향하여 달려오는 택시가 있다. 배 중간 승선장 입구에 멈춘다. 뚱뚱한 남자가 서너 살 된 아이를 안고 황급히 배로 오른다. 뒤따라 남편 못지않은 체구의 부인이 딸을 안고 배에 오른다.
성년이 된 아들을 데리고 유람선 여행을 온 부부가 있다. 부부는 계속 술(주로 각케일)을 마신다. 아들도 친구들과 마구 술을 마셔댄다. 어떻게 저토록 마셔댈 수 있을까. 몸 관리를 잘 한 부모와는 다르게 아들의 몸집은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될듯하다. 쪼여 입은 수영복위로 비겟덩어리가 출렁거린다. 과연 이 부모가 잘하는 것일까? 아무리 돈이 많은 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 삶의 습관은 참으로 중요하다.
오후 5시 30분 코즈멜을 출발했다. 27일 아침까지 약 37시간을 항해하여 마이애미에 도착할 것이다.”
1월 27일 토요일
“카리브해 바다와 섬, 해변에서 꿈 같던 일주일을 보내고 다시 마이애미에 도착했다. 배에서 음식도 좋았을 뿐 아니라 앤터테인먼트 프로그램도 수준급이었다. 뮤지컬 두 편과 네 명의 남성 보컬로 이루어진 the company, 마지막 날 테너 가수의 노래가 좋았다. 특별히 피아노 색소폰 드럼 등으로 구성된 밴드는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브로드웨이에 와 있는 듯하였다. 육십 세 생일을 맞으며 경험한 크루즈 여행,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아내도 건강하여 편안하게 함께 여행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마이애미 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마치고 토론토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기다리던 중 크리스천 월드 신문사의 발행인 서준용 장로님께서 지난 23일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였다. 일 년 전 토론토 다운타운 쉐라톤 호텔에서 온타리오주 조찬기도 모임에 참석하며 내년에 또 오자고 약속도 했었는데… 우리네 인생에는 늘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세상을 떠나는 일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멀리 보이는 유람선
유람선 Norwegian Escape 선상에서 바라본 또 다른 유람선 Norwegian Pearl
Norwegian Escape
자메이카 팔머스(Falmouth, Jamaica) 시장 앞 사람들
자메이카 팔머스 시장 앞 광장
그랜드 케이먼 세븐 마일 비치
멕시코 코즈멜 피어
멕시코 코스타 마야 Mahahual Limpio 비치
멕시코 코즈멜 조형물 앞에서
멕시코 코즈멜의 한 까페 앞 비치 (앞쪽으로 스누클링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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